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 칼럼> 5월은 우리 삶의 근본을 총체적으로 압축한 달

5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오월은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하이내의 시처럼 5월은 “아름다운 꽃봉오리 피어나고/내 마음속에도 사랑이 싹트네~” 몽실몽실 곧 터질 것만 같은 꽃봉오리 그에 걸맞은 사랑의 움틈을 노래하고 있다. 계절의 여왕답게  오월을 노래한 시나 수필은 수없이 많다. 김영랑은 오월이란 시에서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암컷이라 쫓길 뿐/수놈이라 쫓을 뿐”

그리고 피천득의 수필에서도 마찬가지로 청순하고 생동감 넘치는 5월의 이미지를 “방금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과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투명한 비취가락지”라고 비유하고 있다. 어느 것이나 5월은 붉게 꽃이 피어 있는 마을길과 짙푸른 들판에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고 생명을 잉태하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5월은 유난히 결혼식이 많다. 이런 계절에  오월의 신부가 되는 것은 그것만으로 축복 받을 일이며 모든 신부의 소망일 것이다.

필자는 가끔 친지나 후배로부터 부탁을 받고 주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주례를 서면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아무리 주례를 잘해도 신랑 신부 기억 속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4일 결혼식에 주례를 부탁받았다. 오월의 신부에게 어떻게 하면 기억에 남을 말을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내 딴에는 결혼 날자가 5월 14일이라 나름대로 감상적인 말을 준비 했다. 오늘은 로즈데이다. 언제부터인가 몰라도 5월 14일을 로즈데이로 정해져 이날은 연인들 끼리 서로 장미 꽃을 주고 받게 된다. 장미가 계절의 여왕인 5월에 아름답게 피고 장미 또한 꽃의 여왕이기에 5월 14일을  로즈데이로 정한 것이다. 로즈데이에 장미 꽃 한송이 만 받아도 울렁거릴 터인데 화촉을 밝히는 것은 더 없이 복 받을 일로서 우선 축하 한다고 하면서 주례를 시작하였다.

주례 내용은 “5월 달만큼만 잘 살면 크게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5월달 날짜 순으로 설명하였다. 기억하기쉽게 함이었다. 5월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신랑 신부가 일생동안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의 보람은 삶이요 삶의 보람은 일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5월 5일은 어린의 날이다. 어린이가 없는 어린의 날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부산하겠지만 작은  아기는 등에 업고  큰 아기는 손잡고 이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다.  5월 8일은 어버의 날이고  15일은 스승의 날이며 5월18일은 석가탄신일이다.

부모님이 날 낳으시고 스승님이 날 키워주고  부처님의 가피를 주시니 오월은 얼마나 감사한 달인가 부모 은중경을 보면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천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다.

그러나 가정의 달을 무색 할 정도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여성 가족부 설문조사에 의하면 친부모가 가족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78%로, 5명 중 1명(22%)이 가족에서 친부모를 제외했다. 한편 자녀가 가족이란 응답도 5년 전 99%에서 이번엔 85%로 감소했다. 또 시부모나 장인·장모가 가족이라는 응답(80%→51%)과 형제·자매(81%→63%), 조부모(64%→23%)가 가족이라는 응답도 크게 줄었다.

사위와 며느리를 가족이라고 여기는 비율 역시 각각 24%와 26%로, 친손자나 외손자를 가족이라 생각하는 응답도 5년 만에 절반 수준(59%→27%, 48%→25%)이 됐다. 가족 기준이 '혈연'에서 핵가족 중심으로 바뀌면서 내 가족'이라고 여기는 범위가 급속하게 좁아지고 있고 종래의 가족이 붕괴되고 있어 실로 유감이다.

5월 달력에는 발간색으로 빼곡하게 축제의 날이고  행사가 적혀있다. 게다가 축의금까지 겹쳐  허리가 휘어지고 자칫 소외되기도 한다. 살기가 어려우니 찬란한 오월 가족돌보기는 고사하고 4월보다 더 잔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5월 달은 성년의 날도 있고 부부의 날도 끼어있다. 성년의 날은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5월21은 부부의 날이다. 21은 둘(2)이 하나(1)가 되는 뜻이라고 한다.

▲ 김호성 전 제주도 행정부지사
오늘부터 신랑신부는 하루가 아니고 삼백예순 다섯 날이 부부의 날이다. 머지않아 세월이 지나면서 꽃봉오리는 피었다가 시들고 사랑에 불타는 마음은 점점 식어져 석양의 자리에는 외롭고 쓸쓸한 낙엽의 그림자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5월 한 달만이라도 가정의 달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은 것이다. 5월은 우리 삶의 근본을 총체적으로 압축 한 달이며 세상 살아가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5월의 의미를 되새기면 오월의 신부는 더욱 더 생명을 잉태하고 싶을 것이다. 가정은 “사랑을 만들어가는 원초적 공동체”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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