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선두주자로 중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과 영국의 공조 속에 형성해온 양적완화 동맹이 미국에 의해 깨지려 하자 다른 동맹국들이 당혹해 하고 있다. 미국의 장기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영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 특히 한동안 안정되는 듯했던 포르투갈 이태리 등의 국채금리가 다시 들썩이기 때문이다.

젊은 캐나다인을 새 총재로 맞은 영국 중앙은행과 5월에 기준금리를 제로에서 0.5%로 인하했던 유럽 중앙은행은 앞으로 '오랫동안' 금리 재인상의 가능성이 없다는 공식의견을 발표했다. 이들은 통화 정책을 선회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자기들은 양적완화의 정책기조에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기에 급급하다.

발단은 미국의 6월 중 신규고용이 예상을 조금 넘는 19만5000명이라는 미국 노동통계청 발표다. 5월 22일, 앞으로의 경제성적에 따라서는 그 동안 지속해오던 대량 채권수매를 감축 내지 종료할 수 있다는 연준의장의 충격적 발언이 있은 후 많은 관심이 미국에서 어떤 경제 성적이 나오는지에 쏠려 있던 참이었다.

미국의 신규고용은 2010년 3월 이후 월평균 18만명씩 꾸준히 늘어 왔다. 이에 비해 이번의 숫자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실업률도 7.6%로 변함이 없었다. 그 동안 구직활동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등장함으로써 실업률 계산하는 분모가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은 노동시장의 현저한 개선이 보일 때까지 양적완화를 지속하겠다던 당초 약속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고용 증가의 질도 한번 살펴보자. 7월 5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파트타임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주당 35시간 미만의 파트타임 근로자의 숫자가 6월 중 32만명이 증가해 총 823만명에 달했다면서 파트타임 근로자를 포함한 6월 중 신규고용이 19만5000명이었다는 것은 풀 타임 근로자의 숫자가 약 12만명 감소했음을 나타내는 것임을 지적했다.

노동시장은 정말 개선되었나

실제로 구직포기자 및 비자발적 파트타임 근로자를 포함한 실업률인 'U-6 실업률'은 6월말 현재 14.3%로 전월의 13.8%보다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야당인 공화당은 이러한 파트 타임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의 하나로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2010년에 밀어붙여 통과시킨 의료보험개혁 입법을 지목하고 있다. 직원들을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시키지 않으면 일인당 2000달러씩 벌금을 부과하는데 이를 풀 타임 근로자 한해 적용하는 것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이 법의 핵심조항 중의 하나다. 이 조항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의 채용을 기피할 뿐 아니라 기존 정규직도 줄여나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다.

노동시장의 현저한 개선을 그들의 통화정책의 중대전환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미국 중앙은행의 최근의 발언들은 이미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미국의 행정부도 석연치 않은 행보로 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 재정부가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 전날을 택해 위의 의료보험법 조항의 시행을 1년 늦추기로 했음을 슬그머니 발표한 것이 그것이다. 이 조항을 집행하려면 전국 570만개 법인으로부터 전 직원들의 근무시간 계산서를 제출받아야 하는데 이를 처리할 준비가 안돼 있다는 것이 겉으로의 이유였다.

공화당은 처음부터 이 입법을 반대했으니 이 조항의 연기에 대해 섣불리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2014년 11월의 중간 선거를 의식해서였을까?

의료개혁법 시행까지 연기하면서

1년 연기는 고용주들에게 풀 타임 고용을 파트 타임으로 대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 주는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역효과 외에도 더 큰 문제가 있다.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일단 입법부가 만든 것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무법에 다름 아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1년 후에 다시 1년, 그렇게 연기하다 보면 다음 대통령이 나온다. 결국 현 정권은 헛일을 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고용지표의 개선이 비 정규직의 증가에 의존한 것, 의료개혁법이 이 현상을 촉진한 것, 이런 것들은 부득이 한 것이었다고 훗날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법은 그렇지 않다. 무법은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해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투자결정이 어려워진다. 기업활동에 진력하기보다 정부나 연준의 눈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또한 그렇게 해 단기에 큰 돈을 벌려고 하는 헤지 펀드들이 더 활개를 칠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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