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뜬 땅, 내 것 남의 것이 없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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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8)  백주또는 정착의 문화를 표상한다


무속인들은 굿을 할 때 제주의 송당 지역을 ‘불휘공’이라 부른다. ‘불휘공’은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뿌리, 즉 신앙의 가장 근원적인 뿌리가 되는 곳’이란 뜻이다.


제주지역은 전체적으로 볼 때도 비교적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땅이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까지 송당은 사냥과 방목을 통한 제주의 중심적인 생활터였고 신앙의 중심지였다.
웃또(바람 위에 좌정한 신), 하로산또(한라산의 신)이며 산신인 소천국은, 제주 지역 전체와 그리고 제주의 불휘공인 송당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신이었다. 백주또가 송당의 중심 신이 된 것은 농경을 시작하면서다.


소천국은 이동의 문화를 표상


송당 신화에서도 그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신화를 보면, 원래 한라산을 떠돌며 사는 토착신인 소천국은, 외지에서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들어온 백주또와 결혼을 하고,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게 되면서 가족부양력의 문제에 부딪힌다. 백주또가 농사를 짓자고 권유하고 소천국은 그  제안에 동의하여 지금까지의 사냥 생활을 접고 밭으로 나간다.

사냥의 식성을 가진 소천국은 배가 고파지자, 밭을 가는데 써야 할 소를 잡아먹는데, 한 마리로는 부족해 옆에 있던 남의 소까지 싹뚝 잡아먹어 버린다. 농사를 지을 소였지만 자기네 소를 먹는 일이야 예사로 있을 수 있다고 넘어갔다. 하지만 남의 소까지 먹어버린 것에 대해서 백주또는 아무리 자기 남편이지만 용납할 수 없다. 백주또는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분산하자고 요구한다. 결국 소천국은 알(아래)송당에 내려가 원래 하던 사냥을 계속 하면서 살고, 백주또는 송당에 좌정하여 마을신이 된다.


소천국은 비정착의 질서, ‘이동의 문화’를 표상한다. 반면 아내인 백주또는 농경과 ‘정착 문화’의 표상이다. 신화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의 흐름, 신들의 속성, 신들 간의 관계나 그와 관련된 당시의 제주 사회를 상상해본다면 소천국은 목축신이라기 보다는 ‘이동’에 방점을 찍고 ‘이동신’으로, 또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들어왔지만 백주또 역시 농경보다는 ‘정착’에 방점을 찍고, ‘정착신’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더 맞아 보인다.


여전히 제주 경제의 많은 부분은 사냥에서 시작하여 방목과 바다를 통해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주또는 단순히 농경생활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그 농경 생활이 가져다주는 ‘정착’의 개념으로, 소천국은 그에 상대하는 ‘이동'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 2013년 3월 24일 제주에서 열린 굿페스티발, 제주큰굿과 새남굿, 별신굿이 재현되었다. 사진은 제주큰굿 편에서, 어김없이 백주또와 소천국이 불려 들여지는 장면이다.

부의 축적과 인구집중, 사회의 규모적 발전은 ‘정착’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송당에서의 백주또의 좌정은 농경적 질서-마을, 정착, 축적-의 선택이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송당 사람들의 희구를 의미한다. 백주또와 송당사람들이 내쫓은 소천국은 그가 가지는 비정착적, 이동적인 요소들이다.


식성, 본성이 다른 부부가 같이 살아가기 어렵듯, 이동의 문화와 정착의 문화는 서로 친화하기 어렵다.
결국 소천국과 백주또의 갈등은 정착문화와 이동문화 간의 대립이고 갈등이며, 이는 송당이라는 마을지를 고려해볼 때 목축, 조와 감자 등의 농경적 정착문화와 사냥이라는 이동문화 간의 갈등으로, 구체적으로 접목시켜볼 수 있다.


과거, 비교적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땅의 제주에서 송당은 사냥에 적합한 곳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최고 마을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마을이 생기고 농경과 정착생활이 새로운 지배적 질서가 되면서 마을은 소천국의 관리가 아닌 백주또의 관리를 요구하게 되었다.


소천국의 이미지, 즉 이동의 규범과 질서들은 배제되었고, 대신 정착사회의 규범과 질서의 이미지로서, 여신 백주또가 전면 부각된다.

소천국의 문화에서 소를 먹은 것도 그들의 습성이지 나쁜 행위가 아니다. 한 마리로는 입가심에 불과하니, 또 한 마리를 먹어치워야 하는 것도 대식가인 그들의 식성일 뿐이다. 또한 수렵과 채집이라는 이동의 문화에서 자신들이 늘 해 왔던 대로, 옆에 있는 또 한 마리의 소를 잡아먹은 것이지 도둑질해서 먹은 게 아니었다. 채집과 수렵의 문화에 네 것, 내 것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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