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60) 제주, 신화, 여신, - ‘오래된 미래’

척박한 땅에서 많은 아이들을 부지런한 것 하나로 키워야 했던 백주또처럼 제주에는 도둑질할 잉여분이 창고에 비축될 여지가 없었다. 또한 화산암설들에 의해 조각조각난 토지는 소규모의 생산과 저생산 체계로 이어져 부의 집중을 막고 비교적 평등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백주또가 아들 딸 손자들에게 ‘네 살 곳으로 가서 좌정해라’ 일렀듯, 제주의 아들 딸들은 살기 위해서 조각난 토지를 찾아 분가해 따로 살았다.

99칸 가옥도, 만석꾼도, 평생의 소작농도, ㄷ자 가옥과 많은 곡식을 말리는 넓은 마당도, 대청마루도, 할아버지의 에헴 소리에 온 가족이 숨죽이는 일도 제주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 헬레나 호지의 다큐<오래된 미래>(1993, 영국)

척박한 땅에 내가 살기 위해서는 함께 수눌며(품앗이) 일해야 했다.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도움을 준 사람까지 생존에 타격을 주는 일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삼가야 했다.

애를 돌보며 밭에 김을 매는 방법을 궁리해야 했으니 애기구덕과 애기걸렝이(주로 아이를 업을 때 쓰는, 너비가 좁고 긴 헝겊으로 된 띠)가 만들어졌다. 몇 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노쇠한 노인들도 먹고 살아가야 했으므로, 그들을 위해 할망바당을 만들었다.

걸렝이에 업힌 아이들도 좋았을 것이고, 할망바당을 보며 할망이 되어온 할망들도, 최소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는 않게 살려 노력했을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아이들과 노인들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도둑도 없고 대문도 없으며 거지도 없는 제주의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다. 모두 가난했고 서로 타격을 주지 않으며 또 도와가며 열심히 일해야 겨우 먹고 입을 수 있었으니 어울려 같이 나누면서 살아야만, 살 만하고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검약과 부지런함은 필수였고 평등한 분위기와 상호부조는 불문율의 필요선(善)이니, 개인적인 요구와 공동체적 필요의 절묘한 조화였다. 게다가 저기, 저 부잣집에 내가 포함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 저기서 쫓겨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 같은 것은 어차피 없었다.

그런 불안과 공포심이 없으니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깨지면 나까지도 언제든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 공동체에 대한 돈독함을 유지시켰다.  

▲ 헬레나 호지의 다큐<오래된 미래>(1993, 영국)

이것은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미개발로 인해 ‘돌연 얻어진 발전’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새삼 인식해야할 ‘오래된 미래’다.

제주의 오래된 모습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그리고 100년 후로 안내한다. 백주또는 그런 제주 사회가 만들어 낸, 개체의 공동체와의 자유로운 연대가 가능한 지점을 시사하는 표상이다. 

‘따로 또 같이’의 원형


지금도 많은 현실의 모습으로, 신화로, 어른들의 경험으로 제주의 삶 속에 남아있다는 부분은 그녀의 메시지를 믿음직스럽게 한다.

그녀가 주는 메시지 중 호감이 가는 부분은, 충분히 ‘따로’ 즉 개체를 인정하고 전제한다는 점이다. ‘개체’의 개성, 자유, 경쟁, 욕망과 본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동시에 ‘공동체’를 억압적이고 위선적인 나눔과 배려(이건 강제와 강요가 되곤 한다), 또는 기계적인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연대로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에 의해 만들어진 제주의 문화 태반이 그런 모습을 담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바당문화에서도 밭문화에서도, 가족문화에서도 ‘따로 또 같이’의 메시지와 형태는 흔히 찾을 수 있다.

여신 백주또도 그랬다. 아들, 딸, 손자들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고 제우스처럼 일인자로 군림하면서 제멋대로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각각, 제각기 살도록 한다.

제주도의 해녀들은 물질을 한 후 불턱에 앉을 때, 불턱의 가장 따뜻한 곳에는 물질을 가장 잘하는 해녀를 앉게 한다. 나이든 할머니 해녀가 거기 앉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 다시 들어가기 전, 보통은 건강하고 능력이 뛰어난 젊은 해녀들이 그 곳에 앉아 불을 쬔다. ‘따로(개인)’의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인정하고 장려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서 그쳤다면 ‘개인’만, 개인의 욕망과 능력만 인정하는, 비정하고 각박한 지금의 현실과 뭐가 다르랴.

그러나 제주의 해녀들은 동시에, 가난한 이웃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바당을 만들고 뭍에서 가깝고 얕고 따듯한 바다를 노인들을 위한 할망바당으로 구획하면서 ‘같이(공동체)’의 약자에 대한 동행과 나눔을 동시에 실천했다. 생존 자체의 압박으로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는 사실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도 공동체에 대한 연대와 책임을 공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김정숙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