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 거대 담론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신화를 꿈꾸며 살고 싶다. 나에게 제주신화는 꿈의 세계로 들어서는 올레에 속한다. 나의 신화에 대한 지독한 관심은 며칠 전 이런 제의를 받았다. 신화를 통해 제주도의 전통문화를 얘기하는 글, 제주신화 담론 같은 글을 써 달라는 <제주의소리> 대표의 제의였다.

그와 막걸리 한 잔을 걸치던 중 나온 말이었으니 부디 원고를 쓰지는 않아도 그만인 제의였지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지나친 과잉반응을 일으켰다. 당장 시작하겠다고. 요 며칠 전 <제주의소리>에 담론을 연재하여 주목받던 당대의 싸움닭 논객 박경훈 화백이 그간 썼던 담론들을 모아 출판한 <박경훈의 제주담론 1>이 세상에 근방 나와 아주 좋은 평가를 받던 때여서 “성님은 놀매 탐난 말로만 글 쓰멍 허는 일이 뭐꽈. 글 좀 씁서.”하는 후배가 대견하고, 변명하기도 부끄러워, 나도 이녁과는 다른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선지 술술 내 마음속에 그리던 내 생각을 다 말해버렸다. 아니 그때 그 순간에 떠오르던 생각까지도. 오래 정제된 생각인 듯 우선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맨 먼저 쓰고 싶은 글은 설문대할망 이야기 이며, 그 이야기의 제목으로 정해둔 화두는 ‘설문대할망의 손가락’이라며, 쓰기도 전에 이미 ‘구라 빨’은 무책임하게 뱉어져 나왔다.

계획이 다 서 있는 사람처럼,  “내가 제주신화의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면,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바로 이 탐라 땅을 창조한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할 것이우다. 할망의 이야기는 우선 먼저 너무나도 큰 할망이 손가락조차도 이만큼은 컸을 꺼라는 큰 것 콤플랙스에 대한 말을 하며 신화이야기를 시작하여 내 신화적 상상력의 포문을 열어 보쿠다. 기대해 줍서. 정말 거창한 꿈 아니우꽈?” 그랬다.

사실 내가 제주신화 스토리텔링의 화두로 삼은 것은 ‘설문대할망 손가락’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이야기였다.

지난 해, 설문대 여성문화센터 전시 자문위원회에 참석하여 올해의 전시물 중 교환할 전시물이 설문대할망이란 보고를 듣고 전시관도 둘러보고 설문대할망의 전시를 제대로 못할 바엔 ‘설문대할망 손가락’이라도 전시하여 힘이 세고 키가 큰 할망의 ‘거대한’에 대한 담론을 시작하자는 자문회의 때 주장이 받아들여져 실제로 전시장에는 ‘설문대할망 손가락’이 전시돼 있다.

꿈은 이루어 졌고, 이제는 꿈의 해몽만 필요한 시점이었다. ‘할망의 손가락’에 대한 해설이 없으면, 설문대할망 손가락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신화라는 서사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리고 제주 사람들의 꿈꾸던 상상의 세계, 그 판도라의 상자 속의 것들을 무엇이든 제주사람과  관람객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시작하려는 할망의 손가락 이야기는 설문대할망 신화의 거대 담론의 시작인 것이다.
 
태초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제주에는 거대한 할망이 혼자 외롭게 살고 있었다. 이 할망을 설문대할망이라 부른다. 신화가 들려주는 할망이 ‘세다’ ‘크다’ ‘거대하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힘이 세고, 얼마나  키가 컸나?”하는 이야기지만, 이야기 속에는 여기저기 자기가 만든 땅보다 더 클 수 없는 제주인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비극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제주형 거인신화가 들려주는 ‘하나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설문대할망이 제주 땅을 너무 작게 만들었기 때문에 제주보다 크고 힘센 할망이 ‘가진 많은 것’ 설문대할망의 ‘풍요(豊饒)’라는 신성(神性) 때문에 제주 사람들이 겪게 되는 큰 것 콤플렉스, 할망은 너무 크고, 너무 많고, 너무 세어 슬프고, 할망이 만든 제주에 살고 있는 제주 사람은 너무 작고, 가진 건 너무 적어 언제나 채울 수 없는 안타까움, ‘모자람’을 채우지 못하는 엄청난 슬픔, ‘설문대할망 콤플렉스’를 제주 사람들은 천형처럼 가지고 살아야 했다.

