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그는 지금 진보정의당 2단계 창당 작업을 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이재홍이 만난사람>: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당명에서 ‘진보' 뺄 수 있어...NL-PD 넘어 복지국가 모델 제시해야"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87년 이후 진보정치 진원지인 옛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면서 그동안 국민들에게 막연하게나마 자리잡았던 ‘진보정치=빨갱이’ 선입관을 깨면서 진보정치의 지평을 연  대중적인 진보정치인이다.

노회찬에겐 성역이란 게 없다. 부패와 비리를 정확히 관통하는 그의 촌철살인은 ‘노회찬 어록'이 만들어 질 정도다. 자본과 권력의 손을 들어주고,  앞에선 소리치고 뒤에선 고개를 숙이던 정치인들을  익히  봐 왔던 국민들 눈에 거침없는 그의 행동은 ‘3류정치'와 ‘1류정치'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줬다. 지난해 진보정치 진영의 자중지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19대 원내에 진출했다.   노회찬 정치가 밑바닥에서 먹히고 있음을 당당히 보여줬다.    

그런데, 지난 2월14일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노 대표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그는 의원직을 잃었다. 결국엔 정의가 이기리라 믿었던, 아무리 현실법이 그렇더라도 어떻게 뇌물주고 받은 이는 그냥 놔두고 이를 세상에 알린 고발자를 처벌할 수 있느냐는 대다수 국민들의 법감정은 무용지물이었다.
 
지난 2005년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삼성그룹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의혹을 보여주는 ‘삼성 X파일'을 폭로했다. 1997년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의 지시로 이회창 대선후보와 검찰 간부 등 정·관계 고위인사들에게 명절 ‘떡값'을 제공키로 논의한 내용이었다. 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도청전담팀인 ‘미림팀'이 도청한 녹취파일을 입수해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 앞서  이학수-홍석현 대화내용과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이 담긴  보도자료를 국회 기자단에게 배포했다. 그리고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떡값검사 명단에 오른 안강민 전 시울지검장은 노 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그를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였다. 대법원에서 당연히 무죄 판결을 예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명예훼손은 무죄, 통신비밀보호법은 유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노 의원이 폭로한 내용이 허위가 아니며 보도자료 배포는 면책특권에 해당되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를 홈페이지에 올린 건 위법성이 인정된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떡값을 준 놈, 받은 놈, 알선한 놈’은 전원 무혐의 처리됐다. 검찰은 떡값을 주도록 지시한 이건희 회장은 조사도 하지 않았고, 홍석현 회장에겐 증인출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한 게 고작이었다. 노 대표는 대법원이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직후 “오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니며, 국민의 심판과 역사의 판결이 아님 남아 있다"고 말해 대법원의 판결의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외면했음을 꼬집었다.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공동대표는 원외지만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언론역시 어느 현역 의원 이상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한다. 진보정치의 새로운 출발과 그의 진정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바쁘다.  위기에 직면한 진보정치를 살리기 위한 진보정의당 2단계 창당준비에 눈 코 틀 겨를이 없다.  국민들을 직접 만나 ‘정의와 진보정치'를 이야기 하기 위해 ‘강연투어'도  수첩에 빼곡하다.   

<제주의소리>가 지난 24일 강연차 제주에 내려온 노회찬 공동대표를 만났다. 노 대표는 “제가 좌절했다고 그것으로 끝난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분들이 X파일이 무엇인지 더 알게 됐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감정을 갖고 있다. 왜 사법정의가 바로 서야 하는지 일깨워 줬다”며 삼성 X파일은  현재 진행형임을 강조했다.

노 대표는 “이제 한국 정치는 영남-호남의 패권정치가 아니라 정책중심의 진보-보수 양축으로 재편돼야 한다”며 진보세력 재편을 위한 2단계 창당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진보정치도 이에 맞게 낡은 NL-PD 이데올로기 논쟁을 넘어 국가모델로서의 새로운 정책노선을 밝혀야 한다. 복지국가 모델로서 북유럽 사민주의 정책을 현실에 맞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긴 하지만 미국을 보고 ‘복지국가’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공화-민주 양당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나라도 미국가 마찬기자다. 우리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선 지금의 영남-호남 정치구도를 보수-진보 경쟁구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과거가 어떻든 진보의 가치, 복지국가 노선에 동의하고 확실하다면 같이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민주당 중심으로 뭉치자는 이른바 빅텐트론에 대해선 “이미 지난 대선에도 실패한 거 아니냐. 불에 탄 불판을 바꿔야지 판은 그대로 놔두고 새고기를 올려봐야 결국은 탄 고기 밖에 안된다”며 진보정책 중심으로 전면 재편론을 주장했다. 

