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5) 자청비 세경본풀이3

농경신 자청비 신화에서 지나치게 옷을 잘 벗는 남자, 정이 어신 정수남이와 그의 행동은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의 잘못된 본능, 사랑이 없는 성욕을 경계한다. 자청비 신화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남자의 잘못된 성애를 그리면서 결국엔 죽음의 위기에서 남자를 죽인다. 정수남이의 죽음은 결국 끝없이 벗기는 데만 익숙한 행동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죽음과 같다는 걸 가르치는 철학이다.

정수남이는 송당 신화에 등장하는 소천국처럼 동물적인 남자, 마바람부는 쪽에 앉은 바람의 신, 고기를 먹은 부정한 신, 소 아홉 말 아홉을 결국 잡아먹고 집에서 쫓겨나는 사냥과 목축의 신이다. 정수남이는 정말 ‘정이 없는’ 남자다. 정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사랑 없는 섹스는 무의미하다는 걸 죽음으로 가르치는 신화. 자청비 신화에서 정수남이 이야기는 잘못된 성희를 경계한다.

산은 야성의 숲이며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곳이다. 정수남이는 자청비를 유혹하여 산으로 간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은 물을 찾는다. 정수남인 끊임없이 자청비가 물을 못 마시게 애타게 한다. 사랑을 갈구하게 한다. 물에 비친 제 몸을 미치게 들여다보게 한다. 사랑은 없고 갈등만 존재한다. 그리고 옷을 벗는다. 위 아랫도리 가리던 옷을 다 던져버리고 칡댕댕이 걷어다가 생식기를 걸어 매고 자청비에게 “상전님아. 이걸 잡고 서 계세요. 내가 물을 먹고 나면 물귀신이 날 잡고 당길 겁니다”라고 말한다. 자청비는 칡덩굴 잡고 서고 정수남인 우물 물통에 엎드려 물을 먹는데 물을 쇠굴레에 물을 길듯 괄락괄락 다섯 허벅이나 후려 먹는다. 소를 닮은 수성의 남자, 그는 성욕을 진정할 수 없는 남자다.

물을 다 먹으니 정수남인 우물에서 나와서 “상전님, 상전님도 그 옷 벗어두고 왕 먹읍서.” 보고 즐기는 일방적 욕망은 사랑이 아니다. 자청비는 애가 칸칸 마르니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자청비는 차마 옷을 전부 벗을 수가 없어 소중기 하나 입고 엎으려 물을 먹으려는데, “상전님, 소중기도 벗어 붑서.” 염치가 없다. “이거 나 성기 걸어 매던 걸로 상전님 음모 걸어 매어 내가 잡고 섰을 테니 물 먹읍서.” 일방적으로 유혹하는 무정한, 은밀하지 않은, 벗기 좋아하는 정수남이의 행위는 사랑이 아니다.

자청비는 할 수 없어 칡덩굴로 음모를 걸어 매어 정수남이 손에 잡혀두고 물통으로 들어갔다. 정수남인 자청비의 음모를 걸어 맨 줄을 가시나무에 빙빙 감아두고, 상전님 옷을 산딸기나무 위에 걸쳐 올려두고 달아나며 사금파리를 주어다가 자청비가 물 마시는 우물 통에 퐁당퐁당 던져서 띄우면서 “이건 하늘 옥황 문국성 문도령이 1만2000 궁녀 선녀 내려와 놀음놀이 하는 거 실컷 봅서. 이건 준주산의 준주 구경이요. 실컷 구경합서. 이건 아외산 아외 구경입니다. 실컷 구경헙서. 이건 던데산의 던데 구경이요. 실컷 구경헙서. 이건 좀매산에 좀매 구경이요. 실컷 구경헙서.” 하고 말하니, 자청비가 가만히 보니 이놈에게 속았구나 하여 나와 보니 옷은 그만 산딸기 나무숲에 올라가 내릴 수 없게 되었다.

▲ ⓒ문무병

자청비의 옷을 높은 나무에 걸쳐놓고 물에 비친 여인의 몸을 감상하며 하늘나라 궁녀들과 놀고 있는 문도령을 연상시키고 어린아이에게 ‘도리도리 던데던데’하며 놀리며 자청비를 희롱하는 장면은 병적인 성희롱이다. “정수남아. 내옷 가져다주렴.”, “이제도 날 죽이젠 햄수가?”, “왜 널 죽이겠냐? 내 옷 가져다주기만 해. 네 말 잘 들을게.”

