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경제 희망찾기(1)] 효창농장 강영덕 대표
친환경 초생재배 불로초감귤로 억대 농업수익

제주경제가 아직도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발전연구원은 '제주민생경제 희망찾기 프로젝트'로 도내 각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가지고 피땀어린 노력에 의해 성공을 일궈가는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소개했습니다. 제주의 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의 협조를 얻어 도내 자영엽자, 소상공인들의 성공스토리를 연재합니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도민 여러분이 제주의 희망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준 제주발전연구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주

60대 중반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칠순을 바라보는 노부부가 별도의 노동력 없이 연간 순소득 1억 원 이상을 올린다면 대부분 ‘주식투자’나 ‘벤처기업 주주’ 등을 떠 올리기 쉽다. 그러나, 최근 수입개방 등으로 ‘농촌지역’에서 못 살겠다는 신음이 터져 나오는 현실 속에서 서귀포시 신효동에 사는 65세의 강영덕·박인숙 동갑나기 부부는 ‘친환경 감귤 불로초’로 꿈같은 얘기를 현실로 이뤘다.

▲ 60대 노부부가 함께 가꿔가는 친환경 감귤농원 효창농장 강영덕 대표.
‘잘 사는 농촌’ 가슴에 새기고 제주에 뿌리 내린 서울깍쟁이

수확기 일부를 제외하고 8000평의 감귤원을 두 노부부가 돌본다면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강씨의 설명을 듣노라면 절로 머리가 끄덕여진다. 남보다 농약과 비료를 덜 쓰고 감귤나무를 자연의 이치에 맡기는 초생재배가 이를 가능케 한다.

강씨의 이력은 조금 남다른 데가 있다. 순수한 서울깍쟁이 출신이다. 그런 강씨가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학교 시절. 고 함석헌옹과 동창이던 당시 교장은 학생들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군인이 올바라야 하고 농촌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 당시 시대상과 맞물린 이 말을 감명 깊게 받아들인 체격이 왜소한 강씨는 군인의 길 대신 농부의 길이 어울리겠다고 내심 판단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강씨는 무조건 농과대학 첫 머리에 등장하는 ‘농학과’에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원서를 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1965년, 강씨는 서울 인근에서 논농사 5000평. 임야 1만2000평에서 손에 익지 않은 농사를 시작했다. 임야는 젖소를 키우고  돼지우리를 만들어 양돈사업도 병행했다.

결과는 생각과는 달랐다. 과거 은사가 지적한대로 ‘농촌이 잘 살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1960년대 말, 강씨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귀포시 상효동 현재의 과수원 5000평을 매입했다. 워낙 손길이 탄 탓에 지금은 번듯한 과원이 됐지만 당시는 돌투성이 ‘빌레’였다고 강씨는 회상한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농사일을 한 강씨는 대학나무 시절에도 돈을 만지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경험이 없어, 주위에서 조생이 좋다면 조생을, 만생이 낫다면 만생을 입식하는 초보 농군 수준에 그쳤다. 감귤 값이 워낙 좋아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지만 서울 농사는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1988년 말 3남2녀 중 막내가 학교를 졸업하자 강씨 부부는 모든 것을 내버리고 제주에 정착했다. 위미리에 있는 3000평 과수원과 신효동 5000평 과수원을 믿고 제주에 왔지만 당시 우루과이라운’ 등으로 국내 농업환경은 급한 내리막을 타던 시기였다. 감귤도 마찬가지. 1989년 감귤 파동을 시작으로 매년 판매단가가 내렸다.

▲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 온 후 자연에 순응하는 초생재배로 불로초 감귤을 생산, 이제는 억대 농가로 성장했다.
자연에 순응하는 초생재배로 승부

이즈음 강씨는 초생재배를 떠 올리게 된다. 물량을 내세운 외국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고급 감귤 생산’ 외에는 길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제주감협이 고품질 감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시도한 ‘불로초감귤’ 생산 정책이 전개된 첫 해인 2001년 농가등록을 했다. 시행착오가 없을리 없다. 강씨는 “초생재배 한답시고 장마철 이전에 풀을 말끔히 베었더니 장맛비에 감귤나무 잔뿌리가 노출돼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면서 “흙이 유실되지 않는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경험 속 노하우로 이를 극복한 강씨는 ‘불로초 감귤’ 생산에서 얻은 이치를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자연의 순환을 최대한 살린 초생재배 기술을 비롯해 도내 감귤원은 농약과 비료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 초생재배를 지속하면 일반 과수원보다 훨씬 풍부한 과수원으로 조성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강씨는 “경험에서 분석한 소요 비료물량에 비해 도내 일반 농가는 5~6배 정도 더 쓰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토양에 누적되는 화학비료는 토질의 산성화를 부채질하므로 수확량 감소가 결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품질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시비량과 농약사용을 현저하게 줄인 탓에 수확기 이전 강씨 부부의 과수원 작업은 거의 풀베기이다. 11월에도 24일부터 3일 동안 위미리 과수원에서 풀베기를 했다. 평소에는 두 부부가 과수원 일을 도맡아 하고 수확기에만 모자란 일손을 빌리고 있다.

현재 5000평에서 불로초 감귤을 만들어내는 강씨의 소득 내역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올해 첫 경매 시 불로초 가격은 10kg당 3만2000원에서 4만원’으로 일반 감귤의 두 배 이상이다. 지난해 기준 8000관을 생산한 강씨의 경우를 대입하면 상당한 소득을 올린 셈이다.
반면 연 인원 80명 정도의 수확인부를 포함, 다른 농가의 절반 이하인 경영비용은 두 부부를 억대의 농업소득자로 만들어 ‘직장에서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노부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시켰다.

“농사는 자식과 매한가지”

▲ 강영덕 대표
강씨는 유기질 농산물에 대한 철학을 소개했다. “전혀 농약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는 강씨는 “다만 너무 많이 사용하면 천적을 같이 죽여 농약을 더 써야 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기 마련”이라며 자연을 거스르기보다는 순응하는 쪽의 유기농을 권한다. 이어 강씨는 “나이가 들어 감귤원에 스프링클러를 설치, 이용하다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면서 “종전 직접 물을 주던 때보다 감귤 때깔이 안 나온다”며 “농사도 자식과 매 한가지”라며 웃는다.

제주도에서 여생을 마감할 계획이라는 강씨에게도 불안은 있다. 노부부만 살다보니 갑자기 닥칠 질환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씨는 “심장질환, 뇌질환 치료체계만 확실하다면 노년을 지내기에 제주만한 곳이 없다”고 단정했다.

도 감귤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강씨는 “농가와 행정이 서로의 벽을 허무는 것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면서 “농업지도사의 경우도 책임 농가 할당제로 대화와 토론을 자연스레 정착시키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시절 교장선생의 훈화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강씨는 “농사를 지어도 잘 살수 잇다는 모습을 보여줘서 다행”이라며 “대학을 마치고 논에 뛰어들 당시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주위의 눈총을 이겨냈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하지만 모든 농가가 성공한 것은 아닌 만큼 제주도 농업의 살길을 친환경 농업에서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제주도 1차산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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