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내니까 참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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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9) 백주또 원형

백주또라는 여신이 제주신화의 가장 중심적인 신이 된 이유는, 정착을 위해 농경이 채택되었고, 농경의 신 대부분이 여성신인 경우가 많듯 정착의 질서에 백주또라는 농경신의 이미지가 좀 더 적합해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반복적 대기의 순환과, 그러면서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자연의 혼란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끈기, 세세함이나 부지런함 등과 같은 여성적 이미지들이 농경의 생산방식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지역이나 다른 곳에서처럼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와 그에 어울리는 남신 중심의 신앙체계가 제주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부의 축적이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에게 집중되기 어려웠던 토지의 척박함과 분산성에도 원인이 있다.


여기에 한량처럼 사냥이나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을 많은 제주의 소천국에 비해, 애기구덕을 끼고, 밭과 바당밭을 일구면서 하루 종일 뛰어다녔던 백주또나 가믄장아기와 같은 현실 제주 여성들의 강한 독립성과 경제적 능력이 백주또를 여성신인데도 사실상 최고의 자리라 여겨지는 불휘공의 당신으로 좌정하게 했다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백주또가 제주의 중심 신이 되고 뿌리가 되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가지는 노마디즘 덕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신화에도 볼 수 있듯 소천국의 노마디즘은 사냥을 하기 위하여 공간적 이동만을 행했던 고답적인 것이었다. 그의 노마디즘은 기존의 특정한 삶의 방식에만 매달려 살아가면서 안주하는 삶의 행태지 진정한 노마디즘의 자세가 아니다. 그의 노마디즘은 헐벗겨진 황량한 지역만을 양산해낼 것으로 보인다.

▲ 백주또(홍진숙 그림)

한 장소에 앉아는 있었지만,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재배치하는 창조적 행위의 주인공은 오히려 백주또다.


다른 사람과 남편의 싸움이 나면 우선은 자신의 남편을 두둔하고 잘못을 감싸고도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녀는 그러지도 않는다. 남의 소를 잡아먹어버린 남편에게 대부분의 아내가 그렇듯, 남편의 행동에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잠히 있지 않는다. 자신을 투영시켜 아이들을 키우지도 않았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많아지자 삶의 방식을 바꾸자고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살아가는 소천국에게 그 준엄했던 시절에 살림을 가르자고 제안한 것도 백주또다. 고생하며 혼자 키워 온 아들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려고 찾아가기도 한다.


관계는 집단이기주의나 비타협적 인식의 온상이 되기 쉽다. 배제와 차별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모성’은 자칫 가족이기주의에 빠지기 쉽고 부부관계 또한 그렇다.
그러나 백주또는 ‘어머니’에 맹목적으로 매몰되거나 ‘아내’라는 관계 속에 매몰되어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 소천국이 바다에 던져버린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돌아오자 아버지 소천국은 도망 가버리지만 어머니 백주또는 “네가 살아갈 자리로 가서 좌정하고 살아가라”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천국의 ‘이동’은 힘 센 아들에 대한 도망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 백주또의 정착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에, 다른 배치를 이루어내도록 하는 도전, 진정한 노마디즘이었던 것이다.


백주또는 아들, 딸들을 자신의 휘하에 두면서 영역을 넓히며 군림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열여덟 아들은 제주의 전 지역으로 나가 저마다 마을을 세우고 마을의 당신이 되었던 것이다. 스물여덟의 딸도, 손자들도 제각각 마을을 세우고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 딸들이라고 차별하지 않았으며 나이가 어리다고 제외시키지 않았다. 자신만의 욕심으로 늘 똑같은 방법을 고수하며 안주했던 소천국과는 달리 백주또는 새로운 세상을 구성하는 새로운 배치를 해갈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욕망을 옮겨놓는다. 그녀에게 고착된 관계는 없다.
그녀가 제주신화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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