정수남이가 옷을 가져다주니 자청비가 옷을 입는데 왼쪽으로 입어 오른쪽으로 매고, 오른쪽으로 입어 왼쪽으로 매어 옷을 다 입으니 정수남인 자청비에게 수작을 걸어온다. 자청비는 사랑 없이 나를 탐하는 일방적인 성욕보다 그런 태도라면 차라리 내 장남감을 갖고 놀라고 정말 분노하지 않으며 충고하는데 정수남인 그 배려를 모른다. 치한들의 흔한 수법이다. 손 달라, 젖 달라, 입 달라, 잠자자 하는.
  
“상전님아, 우리 손목이나 잡아 볼까.” 
“사랑 없이 내 손목 잡느니, 내 자는 방에 가서 보렴. 금부채(손때 묻은 노리개) 있으니, 금부채를 잡아 보렴. 내 손 잡는 것보다 더욱 좋다.”
“상전님아, 젖이나 조금만 만졌으면.”
“내 젖 만지느니 내 자는 방에 가서 보렴. 은단병이 있으니 은단병을 만져보렴. 내 젖 마지는 것보다 더 좋단다.”
“상전님. 키스나 한번 합시다.”
“내 입 맞추느니 네 자는 방에 가서 보면 청단지가 있으니 꿀단지에 혀를 찔러 봐라. 내 입 맞추는 것 보다 더욱 좋다.”
“상전님아, 우리 같이 누워 잡시다.”
“나와 눕느니 내 자는 방에 가서 봐라. 안 자리엔 능화자리, 바깥 자리엔 꽃무늬 멍석, 번지르르 깔아놓고 머리맡엔 한서병풍 발밑에는 족자병풍 휘휘친친 자장자장 잣베개에 금산비단 한 이불에 포근히 덮고 누우면 나와 눕는 것보다 더 좋다. 그럭저럭 말다툼하다 보니 해는 일낙서산(日落西山)에 지고 있었다. 자청비는 위기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정수남이는 구제할 수 없는 치한이었다. 정수남아 움막이나 지으렴. 우리 이 밤이나 새고 가게.”

정수남이는 동쪽 나무 서쪽으로 휘어잡고, 서쪽 나무는 남으로 휘어잡고, 남쪽 나무는 북으로 휘어잡고, 북쪽 나무는 동으로 휘어잡아 집을 짓되 거리를 두고 움막을 짓는구나. 자청비가 말을 하기를, “정수남아. 움막을 멀리 짓지 말고 가깝게 여기 같이 지어라. 종과 주인은 움막을 지으면, 두 부부가 되는 법이다”하며 떠보는 것이다.

“나랑 부부가 되겠수?” 정수남이는 자청비가 누울 움막은 대강대강 짓고 별이 송송이 보이게 덮고, 자기 누울 움막은 탄탄히 지어놓고 밤을 새는데 자축(子丑)간이 다가오니 뻐꾹새는 뻐꾹뻐꾹, 죽죽새는 죽죽죽죽 우니 자청비는 마음만 탔다. 무서움이 와락 밀려들었다. “정수남아. 이리 오렴. 너영 나영 목을 끌어안고 누었다가 이 밤이 새면 내일 가게.” 정수남인 고지식하게 꺼떡꺼떡 다가왔다. 자청비는 움막 속에 앉아서 “정수남아. 이 담 구멍 잘 막아라. 하느님도 볼 수 없게. 하느님인들 종과 주인이 함께 누운걸 알게 되면 죄가 깊어지느니.” 그리하여 정수남인 움막 밖에서 부지런히 구멍을 막았다.

자청비 움막 안에서 한 구멍 막으면, 두 구멍을 빼면서 “이것도 막아라. 저것도 막아라.” 부지런히 막다보니 천황 닭은 목을 들고 울고, 지황 닭은 구비 꺾어 울고, 인황 닭은 날개 치며 우니, 먼동이 터 날이 훤하게 밝았다. 정수남인 화가 나 얼굴이 검었다 희었다 하였다. 자청비는 안에서 정수남이의 거동을 보니 잘못 했다가는 이놈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 이놈을 달래야 하겠구나. “정수남아. 내 무릎 위에 누우려무나. 내가 네 머리에 이를 잡아주마.” 정수남이는 은같은 자청비의 무릎에 수풀 맷방석 같은 머리를 살며시 엎드렸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왼쪽 귀밑을 걷어보니 흰 모래밭에 검은 모래를 던져 놓은 듯 하고, 오른쪽 귀밑 걷어보니 검은 모래밭에 흰 모래를 던져 놓은 듯 했다. 굵은 이는 임금님을 먹이고, 중간의 이는 마을 면장을 먹이고, 셋째 이는 경민장을 먹이고, 잔 가랑니는 오돌또기 죽여 가니, 정수남이는 무정눈에 잠이 들었다. 이때다 싶어 자청비는 청미래덩쿨을 왼쪽 귀에 찔러 오른쪽 귀로 뽑아내어 정수남이를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자청비는 하늘과 땅, 문도령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할 일을 했다고 믿었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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