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1) 세경할망 자청비 이야기

#. 하늘굿[天祭]과 입춘굿
자청비네 올레에 들어왔다. 땅의 여왕, 농경신 자청비는 어떤 신일까? 아름다운 여신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것은 어떻게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그것은 십여 차례의 연재가 끝났을 때, 완성될 “막 곱딱헌 우리 할망”으로 결정될 할망의 모습이다.

모든 신화 이야기는 하늘 옥황의 <천지왕 본풀이>부터 풀어가는 게 순서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 땅을 만들고, 제주 땅에 사람으로 살게 하는 신화(=자청비 이야기)를 먼저 다루고 나서, 이 세상에 하늘굿을 하여, 하늘과 땅의 질서를 잡아 나가는 제의 순서(젯ᄃᆞ리)를 결정할 것이다.

필자는 무속에서 <일반본풀이>로 이야기되는 큰굿의 젯다리의 순서와는 달리, 먼저 설문대할망이 만든 제주 땅, 거기에 땅의 질서를 잡아가는 <자청비 이야기>부터 시작 해 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경신 자청비의 이야기에는 농사보다도 땅의 질서를 세워나가는 탐라국의 건국 시기의 나라굿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세경신 자청비를 모시고 지내는 입춘굿 <세경할망 자청비 맞이굿>의 원형을 그려보는 데서 자청비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라의 시작, 탐라국 개국[開國]을 얘기하려니, 가슴이 뛴다. 자청비 이야기는 설문대할망이 만든 이 세상에 사람은 어떻게 모듬살이를 시작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인간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하늘굿 이야기이자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마을을 건설하는 이야기이자 결국 '탐라'라는 나라를 세운 이야기이다. 또한 최초에 농사를 시작한 이야기, 생산과 풍요의 이야기, 세경할망 덕택에 오곡의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풍농굿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인간 세상이야기, 신의 이야기를 본으로 한 사람이야기가 될 터이다. 이런 이야기 속에 인간의 감성을 움직이는 세경할망 자청비의 사랑과 낭만, 지혜와 풍류를 배우는 이야기다.
 
왁왁한 어둠에 손가락을 대보는 기분으로 세상을 열던 설문대할망 이야기와 그 뒤를 이어 한라산 시대라 할 수 있었던 오백 장군 시대, 밥도 장군, 힘도 장군, 술도 장군 하는 한라산 신들의 시대, 수 천 년이 지나가 버렸다.

할망이 만든 땅에 생명의 이야기, 인간 시대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맨 처음의 세상은 어둠을 여는 빗장처럼 막연한 시작이었고, 세상이 밝아오면서 설문대할망이 느꼈던 외로움, 완전한 하나, ‘1=하나’의 ‘외로움’이란 느낌을 만들었던 할망이 하나와 하나를 채우지 못하는 99의 불완전을 발견하고 결국 이 세상에 오백 장군과 할망의 그림자로 만든 여자 아이들, 할망을 닮은 500의 여자 아이들을 맺어주어 한라산신들의 세상을 인간의 세상으로 바꾸었다.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이 될 아이들이 땅에서 솟아난 이야기였다.

공동체의 수, 남북의 두 문화를 이야기하는 2개의 500, 아니면, 500의 남자와 500의 여자 선남선녀를 위하여 한라산을 오르며 대각록(큰뿔 사슴) 일천 마리를 잡고, 한라산을 내리며 소각록 일천 마리를 잡아 더운 피, 단 피 차려놓고, 남녀 짝을 지어 혼례를 치르던 축제의 이야기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세경신 자청비를 맞이하는 새철 드는 날의 '입춘굿'은 한해에 맨 처음 하늘에 제사하는 풍농굿이었다. 1만8000신들이 이 세상[이승-此生]과 저 세상[저승]의 질서를 잡아 나가는 하늘굿이었다. 탐라국 건국 시대에는 두 개의 하늘굿이 있었고, 그 흔적이 탐라지[耽羅志]들에 남아있어 고대의 하늘굿을 짐작케 하는데, 그것은 세경할망 자청비를 모시고 하는 입춘날의 <입춘굿>과 북두칠성 별자리에 제단을 마련하여 제를 지냈던 7월 백중의 <칠성제>다.

<입춘굿>은 땅에서 한 해의 첫 절기 입춘(立春) 날 하늘에서 땅에서 수행해야 할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내려온 농경신 자청비를 모시고 탐라왕이 제사장(심방)이 되어 집행하는 하늘굿이었다.

