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국회 선진화법’을 위한 변명

지난 3월 22일 국회를 통과한 정부조직 개편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 선진화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위헌 소송을 제기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해 5월 국회는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예산안을 제외한 쟁점 법안을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하여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52석의 원내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야당과 합의 없이는 과거와 같은 단독 강행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부개편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 선진화법’의 힘이 여실히 드러났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여야 간의 협의ㆍ조정ㆍ타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은 민주적 처리보다는 날치기 처리에 익숙한 우리 정치풍토에서 불편한 제도일 수 있다. 정부조직법 심의 과정에서 '식물 국회'라는 말이 풍미한 것은 절차나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성ㆍ합법성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능률성ㆍ효율성에 집착하는 권위주의 의존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낭비가 아니라 발전을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와 증세,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 교육, 노사, 환경보존과 개발  등 정치적 현안이 널려 있다. 갈등 현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서 사회적 대타협이 급선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과제는 국민 대통합이다.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하여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보도를 통해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잠재우기도 한다. 국회에서 여야 간에 싸우는 모습이 언론에 부정적으로 부각될 때마다 국민의 정치 혐오증은 악화된다. 정치 혐오는 정치 무관심층을 증가시켜 파시즘 같은 권위적 독재를 불러오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당과 정치가의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민주 정치에서 정당 간에 주요 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본질이자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전체주의 국가에서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정당의 핵심 기능은 사회적 의제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발생한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여 상대편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싸우고 타협하는 것이다. 민주정치의 목적은 인간의 삶을 구원하는 데 있다. 정당은 사회 갈등을 조직화하고 조정ㆍ통합하여 다양한 집단과 소외된 약자들의 이해를 경쟁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대화와 합의에 기반한 갈등의 평화적 해결은 정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처럼 양당제로 갈려 경쟁하는 정치 구도에서 중요한 쟁점법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렵다.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진 상황에서 이념편향적인 정책의 추진은 지지계층을 의식해야 되기 때문에 타협보다는 물리적 해결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대화보다는 다수결의 원리만 강조한다면,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어 극한적인 대결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정치 행태를 대화와 타협의 구조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국회 선진화법’이다. 대결의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법의 지향점은 해결이 급한 법안은 빨리 통과시키고, 중장기 과제 등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논의해서 처리하는 데 있다.

여야 대결 구도에서 갈등과 충돌은 피할 수 없지만 격투기를 배제하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국회 선진화법’은 낯설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폐기론부터 나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제 민주주의를 버리고 권위주의로 회귀할 수는 없다. ‘국회 선진화법’의 입법취지를 살리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정책을 입안하는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무리한 정책 추진은 사라질 것이다. 국가운영에 중차대한 정책일수록 신뢰ㆍ소통ㆍ공유ㆍ협의의 가치를 토대로 한 사전 여론 정지 작업은 필수적이다. 공론장에서 충분한 토론과 여론의 검증을 거쳐 타협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 권영후 소통기획가
‘국회 선진화법’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소중한 제도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야가 합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대타협에 기반 한 통합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현재 정부가 경기침체를 이유로 추진하고 있는 국채발행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처리가 또 한 번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국회는 선진화법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정치미학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때다. 박대통령이 강조하는 국민행복도 이러한 시대정신을 구현할 때 이루어 질 것으로 본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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