그 슬픈 이야기, 설문대할망의 손가락 이야기, “너무 힘이 세고, 키가 크기 때문에 외롭다.”는 ‘하나의 외로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설문대할망 콤플렉스라 부르는 ‘거대한’에 대한 담론은 제주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신으로 모신 제주에서 제일 큰, 더 이상 더 클 수 없는 설문대할망의 손가락 이야기이며, 설문대할망이 ‘거대한’에 대한, 하나의 외로움, 센 힘, 큰 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할망이 만든 세상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 보라. 왁왁한 어둠을 여는 창조의 손가락은 보이지 않고, 할망의 손가락조차 너무 커서 앞을 가로막는 어둠일 뿐이다. 할망의 손가락은 얼마나 클까 상상해 보니, 할망의 손가락은 너무 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그 어둠은 창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커다란 그릇이었다. 어쩔 수 없어 할망의 큰 손가락을 축소하고 축소하여 눈에 거대한 손가락으로 보일만큼 축소해 놓고 사람들은 그것을 ‘설문대할망의 손가락’이라 명명하였다. 그것을 제주에서 제일 높은 칼 호텔보다 더 큰 손가락이라 상상하며 설문대할망의 손가락 크기를 짐작 했을까.

슬프게도 할망은 제주도를 작게 만들었기 때문에 할망은 백록담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한 쪽 발은 삐져나가 관탈섬을 딛고, 다른 쪽 발은 지귀섬을 디뎌 보기도 했던 그 만큼 큰 할망의 손가락을 생각해보니, 제주에서 제일 높은 건물, 칼호텔 보다는 크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 크기의 손가락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 손가락은 제주 땅을 만든 설문대할망의 손가락이라 하였다.

“아, 할망의 손가락은 저렇게 생겼구나!” 결국 할망의 손가락은 보통 손가락이 아니라 창조의 손가락이었다. 그리 생각하자 바로 그 손가락, ‘설문대할망의 손가락’에는 창조의 메시지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것을 풀어 나가는 것이 ‘설문대할망 손가락’ 이야기다. 할망의 손가락은 창조의 손가락이기 때문에 너무 큰 어둠 속에는 어떤 창조의 움직임이 생겨났을까. 할망의 손가락은 ‘한(=1)’을 만들었고, 그것은 ‘하나의 외로움’ 한류의 전통인 ‘한’, 하늘의 하나가 아닌 제주 땅을 만든 ‘한’, 땅의 하나, 제주 섬의 하나이니,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하늘 이야기가 아니라 땅이 열린 이야기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외로움, 하나의 외로움에 대한 철학이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땅이 열림, 어둠에 감각과 정을 불어넣고, 새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창세의 이야기다.  할망의 손가락이 어둠을 찍어 어둠을 흔들자 하늘의 빛이 땅의 어둠에 감전하여 태초의 어둠은 찢어져 바람이 돌고, 바람은 색을 만들어 파란 하늘, 누런 흙으로 천지를 나누었다. 할망의 손가락은 ‘하나의 외로움’ ‘하나(=1)’를 완성하였다. 태초의 왁왁한 어둠 위에 설문대할망의 손가락이 한 창조의 작업 어둠을 찢어버린 ‘하나=1’의 완성은 빛(色)의 완성, 빛은 어둠을 갈라 천지(天地)를 만들고 천지현황의 기운을 움직여 바람이 흐르니 바람은 생명의 시원에 세상의 온갖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문대할망의 손가락 이야기는 세상에 ‘하나의 외로움’을 만든 이야기였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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