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칼럼] 박 대통령, 제주4.3위령제에 참석해야 하는 이유

 마침내 박근혜정부가 출범했다. 취임 초부터 안팎의 상황이 매우 안 좋다. 북한의 무모한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동북아 정치지형의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심지어 세계경제위기 여파로 국내경제 환경과 여건마저 녹록치 않다. 이념과 세대, 지역과 계층 간 분열과 갈등이 깊어져 있다. 여기다 인사과정의 불협화음 등이 보태져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민심을 하나로 모아야 할 과제가 놓여있다. 백성이 진정 행복한 희망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국정지표가 처음부터 시험을 받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국(難局)을 지혜롭게 풀어나가며 순항할 수 있나.

 사실 역대정권만 봐도 취임 초에 이런저런 문제로 위기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깝게 이명박 정부만 해도 그렇다. 인수위부터 각료선출에 이르기까지 파열음이 그치지 않았다. 거기다 한미FTA에 따른 미국산수입소고기 문제 등으로 촛불시위정국이 조성되었다. 당시 그것은 정권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중대사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초기 대응을 잘못하여 화를 키웠다. 일반 백성의 정서와 생각은 헤아리지 않고 더 이상 밀려선 안 된다는 박제화된 통치논리에 급급했다. 법과 원칙에 입각한 해결의지만 고수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불통과 독단의 이미지는 정권 내내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했다.

 

▲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고 육영수 여사

전(前)정부는 반면교사다. 또다시 그런 전철을 밟아서야 되겠는가. 그 정부를 믿고 뽑아준 백성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어디 이게 정부가 할 짓인가. 역사상 어떤 정권이든 백성의 뜻을 무시하고 따로 놀아서 성공해 본 전례가 거의 없다. 그러기에 대통령은 자기 백성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최고 동반자임을 깊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권력의 벽을 허물고 내려와 그들의 움직임과 소리를 민감하게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들 속에 깊숙이 들어가 울고 웃으며 감동을 주어야 한다. 이런 가운데 그들과의 진정한 소통과 나눔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넓고 깊은 신뢰가 생긴다.

 한 좋은 예가 있다. 1974년 8월15일 육영수여사가 불의에 서거를 하였다. 그 순간 온 나라가 충격과 비통에 젖었다. 전국 각지에 빈소가 차려졌고 추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치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아파했다고 한다. 아마도 대통령 영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넘어, 백성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 국모를 잃은 데 따른 아쉬움의 소회(所懷)가 아닐까싶다. 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육 여사는 아이를 낳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산모이야기를 접하자, 산후조리에 필요한 쌀과 미역을 준비해서 흙으로 얼기설기 만든 판자집을 몸소 방문했다고 한다. 거기서 마치 친정어머니의 심정으로 그 산모를 정성껏 위로해주고 돌아왔고 그 후에도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감동스런 일인가.

 

▲ 고병수 신부(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박근혜 정부는 그 누구보다 고 육영수여사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자고로 백성의 지도자는 어버이와 같은 심정으로 백성에게 다가서는 존재여야 한다. 까놓고 백성은 시름에 젖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으켜 세워주는 지도자를 만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 제주도의 경우, 올해 제주4.3위령제에 대통령께서 직접 와서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위로를 전해 준다면 어떨까. 한순간 오랜 세월의 아픔과 고통이 녹아내리고 마음으로부터 한없는 행복을 느낄 것이리라. 이처럼 선정(善政)을 베풀어 진정한 소통을 이루는 것이 백성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요, 당면한 난국의 실타래를 풀면서 백성이 행복한 희망의 시대를 여는 첩경이 아닐까싶다. / 고병수 신부(천주교제주교구 복음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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