노 대표는 안철수 의원의 독자정치세력화에 대해 “국민들은 (안철수-신당) 민주당과 진보의 대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판은 그냥 놔둔채) 안 의원 중심으로 바뀌면 과연 뭐가 달라지겠다"며 안철수 신당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는 “진보정치 중심으로 새롭게 모이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노회찬 공동대표와 인터뷰 전문 내용.

 # “삼성X파일 역사적 판결 남아...사법정의 왜 필요한지 보여준 사건".
   
-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여전히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내일 (진보정의당) 전국위원회가 예정돼 있고, 6월15일 당대회다. 2단계 창당을 앞두고 전열을 정비하는 차원에서 순회토론회와 지방 강연 등으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다.”

▲ 노회찬 대표는 지금의 새누리-민주당, 영남-호남 정치구도로는 정치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진보와 보수 정책중심으로 정치권이 재편돼야 한다고 말한다. ⓒ 제주의소리
- 노 대표는 진보정치에서 몇 안되는 대중정치인이다. 삼성이 검찰에게 떡 값을 건네준 이른바 X 파일을 폭로해 떡값 주고 받은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됐다.

“저로서는 할 일 했다. 개인적인 불이익 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삼성의 힘이 사법부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우려스럽다. 좀 더 사법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 노 대표는 대법원 판결직후 “대법원 판결이 최종심이 아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정의를 이야기 했다.

“일단 제가 맡았던 전투에서는 졌다. 거대권력과 재벌의 유착했는데 법의 심판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가 좌절했다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판결로 저의 사건과 문제의식의 공감대가 더 넓어졌다. 처음 폭로했던 2005년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의원직 상실 과정에서 분들이 삼성X파일이 어떤 내용이고, 대법 판결에 대해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다는 감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남아 있다는 얘기를 했다.”

- 그래서 정치권에선 노회찬법이라고 불리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운동이 일고 있다.

“현재 국회 상임위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더 가봐야 하지만 안철수 의원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 과거처럼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 다시 폐기되는 일이 반복되면 안된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는 공익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처벌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노회찬 대표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두 가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X파일 사건은 거대권력과 재벌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검찰은 떡값을 받았다. 그자체가 잘못이고, 법정에서 엄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지 못하고, 힘있는 사람은 죄를 면하게 되는 것을 국민들은 목격했다. 사법정의가 바로서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는 경제민주화다. 최근들어 ‘을’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시장정의의 문제다. 시장에서 강자와 약자 공존할 수 있고, 합리적 계약관계가 과연 보장될 수 있느냐가 시장정의다.       마지막은 분배정의다. 분배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실현돼야 한다.  시장정의·분배정의가 경제민주화 시대의 정의다.”

 # “지금 진보정치는 위기, 이번이 마지막 뼈아픈 자기 혁신 통해 거듭나야"

- 노 대표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의당 존재감이 없다. 안타 깝지만 진보정치는 국민들에게  불신을 받고 있다.

“1987년 이후 시작된 진보정치가 이제 25년으로 사반세기다. 민주노동당은 15년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진보정치가 뿌리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초기보다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흩어져 분산·분열돼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현 진보정치는 극심한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진보정치를 배척한다기 보다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 요구 더 커지고 있는데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뼈아픈 자기혁신을 통해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기득권, 패권정치를 극복하고 정책 중심으로 경쟁해야 한다. 다른 나라처럼 진보정치가 한 축으로 바로 서야 한다.”

- 지금 전국적으로 강연투어를 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진보정치에 무엇을 바라고 있다고 보는가.

