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0)  아름다운 농경신 자청비네 올레

신화를 이야기할 때는 ‘신나는’ ‘들뜬’ ‘기분 좋은’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귀신의 본(本)을 풀면, ‘신나락 만나락 하고’, 생인의 본을 풀면 백년 원수가 되는”(본풀이를 하여 신을 찬양하면 신명이 나고, 산 사람의 면전에서 험담하다가는 원수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신화는 언제나 재밌게 이야기를 만들어 신나게 풀어야 한다. 본풀이를 구송할 때는, “오늘, 오늘, 오늘은 오늘이라. 날도 좋아 오늘이요. 달도 좋아 오늘이네”라고 덕담으로 창을 하여 ‘본(本)’을 풀어 나가는 것이다.

자, 그러면 오늘부터는 이 땅을 지배하는 여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신(女神), ‘막 고운 우리 할망’, 자청비 할망이 ‘노각성 자부연줄(천제석궁의 오른쪽 끝으로 이어진 줄)’ 타고 세상에 내려온 뜻을 생각하며, 제주의 농경신화 <세경본풀이>, 아름다운 여신 <자청비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제주 사람에게 아름다운 여신은 ‘막 고운 할망’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 할망은 얼마나 고왔을까?’하는 신화의 문맥에서 ‘아름다움’의 의미 해석과도 연결돼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다시 묻고 싶은 것은 제주도에서만 전승되는 내용이다. 농경신 자청비는 왜 입춘날 하늘에서 내려오며, 그때 자청비를 모시고 하는 입춘굿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자청비가 하늘 옥황인 천지왕에게 오곡의 씨를 받아 입춘날 지상에 내려왔던 의미나 우주의 중심이라는 광양당의 팽나무[宇宙木] 아래 제단을 만들어 거행하였던 입춘날 하늘굿은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또한 새철 드는 날에 세경할망 자청비를 찬양하는 <자청비맞이굿>은 어떤 굿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부터 풀어보겠다.

이 굿판에서 탐라왕은 몸소 소를 모는 ‘친경적전(親耕耤田)’, 즉 “친히 만백성 앞에서 밭을 갈아 본을 보였다”는 고대 하늘굿으로서의 입춘굿의 의미를 풀어내는 일, 그리고 그 입춘굿에 땅의 신, 농경신으로 세경할망의 위상을 바르게 세우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입춘굿은 ‘하늘에서 온’ 한 해의 농사를 맡고 땅에 내려온 ‘땅을 다스리는 농경신’ 자청비와 함께 내려온 땅의 일[世事]를 관장하는 신들이 새봄의 파종으로부터 일을 시작하는 날, 여기서 거행하던 하늘굿이자 풍농굿이었다는 입춘굿 이야기를 무엇보다 먼저 올레글에서 시작하려 한다.

자청비 신화의 올레글은 입춘날 밭갈이 이야기로 된다. 이는 탐라국의 건국, 그리고 하늘굿으로서의 입춘굿과 나라굿으로서의 광양당제가 모두 농경신 세경할망 자청비가 지상의 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경본풀이>의 풀이를 완성하는 데는 탐라국 건국 초기의 하늘굿으로서 입춘굿과 세경땅, 세경할망과 파종의례로서의 입춘굿의 의미들을 본풀이에 앞서 살펴보는 것이다.

▲ 입춘굿에 쓰이는 자청비 깃발. ⓒ제주의소리

제주도의 본풀이 에서 화자는 신의 만남을 이렇게 이끌어 간다. “느진댁이 정하님아. ‘저 먼 정 올레에 나강 보라.”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지어진 별명 ‘늦은댁 정하님’을 부르며, 저기 멀리 정낭 있는 올레(입구)에 나가 보아라.

이러한 말을 듣고 문밖에 나가 신을 만나는 이야기에서부터 신화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렇듯 오늘 우리는 농경신 세경할망 자청비 신의 올레에 들어서면서 앞으로 자청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세경신 자청비와 고대의 입춘굿과 세경땅을 풀이하는 용어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올레글을 쓰는 것이다.

농경신화 자청비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세경’의 뜻을 알아야 한다. 세경은 땅을 뜻하며, 땅이란 의미 속에는 ‘농사를 짓다’ ‘땅속에 묻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농토(農土) 음택(陰宅)이란 의미까지 포함하여 땅을 ‘세경땅’ 또는 ‘세경 너븐드르[廣野]’라 부른다.

세경신은 땅을 지키는 신, 농사를 도와주는 농경신 ‘세경할망’이며, 농경신 자청비를 일컫게 된다. 농사일은 세상 이야기, 땅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땅의 이야기는 하늘의 농경․목축 신을 상세경 문국성 문도령, 땅의 신 중세경 자청비, 하세경 정이어신 정수남이의 역할을 풀어나가는데서 신화는 완성된다.

농경신 자청비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녀는 하늘의 천지왕에게 여자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스스로[自] 청[請]하여 여자[妃]로 태어난 신’이다. 그리고 자청비의 아름다움이 함의하는 의미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그녀는 ‘막 곱닥헌(고운) 할망’ 미(美)의 신이었으며, ‘하늘의 큰 나리[大亂]를 평정한’ 여성영웅(英雄)신이었다. 두 명의 남신(男神)을 조정하는 지혜의 신이었으며, 하늘에서 얻어온 오곡의 씨를 들에 뿌리는 생산과 풍요(豊饒)의 신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름다운 사랑을 하늘과 땅을 오가며 실컷 해본 정열의 신이었으며, 남장하기를 좋아하는 양성(兩性)의 신이었다.

자청비 신화에서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는 아름다운 미와 지혜의 신, 여성 영웅신에게 상대적으로 열등감으로 갖게 되는 남신들, 자청비와 겨루면 1등을 빼앗기고 언제나 2등 밖에 못하고 결국 <자청비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남신들, 아니 제주 남자들의 열등감을 어떻게 문제 삼을까 하는 신화의 문젯거리, <자청비 콤플렉스>의 심리적 요인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그러므로 자청비 신화에 등장하는 두 남자[男神]의 만년2등 콤플렉스, 말하자면 여성영웅신 자청비에게 이길 수 없어 늘 2등 밖에 못하던 문도령의 무능과 성적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달려들지만 자청비에게 죽임을 당하고 마는 목축신 정수남이의 동물적 야수성을 지칭하는 <자청비 콤플렉스>의 연구는 제주도 신화연구에 중요한 문제제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청비 올레에 들어서며 이야기할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자청비의 올레에 들어서면서 쌓인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자청비 신이시여. 당신이 세상에 내려온 뜻은 무엇이었나요.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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