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렁, 무뚝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빛난 그녀
'심드렁, 무뚝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빛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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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61) 지성인 백주또

밭에만 다니느라 사유의 시간이 없는데도, 그녀의 행동은 사유하는 인간 이상이다. 그녀는 실체들의 내적 관계들을 인식하고 언제나 개인과 공동체에 두루 상승하는 원리를 실천한다.

백주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내부를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원형이다. 그녀 자신이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주는 중심점이다. 가치관의 혼란과 일상의 허덕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우뚝 서 있다.

백주또 원형의 인식-대응 방법은 자기를 응시하고 자기스스로에게 부끄럼 없이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부지런히,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신의 원칙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늘 변동되는 ‘상황’과 고정된 ‘관계’의 갈등 속에 그런 자아를 잘 섞어내는 방법을 고민할 뿐이다.

상황에 따른 진리, 진실을 쫓는 그녀의 개체성은 ‘나’, ‘개인적인 관계’ ‘나의 이익, 우리의 이익’라는 항목 앞에서 자꾸 빠져나와 자신을 골똘히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존중, 배려, 나눔, 관용 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형성하게 했다. 

때문에 자신이 그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를 늘 고민하는 것은 그녀의 영혼의 문제인 것이며 의지의 문제이다. 처음 인식과 의지로 행해 왔던 일들은 어느덧 그녀에겐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어떤 게 더 나은 삶인지는 삶을 살아오면서 이미 정해졌다.

매일 마주치고 변화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중심된 지속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훌륭한, 진정한 지성을 보게 한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할망, 오래된 사람, 지혜와 연륜까지 묻어 나오는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 마라도 할망당(애기업개당). 신화 속에서의 애기업개는 어린 소녀였다. 현실 제주에서는, 할망들이 애기를 걸렝이에 업고 많이 다녔다. 애기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할아버지도 자주 업어주었다면 좋았으련만 할머니들이 물질이며 밭일이며 돗통시(돼지집)에 것(먹을 음식)을 것을 주고 종종 뛰어 다닐 동안 그 많은 할아버지들은 무얼 하며 지냈을까?

 

백주또는 객관적이며 원칙에 강하고 무뚝뚝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여성들의 원형이다. 그녀는 합목적적인 판단과 함께 기본적인 선이라는 생활의 원칙을 정하고 이를 절대로 파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타인들에 대해서도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으며 또 자신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공공의 선을 넘는 행동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살아가면서 전개되는 주변의 사건들에 의해 쉬 사기가 고양되지도, 또 비참해지지도 않는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나 부지런하고 검약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일을 처리한다. 심드렁한 듯, 무심한 듯,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튀지 않는 그녀는 멋없고 개성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 도리가 평상적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내면화되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를 주는 이 유형은, 사실은 늘 이웃들의 뇌리 속에 ‘진실’로 살아 있다.

▲ 제주시 오일장 내 할망장터(2013.5.17 촬영). ⓒ김정숙

섬이라는 시공간의 한계, 자원과 재료의 부족은 절약과 재활용의 생활을 습관화시켰다.

땔감과 양념이 부족했으니 음식은 가능한 재료 그대로를 먹어야 했다. 메밀조베기(수제비)는 물만 끓으면 반죽을 떼어 놓는 순간 순식간에 익어 땔감이 부족한 제주에 딱이다. 옷감이 모자라니 질기고 땀이 잘 흡수되는 갈옷을 만들었다. 돼지고기는 물에다 집어넣고 단순히 삶아 먹었다. 고기를 삶은 물에는 모자반을 넣어 몸국을 만들었다.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던져버리지 않는 식생활, 의생활의 문화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격과 거리를 줄이는 게, 재료와 그 재료로 만들어진 상품 사이의, 지도자와 민중 사이의, 중심과 주변 사이의 시공간의 간격과 거리를 줄이는 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더 좋은 세상의 웰빙라이프 아니던가. 아직 제주는 그런 오래된 원형과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서 지속가능한 삶과 공존이 유토피아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태내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겨우 먹을 만큼만 생산되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할 만큼 자연환경이 척박해서, 나나 남이나 고만고만하게 못살았던(풍족하지 못했던) 오래된 모습이, 현재를 겪으며,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가리키는 지점은 명백하다.
고만고만하게 잘살면 될 일!

▲ 리싸이클링의 지혜. 제주 사람들은 ‘통시’에서 똥돼지를 길렀다. 돼지는 인분과 볏짚 음식물찌꺼기를 먹으면서 자신의 배설물을 배설하고 부지런히 통시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좋은 거름을 만들어 냈고 척박한 땅에 시비했다.(사진은 성읍 민속촌에서 촬영). ⓒ김정숙

간격을 줄이는 일, 과도하게 널려있는 불평등을 없애는 것. 그것이 백주또 여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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