“국민들은 진보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만큼 큰 신뢰와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진보세력이 기성 정치체제에 들어온 게 오래되지 않았다. 탈기득권,  가난한 자, 서민 목소리를 듣고 실현한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진보정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문제는 실제로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는 데 진보정치가 그 기대에 못 미쳤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이해할 수 없는 주장에 국민들은 실망했다. 국민의 열망을 받아들여서 제대로 고쳐낸다면 얼마든지 20% 지지율은 가질 수 있다. 아직 진보정치가 해야 할 역할이 남아있다. 제대로 자란다면 한국정치를 선진화 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진보정의당 2단계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우선 두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세력 재편이다. 진보라는 단어는 독점물 아니다. 지난 시기를 반성해야 한다. 양적 팽창을 위해 무원칙 하게 통합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과거의 퇴행적 관행을 극복하고 국민시각에서 진보를 폭넓게 규합해야 한다. 진보정의당으로 국한시키지 않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전후까지 내다보고 추진하고 있다. 시급하게 올해 7월까지 진보정책과 노선을 정하고,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는 정책을 내놓고 환골탈태하는 혁신안을 마련해 6월 당대회를 거쳐서 7월 당명 개편과 지도부 개편까지 이어진다.”

- 진보정의당이 사민주의 노선을 채택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진보정치의 폐단은 국민 현실과 동떨어진 NL-PD의 낡은 정파대립, 종북논쟁 등을 해왔다는 것이다. NL-PD를 넘어서 복지국가 노선으로, 이데올로기 보다는 국가모델을 지향하는 것을 밝혀야 한다. 국가모델로 사민당 정책노선을 현실에 맞게 재조명하는 게 필요하다는 당 내부의 일치된 내용이다. 다만 그것을 두고 사민주의라고 부를 것이냐는 정리가 덜 된 부분이다. 기본적 틀로서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 평화로운 한반도가 핵심적 가치다. 요즘 당에서 유럽복지국가 대사를 연속으로 초청해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주 스웨덴대사를 초청했고, 다음주 독일대사, 핀란드대사 연속적으로 초청해서 얘기를 들을 예정이다.  운동권 정파로서 NL-PD가 아니라 다수가 원하는 게 복지국가 모델인데 어느 나라의 것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한국적 현실에서 재창조해야 한다. 이런 노선을 밝히려고 한다. 이게 혁신이다.”

 # “진보는 고집불통? 당명에서 ‘진보’ 단어 빼는 것도 검토"

- 노 대표는 ‘진보라는 두 글자로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진보의 획기적 전환, 진보의 쇄신을 주문하고 있다.

“진보라고 하면 진부하다는 면이 있다. 진보세력을 자처해 왔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진보는 독점물이 아니다. 민주당도 진보라고 하지 않느냐? 진보기치를 내건 세력의 시행착오나 오류로  진보라는 게 국민들 눈높이를 의식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나 특정세력 대변, 북한문제에 비판하지 않는 부정적 평가도 어느 정도 덧 씌어진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 우려도 경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 달라. 당명에서도 진보라는 단어를 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그럼 진보 대신 사민주의로 대치되는 것인가?

“생활에 도움이 되고, 필요한 정책중심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운동권적 문제의식에 매몰돼 ‘당신들 정체는 뭐냐?’는 물음에 직면한 상태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것보다 계승할 것은 발전시키고, 시대에 안 맞는 것은 걷어내겠다. 거품은 걷어내고, 진국을 제대로 만들겠다.”

- 혹 일각에서 우클릭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유럽 많은 나라에 있는 정책을 쉽게 채택 못할 복지정책이 많다. 우리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우클릭이 아니다. 책임 있는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다.  집권세력은 우리가 집권하면 어떻게 달라진다는 정책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막연하게 꿈 같은 변혁을 얘기하는 게 세게 보일지 몰라도 현실에서 대안이 되지 못한다.”

- 민주당도 복지를 얘기한다. 차별성은 무엇인가?

“민주당에 비슷한 생각 가진 분도 있다. 민주당 자체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애매한 성향을 보인다. 선거 앞두고는 진보를 얘기하고, 패배하면 보수를 얘기한다. 이런 엉거주춤한 태도가 문제다. 새누리당과 다르지 않은 점이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긴하지만 미국을 두고 복지국가라고 하진 않는다. 공화 민주 양당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은  보수고, 다른 한쪽은 보수에 리버럴 한 것 뿐이다. 그러니 개혁 복지정책 성과가 안나온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비슷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바로 그렇다. 이젠 우리도 수준이  높아진 만큼 정책중심의 보수-진보 경쟁구도가 돼야 한다. 지금처럼  영남이냐 호남이냐라고 하면 국민만 피해 본다.  새정치는 인물만 바꾸는 것으로는 안된다. 지금의  영남-호남 구도를 보수와 진보로 판을 바꿔야 한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판이 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불에 탄 불판 위에 새 고기 올려봐야 탄 고기 밖에 안된다.”