#. 나라굿[國祭] 광양당굿
고대의 광양당굿은 입춘굿 때, 왕이 제사장이 되어 치르던 나라굿[國祭]였다.  (立春 戶長具官服 執耒耟以木爲牛 兩兒妓左右執扇 謂之退牛 熱羣巫擊鼓前導 先自客舍次入營庭 作耕田樣 其日自本府設饌以饋 是耽羅王籍田遺俗云)

입춘날이다. 호장은 관복을 입고 나무로 만든 목우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 좌우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흔들며 따른다. 이를 ‘소몰이(退牛)’라 한다. 심방들은 신명나게 북을 치며 앞에서 인도하는데, 먼저 客舍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관덕정 마당으로 들어와서 ‘밭을 가는 모양’을 흉내내었다. 이날은 본 관아로부터 음식을 차려 모두에게 대접하였다. 이것은 탐라왕이 ‘耤田’하는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광양당의 당제는 어떤 의미의  굿이었을까? 탐라 땅에는 모흥혈(毛興穴)과 광양당(廣壤堂)이 있었고, 지금은 모흥혈은 삼성혈이라 이름이 바뀌었고, 광양당은 조선 철종 때 없어졌다. 모흥혈(毛興穴)은 삼신인(三神人)이 굴에서 태어난 곳으로 심방이 굿할 때 보면, ‘모인굴’이라 한다. 모(毛)는 삼(三)과 을(乙)의 합성어로 ‘품(品)자형 동굴’을 뜻하며, 을(乙)은 을나(乙那) ‘어린아이’를 뜻한다. 그러므로 ‘모인굴’은 세 사람의 신이 된 아이가 태어난 동굴이란 뜻이다. 삼신인의 모흥혈은 고씨, 양씨, 부씨 삼성 시조의 발생지로 바뀌었기 때문에 삼성혈이라 한다.

‘品자 형 동굴’은 삼신인 삼성[三聖] 탐라국 건국시조신화의 삼분체계(三分體系)의 수수께기를 푸는 열쇠이다. 그것은 “다른 세 개의 뜻을 지닌 완성된 하나”이며 여러 가지 제주신화의 삼분체계를 완성하였다. 혼인지나 모인굴의 品자형 동굴처럼 “다른 셋의 모여 완성된 하나를 이루는 신화”의 체계는 신당에 가면, 신이 상주하는 구멍, 상궤, 중계, 하궤가 있으며, 신당의 단골 조직은 상단골, 중단골, 하단골로 조직돼 있다.

나라굿[國祭]를 지내는 광양당은 삼신인을 당신으로 모신 당, 입춘날 농경의 신, 자청비가 5곡의 주곡과 7곡의 부곡, 열두시만곡[12곡]의 씨앗을 가지고 탐라땅에 내려와 머무는 탐라의 중심, 광양 1번지이다. 신화에 의하면, 을축 삼월 열사흘 날, 자시(子時)에 하늘에서 난 고(高)의 왕, 축시(丑時)에 하늘에서 난 양(良)의 왕, 인시(寅時)에 하늘에서 난 부(夫)의 왕 삼성(三聖)의 하강한 성지, 삼성이 높음[高], 어짐[良], 뛰어남[夫]을 펼치기 위해 하강한 넓은 땅이란 의미를 지닌다. 큰굿의 초감제를 살펴보면, 탐라국 건국 초기의 광양당과 모인굴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과 땅의 질서는 이렇게 잡혀나갔다. 맨 처음의 세상은 왁왁한 어둠이었다. 그것은 신이 없는 세상, 신이 떠나버린 세상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신구간이다. 천지혼합에서 하늘과 땅이 개벽하여 밤과 낮이 갈리고, 아침이 와서 동쪽에서부터 해가 떠오르는 천지창조의 과정이 그려진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이는 새철 들면, 하늘의 신들이 지상에 내려와 이 땅에 질서가 잡혀가는 것처럼, 지상에는 15성인이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신들이 지상에 내려와 땅을 다스리게 되는 입춘날, 농경신 제석할망 자청비를 모시고 땅에서 나와 탐라 땅에 나라를 연 아이, ‘삼신인(三神人) 삼을나’를 광양당에 왕으로 모시고 영평 8년, AD 65년에 세상을 열었으니, 광양당은 그때부터 모인굴의 삼신인 삼을나(三乙那) 신을 모시고 나라굿를 여는 곳이 되었다. 입춘굿에서 광양당 나라굿의 완성은 그만큼 중요한 몫을 지니고 있다.  /문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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