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백주또 여성2

제주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짐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아들 며느리가 너무 바쁘면 오히려 부모님이 바깥채에서 식사나 가사 일을 맡아 주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경제활동에 참여했고 '안 쓰는 게 버는 것'이라는 검소한 생활자세를 가졌다 자녀들에게 기대기는커녕 손자 손녀들의 진학이나 결혼과 같은 큰일에 입학금이나 이불값을 주는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생활의 경험이 적어 당황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방편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같이 살면서 '할망 손이 약손'이 되어 경험이 없는 며느리의 육아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버릴 게 없는 그녀의 조냥정신(제주의 절약정신을 말한다)은 변해버린 밥을 가지고 오늘날의 요쿠르트와 같은 <쉰다리>라는 음료를 만드는 근검절약의 지혜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오늘날도, 제주의 어머니들은 푸성귀 한 장이라도 가져다주려 하지, 부모라 해서 당연히 자신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따로 또 같이'의 생활체제는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압박감을 줄이고 고부간의 갈등을 줄여 주었다. 아들과 부모는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도움을 주고 의지한다. 서로를 억압하고 간섭하지도 않는다.


한마당에 같이 살면서도 따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패턴에서 부모들은 권위적인 질서를 내세우거나 봉양 받는 것을 다소 포기하는 대신 그들에게 필요한, 늘 보호받고 외로움도 없애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부지런함이 습성화되어 있으며 동시에 자립적인 이들은, 노인들만 따로 살아갈 경우 가지게 되는 경제적인 불안 심리적인 외로움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젊은 자녀들 역시 그들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받으면서 동시에, 자식의 도리라는 지나친 압박감에서도 놓여날 수 있었다.

백주또 여성들은 의무감이나 위선적인 마음으로 형식적으로 행하는 효가 아니라 비교적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자식들의 친효를 이끌어내는, 거역할 수 없는 지혜로움과 모성을 가지고 있다. 도리와 애정으로서의 효도는 종속적 부모자식 관계를 극복한, 개체적이고 인간적인 관계에서 우러나올 때 진실 될 수 있을 것이다. 

▲ 제주의 돌담. (강정효 사진).
▲ 따라비 오름 근처에서. <사진 촬영=김정숙>


제주는 어쩌면, 자연환경도 '따로 또 같이'다.
하나하나의 돌담은 모양도 색깔도 다 제각각이고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각각 하나로 존재하면서 또 커다란 전체를 이루는 돌담이 된다.
오름도 그렇다. 하나씩 각각 저마다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전체적으로 커다란 한라산을 이룬다. '따로' 가 '같이' 가 서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같이 존재한다.

 

고부간은 사실 심리적, 감정적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다. 이런 고부가 좁은 집에 물리적으로 같이 동거함으로써 침범 당하기 때문에 심리적 감정적으로 갈등이 생기고 서로 더욱 불편해지는 것이다.


보통은 여러 조건에 의해 서로 별거함으로써 고부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셈이지만 노인들의 외로움과 보호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녀인 젊은이들의 당연한 과제라면 제주의 '따로 또 같이'의 가옥구조는 거기에 대해 재고해 볼 하나의 제안을 한다.   

노인들에게는 경제력과 보호의 구조를, 젊은이들에게는 독립과 보은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안팎거리 가옥구조는 물리적인 가옥의 패턴에 대해서도, 현대라는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구성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 그것은 관계와 관습이 요구하는 것들에 일방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삶의 개체성과 삶의 상호부조성에 늘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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