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6) 백주또 신화, 제주신화의 뿌리

본풀이는 ‘본(本)을 푸는 것’이다.
‘본’은 ‘뿌리’, ‘근본’, ‘원리’라는 뜻이고 신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니 신화이다.
제주도 신화, 즉 본풀이는 대충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일반(신)신화로 이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이나 인문사상,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열 두 신의 신화를 말한다. 자청비 가믄장 등은 모두 일반신화다. 
둘째는 당신화다. 당신화는 마을의 생산, 물고, 호적, 장적, 생업, 질병 등을 관장하는 마을신(수호신)의 신화이다. 당신화의 경우 두 세줄 정도로 내용이 무척  간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상신화는 어떤 집안이나 씨족에서 모셔져 내려오면서 그들을 수호해주는 신들의 이야기이다. 


제주섬의 곳곳에 자리 잡은 신당에서는 그 당에서 모시는 신에 대한 본풀이, 즉 신화가 전승되고 있다. 많은 당신화가 직능이나 제일, 제물 등을 제시하는 간단한 전승으로 그치는 데 비하여 송당 신화는 서사성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몇 안 되는 신화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송당은 무속인들이 굿을 할 때 사설에서 ‘불휘공’이라 부르는 곳이다. ‘불휘공’은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뿌리, 즉 신앙의 가장 근원적인 뿌리가 되는 곳이란 뜻이다. 송당 신화 속의 백주또는 1만8천 신이 있다는 ‘신들의 고향’, 제주도 무속신앙의 원조라 불리워진다.

▲ 송당리 당 입구에 있는 표석.

백주또 신화 

“이 아기들은 어떻게 먹여 살립니까? 농사를 지으십시오.”

한라산에서 솟아나 사냥을 하면서 사는 소천국은 오곡의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자신의 배우자를 찾아 외지에서 입도한 백주또와 결혼한다. 백주또와 소천국은 천정배필을 맺고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고 손자방상이 378명이나 되게 번성해 갔다. 
큰 애긴 밥 달라 울고, 어린 애긴 젖 달라 울어 가니 백주또는 걱정이 되어 소천국에 농사를 짓자고 권유한다. 


“남인님아 남인님아 이렇게 놀면 어찌 삽니까? 이 아기들은 어떻게 먹여 살립니까? 농사를 지으십시오.”
농사를 짓자고 권농하는 백주또의 말에 솔깃한 소천국은 백주또가 싸주는 점심을 들고 밭을 갈러 갔다. 밭을 갈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이 요기를 청하자 소천국은 그에게 자기가 먹을 점심을 줘 버리고 자신은 밭을 갈아야 할 소를 잡아먹었다. 익었는가 한 다리, 설었는가 한 다리 먹다보니 소 한 마리를 다 먹었으되 한 마리로는 먹은 것 같지 않으니 결국은 옆의 밭에 있던 남의 소까지 잡아먹어 버렸다.


우리 소를 잡아먹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지만 남의 소를 잡아먹었으니 소도둑놈 말도둑놈 아닙니까?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분산합시다.”


백주또가 그릇을 가지러 밭에 가보니 어인 일인지 남편이 배로 밭을 갈고 있었다.
“아니, 소는 어디 두고 배때기(배)로 밭을 갑니까?”
“넘어가는 중이 점심을 먹고 가버리니 배가 고파 밭을 갈 수가 없어서 먹었소”
“그런데 머리도 두 개, 가죽도 두 개, 어찌하여 머리와 가죽이 두 장이 됩니까?”
“우리 소 한 마리를 먹으니 안가슴도 아니 차서, 저기 굽어보니 남의 소가 있어 먹었소.”
“이거 무슨 말입니까? 우리 소를 잡아먹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지만 남의 소를 잡아먹었으니 소도둑놈 말도둑놈 아닙니까?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분산합시다.” 
백주또는 남의 소까지 잡아먹은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살림분산을 제안했다.


아들이 세 살이 되어가니 아버지나 한번 보게 하려고 소천국을 찾아 갔다.


살림을 분산하고서 알송당에 좌정한 소천국은 다른 여자를 들이고 자신이 본래부터 잘했던 사냥을 하며 살았다.

▲ 소천국당.소천국이 백주또와 살림분산하여 이룬 당이다. 알손당의 본향당이었으나, 현재, 송당의 백주또 당이 사람으로 들끓는데 비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2009년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신당조사 과정에서 찾아낸 당. 제공/제주전통문화연구소)

혼자 사는 백주또는 아들이 세 살이 되어가니 아버지나 한번 보게 하려고 소천국을 찾아 갔다. 세 살 난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자 아버지 무릎에 앉아 수염을 뽑고 가슴을 때리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소천국은 이런 아들에게 버릇없고 불효한다 하면서 무쇠석갑에 담아 동해 바다에 띄워버렸다. 


무쇠석갑은 물 위에도 연 삼 년, 물 아래에도 연 삼 년 떠다니다가 용왕황제국에 들어가 산호수 가지에 걸렸다. 무쇠석갑에서 밤에는 초롱불이 등성하고 낮에는 글 읽는 소리가 등성하여 용왕황제는 막내딸을 시켜 무쇠석갑을 열게 하였더니 정체 모를 도령이 튀어나왔다.
결국 막내딸과 천정배필을 맺게 된 이 도령은 소도 전(全) 마리, 닭도 전(全) 마리를 먹어대어 용궁의 창고가 점점 비어가게 되었다. 황제는 하는 수 없이 막내딸아기에게 말을 건넸다.
“이거 안 되겠다. 너로 해서 얻은 근심이니 네 남편을 데려서 나가거라.”


용왕의 막내딸아기는 남편에게 말을 시켰다.
“남인님아, 남인님아, 아버지에게 가서 무쇠 바가지 하나, 무쇠 방석 하나, 금동 바가지 하나, 상마루에 매어 둔 비루 오른 망아지 하나 주면 이 용왕국을 나가겠다고 이르십시오.”


그래서 그들 부부는 다시 무쇠석갑에 담겨져 강남천자국에 떠올랐다. 그 곳은 때마침 큰 난리 중이었다. 부부는 바다에서 가져온 비루 오른 망아지를 타고, 천 리에 번쩍, 만 리에 번쩍하며 난을 평정했다.

▲ 송당리에 있는 백주또 당궤.

아들에게 ‘네 살 곳으로 찾아 가서 좌정하라’ 이르다.

강남천자는 부부에게 큰 상을 내리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제주땅으로 들어왔다. 백주또는 아들에게 ‘살 곳으로 찾아 가서 자리를 잡고 마을을 다스리며 좌정하라’ 하였다. /김정숙   

* 현용준「제주도 무속자료사전」, 문무병「제주도무속신화」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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