▲ 노 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빅테트론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실패했다"고 말했다. 안철수 신당에 대해서도 "판을 바꾸지 않는 한 안철수 중심으로 모인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진보정치 중심으로 새롭게 모이자"고 제안했다. ⓒ 제주의소리
 # “민주당 빅텐트는 실패.. 영-호남 구도가 아닌 진보-보수로 정당 재편돼야" 

- 민주당이  김한길 대표 체제로 출범했다. 세력개편에 함께 갈 수 있다고 보나.  

“현재 민주당은 굉장히 과도기적 상황이다. 확실한 노선도 없고, 내분이 있는 데 봉합상태다. 안철수 그룹과 통합하게 될 지 등 이런 것들이 미정인 상태다. 과거가 어떻든 한국정치에 진보의 기치, 복지국가 노선에 동의하고, 확실하다면 같이 할 수 있다.

- 대선 이후 정치가 실종됐다는 말들이 국민들 입에서 나온다. 여당의 잘못이 크지만 민주당이 대선패배 이후 야당으로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어찌보면 이 문제는 대선 이후 발생하는 것 만은 아니다. 대선 전에도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40%를 넘는데, 민주당 지지율은 20% 밖에 안됐다. 현재의 민주당 갖고는 답이 없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도 나온 것이다. 영남에서 새누리당 깃발 들면 누구든 당선되고, 호남도 이 그대로라면 앞으로도 유사하게 되돌아간다.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정치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정책으로 합리적 경쟁 통해서 국민 지지를 받아야 한다. 현행 선거제도는  ‘alll or nothing’ 이다. 총선도 1명만 선출하는 선거제도다. 49대 51 구도에서  49% 국민들 의사는 묵살된다. 소선거구제도는 타파해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소선거구제는 영-호남당이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체제다. 자기 나와바리 챙기고 보장해주는 것이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는다. 현재 정치가 안바뀐다.  병이 있으면 정확한 처방이 필요하다. 우리 정치가 경제 문화에 비해 낙후돼 있고,  전근대성을 면치 못한다. 정치야 말로 혁명이 필요하다.”

- 노 대표는 ‘향후 정당체제는 보수와 진보 양대축으로,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양당체 제로 개편돼야 한다’고 말한다. 예전 제3의 당, 다당제 구도를 이야기 한 것과는 생각이 바뀐 건가.

“두 당만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보수-진보로 가는 건 맞다.  변화해야 하는데 스스로 안 변하니까 제 3당 만들어서 하자는 거다.  진보의 축을 새롭게 세우자는 거다. ‘민주당 중심으로 다 모여라'는 빅텐트는 지난번 대선에 실패했다. 애매하게 진영 논리에 따라 크게 2개로 모이자는 것은 안된다. 보수-진보라면 괜찮지만 영남-호남이면 실패다.”

 # “안철수 중심으로 모인다고 뭐가 달라지나? 판을 바꿔야 한다"

- 안철수 의원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들어갔다. 어떻게 보나.  

“국민들은 (안철수-안철수 신당을) 민주당과 진보의 대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는 내용을 중심으로 새롭게 모이자고 제안하고 싶다. 가능하면 보수-진보 이렇게 모이는 게 바람직하다. 민주당에 진보도 있지만 보수도 있다. (보수지만) 당선에 유리하니까 민주당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체제에서 안 의원 중심으로 바뀌면 과연 뭐가 달라지느냐. 새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모이는 사람 보면 그나물에 그밥이다. 판은 안 바꾸고 새 고기를 넣으면 불에 탄다. 판을  바꿔야 새정치 가능하다. 그런 과정에서 진보가 하나로 다 모이는데 참여할 수 있다. 저희가 하자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 안철수 의원도 진보를 이야기 한다. 노 대표가 말하는 정책중심의 진보정치로 보나. 
 
“판단을 유보한다. 무엇인가 내놓고 있는 게 없다. 함부로 평가할 부분이 아니다. 안철수가 하든 누가 하든 새로운 판을 바꾸는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야권 재편논의가 있었다. 시민사회와 함께 한다, 젊은피 수혈한다, 당명을 변경한다 등 여러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다시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개선하는 정도 갖고는 힘들다.”

