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책놀이책 Q&A] (2) 아이 독서 얘기 하면 한숨부터 나와

# 에피소드2. 아이를 작아지게 만드는 부정적인 말들

“ 주원이는 왜 책을 읽어 달라는 말을 안 할까?”
“ 요약하는 걸 너무 힘들어한다.”
“ 주원이는 소라처럼 책을 혼자서 소리 없이 읽어내는 수준이 못 된다.”
“ 엄마가 읽어 줘야만 책을 읽는다.”

주원이와 칭찬 놀이를 하기 위해 준비하다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주원이를 대하면서 했던 말이 모두 부정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설적인 표현을 주원이에게 하고 있었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마 전에도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했더니 앞부분만 세세하게 말해서 아이에게 답답하다고 말했던 일도 떠올랐다. 내가 주원이와 책을 잘 이어 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죄책감도 들었고 그간 주원이가 혹시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아이 독서 얘기 하면 한숨부터 나와

엄마들을 만나서 아이 독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부터 한숨이 난다. 아이 독서에 대한 아쉬움이 넘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의 정확한 독서 취향이나 독서력, 독서 수준 등은 알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아이는 이 정도까지는 하는 것 같다. 나머지는 노력하고 있다.”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의 독서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이와 같은 현상이 많은 가정에서 나타나는 까닭은 부모님이 아이 자체를 그대로 바라보기보다는 ‘비교 대상’을 가지고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집 철수’ 같이 명확한 비교대상이 있지 않더라도 ‘내 아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아이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아이에게 사교육이나 체험학습 등 비용투자가 많은 부모님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아이 학교 학습과 독서력,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생활비의 부담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그걸 원했나?’라고 자문해본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애초부터 부모가 원하던 모습에 맞게 아이를 움직였지, 아이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러 개의 학원에 다니면서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하는 표정으로 부모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아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오늘도 계속 된다.

 

# 솔루션2. 아이 그 자체로 바라보기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 요약이 많이 힘든가 보구나.”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선생님께 코치 받은 대로 말끝에 ‘~구나’를 붙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고 말해 보았다. 평소 사용하던 말투가 아니라서 스스로 앵무새처럼 느껴지고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주원이가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반응하는 엄마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니 계속 이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주원이가 좋아하는 책이 엄마가 고른 책이랑 달라서 깜짝 놀랐어.”
“ 엄마, 난 이 책 앞부분이 제일 좋아.”

주원이가 책의 앞부분을 좋아한다고 말한 이후로 굳이 뒷부분까지 기억해 보라며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앞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원이는 자신이 감동 받은 부분을 이야기하며 조금씩 책에 대한 감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뒷부분에 나왔던 인물들과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한 힌트를 던지며 주원이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나서 아이와 산책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한 번 책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번에는 주원이의 반응이 달랐다. 책의 핵심적인 내용과 전체 내용을 제법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칭찬 놀이를 통해 아이와 책을 사이에 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최선을 다 한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아이 스스로가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을까, 부모가 더 잘 알고 있을까?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 한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한다. 요컨대 인간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본능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알고 있다면 아이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이의 모습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아이의 처지에서 본다면 최선을 다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아이와 진정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많은 가정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를 살펴보고 해결해온 관점에서 원인을 분석한다면 ‘대화 단절’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한마디로 부모와 아이가 어떻게 대화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다. ‘인정’하고 ‘존중’만 해줄 수 있다면 대화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궁금함’이다. 궁금하면 묻게 되고 물으면 대답을 들어 알게 된다. 반대로 원망하면 따지게 되고 따지면 해명을 하거나 방어를 하게 된다. 방어만으로 끝나지 않고 끝내 아이가 역습을 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왜 우리 아이는 이렇게 요약을 못할까?”는 원망이다. “우리 아이가 요약을 못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는 궁금함이다. 원망은 마치 전쟁처럼 마음의 화살이 상대방으로 향하게 되지만, ‘궁금함’은 아이와 엄마가 팀을 이뤄 공동 목표를 만들어갈 수 있다. 아주 조그마한 차이이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뒤따른다.

아이에게 원망과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께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창 시절 시험지 체점할 때로 잠시 돌아가 보자. 어떤 사람은 맞은 것에 O 표시를 하고, 어떤 사람은 틀린 것이 X 표시를 하면서 채점을 한다. 아이를 하나의 시험지라고 생각하고 일단 속는 셈 치고 O 표시만 한다. 즉, 아이가 잘 한 부분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이를 칭찬한다. 아이가 잘 못하는 X 표시는 다른 아이도 대부분 틀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 마음속에서 O표시를 늘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칭찬을 더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 X 표시 부분은 가만히 놔둬도 괜찮은가 하는 질타가 들리는 듯하다. 오답 노트 작성하던 때를 떠올려 보라. 오답 노트는 틀린 것을 성토하는 장치가 아니라, 왜 틀렸는지 궁금하다는 입장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아이가 잘 못하는 부분은 오답 노트 쓰듯 서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 보자.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진심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오승주 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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