[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3) 자청비와 가믄장

가믄장은 신뢰일 것이고 자청비는 매혹일 것이다. 자청비 여성은 남편이 자신을 점점 여성으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화가 날 것이다.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무디어져 가는 사랑에도 우울함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화려한 속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교태를 부릴 수도 있다. 자청비는 자신이 가지는 아름답고 여성적인 모습을 그녀 자신도 좋아하고, 남편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겠지만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 격정적이고 가슴 설레는 사랑의 경험에 별로 목말라하지 않는 가믄장 아내들은 시간이 흘러 처음의 긴장감이 없어지더라도 허무해지는 느낌을 별로 갖지 않는다. 그 흔한 사랑타령도 애교도 교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들해져버린 긴장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야한 잠옷을 입는 다거나 부드러운 조명 아래서 한쪽 스커트를 들어 올리며 춤을 췄다는 주변의 얘기가 그녀에게는 코미디 같다.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은 같이 한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녀에게는 남편에 대한 조바심이나 불신 역시 없다. 부부라는 것은 꼭 매혹적이지 않더라도 같이 사는 것이며, 사랑이 아니더라도 같이 사는,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믄장 아내들은 타 남성의 눈길을 받더라도 눈치도 잘 못 챌 뿐 아니라 혹여 알게 되더라도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라고 생각한다. 동요도 거의 없다.

▲ 연극 <가믄장아기>의 한 장면. ⓒ제주의소리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는 남을 잘 무시하지도 않는다. 남편이 가진 게 많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자랑거리는 아니다. 남편 덕에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남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부러워 속을 끓이지도 않는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삶과 비교하지 않고 생활하는 그녀는 남들과의 관계에 얽히고 섥히면서 말이 분분해지고 감정도 복잡해지는 경험들에서도 다소간 떨어져 있다. 빨래터에서 남편의 생활적, 성적 모자람을 수다로 풀어낸다거나 성공한 아들 딸 자랑너스레를 떠는 것은, 그녀에게는 낯간지러운 일이다.


만약 그녀가 이혼을 한다면 이혼을 원했든 아니었든 그 상황을 잘 극복한다. 이혼한 후에도 남편과 별반 증오 없이 계속 친구로 남을 확률이 많다.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성에게 갔다고 해서 우울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분노나 복수심 같은 것은 극복가능할 만하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굳이 하지 않고 자신의 길만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그녀의 자세, 갖추어야 할 여성 남성의 개념보다는 인간성 자체에 대한 우선, 성적 매력에 대한 경시, 그렇게 만들어져온 주변에 비해 둔한 감성 등이 그 이유다. 무엇보다 자신 자체로 지금껏 서 왔다는 점, 앞으로도 자신 자체로 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이 그런 그녀를 만드는 첫째 원인이다.


선그믓을 주장하다 쫓겨난 가믄장 여신처럼 그녀는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당당하다. 여성이라고 무시당하는 경우에도 감정적으로 우왕좌왕하기 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에서의 우월함을 보여주면서 압도해버린다.

 
그녀의 삶에는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꼭 필요하지 않다. 자기 혼자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지런히 살아가느라 외로움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뭔가 모자라면 '도움'이 아니라 '자신'을 다잡는다. 옆에서 같이 해준다면 참 좋은 일일 테지만 자신과의 동행을 굳이 강요하지도 않는다.

타인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신이 올바르고 부지런히 살아간다면, 삶은 점점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혼자'서라도, 결코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잣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독단적이라 평가하는 일은 결국, 점점 사라지게 된다./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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