- 판을 바꾸자고 하지만, 판을 바꾸려는 주체가 같다면 옷만 바꿔 입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선거를 하고 나면 40% 이상 바뀐다. 알게 모르게 기존 정치인은 나가고, 새로운 사람으로 충원된다. 교체율이 40%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가 낡아 보인다. 왜냐하면 사람은 바뀌었지만 시스템이 낡았기 때문이다.  양 김이 정치를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양김이 만든 정당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 당시엔 양김체제가 불가피한 산물이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으로 집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그 집은 영남과 호남의 집이 아니라 진보의 집, 보수의 집이어야 한다. 그게 변화다.”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3개월이 넘었다. 평가를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는 게 국민과 다음 정부를 위해서 좋다. 이명박 정부의 결정적 문제점이 박근혜 정부에서 덜 드러나는 점은 좋다. 예를 들면 광주에 직접 내려간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 여권 주요인사가 참여하고, 북한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악용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덜 위험하게 정국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뭘 하고자 하는 지 보여주는 게 없다. 초기엔 인선문제로 시끄럽더니 지금은 추진되는 게 없다.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다. 이는 집권초기가 아니면 기득권 반발 때문에 자리 잡기 힘들다. 지금이야말로 강력히 밀어붙여야 하는데 말이 달라지고 있다. 특권층에는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국민에겐 경제민주화를 하긴 하겠다고 하는 데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은 집권 초기여서 조금 여유를 주고 지켜보고 있지만 내심 불안하다.”

-  과거 역대정부를 보면 개혁정책은 집권 초기에 강력히 추진해야 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그런 모습이 없다. 

“돌이켜보면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들이) 뭔가 기대하게 만들었고, 정책도 실제로 추진했다. 여권은 방미 성과가 윤창중 때문에 진흙탕이 됐다고 하는데 그 사건 자체는 말도 안되는 참변이긴 하지만,  그 사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게 없다. 뭘 약속하고. 뭘 선포한 게 없다. 우방에게 인사드리러 간 것 빼고는 내용이 없다.  역대 정권 초기에는 개혁드라이브로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지금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식으로 보여지는 게 없다.”

 # “당장 제주해군기지 없다고 안보 위협 안돼...일단 충분한 시간 갖자...” 

- 제주해군기지 문제,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지 해법이 잘 안보인다. 현장에서는 계속 싸우고 있고, 강정주민들은 7년째 고통을 받고 있다.

“제가 절묘한 타개책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정부에 드리고 싶은 말은 일단 시간을 갖는 방향에서 일을 추진했으면 한다. 당장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없다고 먹고 사는 데 지장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남방 해상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데 남방해상로에서 어떤 문제 발생했는가. 소말리아 해적 문제도  국제공조로 대응 하고 있다. 어찌보면 해군기지가 없다고 해서 대한민국 안보에 큰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주민을 설득하고, 여러 가지 환경훼손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검증해야 한다. 그런 시간확보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이 드러나면 포기하고, 필요하면 시간을 갖고 해야 한다.”

- 정부는 해군기지 문제를 ‘정부가 결정했으니 해야 한다'는 식이다. 

“경인운하를 보자. 기획하고 입안해서 만들어질 때 정치권과 정부, 일부 주민들이 동조해서 만들어 낸 게 경인운하다. 3조원 들여서 만들었는데 무용지물이다. 유지비용만 매년 100억원대 를 들여야 하는 국가재앙이다. 내륙의 공항도 마찬가지다. 울진공항 등은 만들어 놓고도 비행기 하나 못 뜨는 현실이다. 2~3년 더 따져보고, 각자 주장이 맞는 건지 차분히 되짚어 보는 게 아까운 시간이냐. 그렇지 않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신뢰나 주장을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강압적으로 한다면 상처는 상처대로 곪는다.  경인운하나 새빛둥둥섬 별거 다 해놓고 무용지물이 되면 안된다. 정부의 자존심이나 체면 문제가 아니다. 시급한 게  아니다. 차분하게 살펴봐야하는 게 아니냐. 제가 예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공군기지도 들어온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군사적으로 중요하다면 군에서 공군기지도 솔직하게 얘기해야 하다. 그렇지 않은 걸 보니 군사적으로 시급한 게 아닌 것 같다. 제주도는 소중한 관광자원과 후손들이 몇백년 동안 향유해야 할 자연자원을 갖고 있다. 덜 써야 한다. 개발도 덜 하고, 있는 것을 더 잘 활용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제주해군기지를 전면 재검토 하길 바란다. 박 대통령은 많은 면에서 전임 대통령과 다르다. 창조적 발상을 하고 국민소통과 통합을 강조한다. 약간 더디가도 통합성 높이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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