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소설책 한 권에서 시작된 중국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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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혁의 중국횡단기] (28) 여행 첫 밤을 보냈던 꽌샹산꽁위엔으로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지난을 거쳐 칭다오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가 넘어서 도시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시내로 들어와서 사람들이 내리는 걸 보고 따라 내렸는데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근처에 세워져 있는 택시에 다가가서 말했다.

“꽌샹산꽁위엔!”
몸집이 비대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택시기사는 40원을 내라고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인다.
“헌꾸이 니게이워피엔이디엔(너무 비싸다, 좀 싸게 해달라).”

그가 뭐라고 말을 했는데 그것이 깎아주겠다는 것인지 안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택시를 탔다.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 그는계속하여 알 수 없는 말을 나에게 걸어왔다. 나는 내일 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나며 오늘밤은 ‘꽌샹산공위엔’에서 보내야 한다고 그에게 말해줬다. 가까운 데 호텔이 많은데 왜 거기까지 가냐, 자기가 소개해줄 수 있다. 그는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중국여행의 첫 밤을 보낸 거기에서 마지막 밤도 보내고 싶었다. 그래야 내일 아침 작별인사를 할 수 있으니까. 택시가 근처에 다 왔는지 건너편 쪽을 가리키며 올라가기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이즈저우바(계속 가세요).”

내가 말하고 나서야 공원 안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어둠 속에서 낯익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까지 다 올라와서 50원 지폐를 꺼내주자 기사는 15원을 거슬러주고 택시를 돌려 내려갔다. 걸음을 떼어 유스호스텔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Old Observatory’간판이 불을 밝히고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데스크의 여자는 첫날 맞아주었던 밝고 환한 미소를 짓던 그녀가 아니라서 좀 실망스러웠다. 방은 별관으로 떨어진 곳에 독립된 10인실이었다. 침대에 배낭을 내려놓고 본관 건물 꼭대기에 있는 카페로 갔다. 비좁은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거기서 서빙을 하는 젊은 친구가 나를 보더니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You came back again(다시 왔군요).”

그는 처음 봤을 땐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안경 낀 모습이 앳돼 보이기까지 했는데 그사이에 머리를 빡빡 밀어버려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더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 과격해 보이기도 했다. 맥주와 땅콩 한 접시를 주문하자 그는 생맥주통을 가리키며 생맥주 마실 것을 권했다. 전에는 없었던 생맥주가 그새 들어온 것이다. 플라스틱잔에 두 잔을 마시고 일어섰다. 한가하고 조용하면 더 오래 앉아있고 싶었는데 유럽에서 온 노부부와 젊은 학생들이 10여 명 섞여 독일어인지 스페인어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요란한 술판을 벌여놓고 있어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미뤘던 샤워를 하고 이틀 만에 양치질도 했다. 침대위 이불 속으로 들어가니 편안한 기분이다. 아침 8시. 데스크에서 보증금을 돌려받고 밖으로 나섰다. 꽌샹산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다. 공원에는 늘 그렇듯이 중.노년의 아주머니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운동과 율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바람이 상쾌하고 시원하다 싶었는데 조금 지나자 다소 거세지면서 서늘해졌다. 처음 왔던 날 아침 걸어 내려갔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거리에는 차들이 홍수를 이루고, 사람들이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활기로 가득 찬 아침. 기독교당을 지나고 오래된 플라타너스 가로수길과 소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해변을 지나 커피점 엔제리너스에 도착했다. 지난번 안경을 찾아준 소녀는 안 보인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과 햄버거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였다. 손님도 없고 종업원도 눈에 안 띄는 가게의 해변도로가 내다보이는 창가에서 이번 여행을 반추하며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한국으로 가는 페리호는 오후 5시 30분 출항이고 오후 두세 시경 여객 터미널에 가면 되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한 시간여 지나서 이젠 일어서야지 생각하는데 거의 동시에 두 가지 중요한 일이 발생하였다. 하나는 유스호스텔에서 체크아웃하면서 맡겨둔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또 다른 하나는 커피점에 비치된 칭다오 시내 지도를 훑어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
라오서공원과 라오서옛집(老舍故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서둘러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 택시기사는 ‘꽌샹산 꽁위엔’을 잘 안다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가 간 곳은 처음 칭다오에서 택시를 탔을 때 갔던 ‘신하오산공위엔’이었다.

“이치엔 워라이궈 짜이쩔, 쩌스 신하오산꽁위엔.(전에 여길 온 적이 있다. 여기는 신호산공원이다.)”
마치 오래전 봤던 영화를 다시 보듯이 낡은 필름이 군데군데 끊기면서 처음 칭다오에 왔던 일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주변 사람에게 뭔가 물어보더니 차를 돌려 산을 내려갔다 다시 곧 다른 산길을 올라가서 꽌샹산꽁위엔에 도착했다. 배낭을 택시에 둔 채 잠시 기다리게 하고 유스호스텔로 들어갔다.

그런데 데스크에 그녀가 있었다. 처음 왔던 날 까만 안경을 끼고,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던 여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내가 말도 하기 전에 여권을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여권을 받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Do you remember me? Today I leave China, go back to Korea.”
“스마(그래요)? 바이바이.”

▲ ⓒ양기혁
▲ 벗꽃이 피자, 청도의 바닷바람조차도 초목의 생장을 막지 못한다.

나를 기억해주는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게 돼서 다행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다시 택시는 라오서꽁위엔으로 가서 라오서 동상 앞에 나를 내려줬다. 삼국지나 수호지, 서유기 같은 중국의 고대소설은 한국 사람들에게 도 어렸을 때부터 필독서로 여겨질 정도로 친숙하고,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게 된다. 하지만 홍콩에서 나오는 무협지들이 주로 읽힐 뿐, 이념이 다르고 외교가 단절된 상태에서 중국의 현대문학과 그 작가들은 사실 생소하고, 루신(魯迅) 정도가 세계문학전집의 한 구석을 차지할 뿐 그 외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중국어를 배우기 전에 ‘루어투어 시앙쯔’라는 특이한 제목의 번역소설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것은 20년도 더 전이었다. 상하 두 권으로 된 책은 상권의 절반도 넘는 분량을 해설로 채우고 있었는데 그 해설을 읽다 지쳐서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나서 방송대 중문과 졸업논문의 제목으로 제시된 것 중에 ‘샹쯔의 세계관의 변화’를 보게 됐을 때 그 책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졸업논문으로 선택했고, 마침내 그 책을 독파했다.

논문은 쓰지 못하고, 한자자격시험으로 대신했지만 덕분에 내가 아는 중국 현대문학의 작가와 작품이 생기게 되었고, 칭다오에서 그 라오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양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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