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경제 희망찾기(3)] 남성수산 대표 홍석희

▲ 풍선 하나로 시작한 홍 이사는 이제는 어선 4척을 거느린 어엿한 선단의 선주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특유의 근면과 성실로 이겨내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우뚝 섰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주위에서 ‘성공’스토리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되는 TV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인생역전’을 보더라도 자수성가한 인물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특별한 계기'가 있다.

하지만 상황을 획기적으로 반전시킬 수 없는 1차 산업분야, 특히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수산업 분야에서 ‘뚝심’ 하나로 선단을 꾸려 낸 홍석희 서귀포수협 이사는 WTO·FTA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도내 어업인의 표상으로 삼을 만하다는 것이 주위의 공통된 평이다.

# 나룻배로 시작한 세상공부

올해 우리 나이로 46세인 홍 이사의 고향은 북군 한림읍. 초등학교 시절 배 사업에 실패한 가족을 따라 서귀포시로 이사했다. 1남4녀 형제 중 맏이이자 외아들인 홍 이사의 정규 학력은 중졸. 감귤농사로 풍족해진 서귀포에서 새 터전을 일구고자 했지만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처지인지라 홍 이사는 한림공고 합격통지서를 받고도 발은 바다 쪽으로 옮겨야 했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홍 이사는 집의 유일한 재산인 풍선(나룻배)을 타기 시작했다. 노를 저어 서귀포항 인근에서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고 생활비를 댔다. 서귀포항 인근 범섬을 비롯해 새섬, 문섬, 방파제 일대를 눈 감고도 그릴 정도였다는 것.

17세 때부터 시작한 노 젓기는 19살 때까지 이어졌다. 홍 이사의 모습을 지켜 본 부친은 ‘오히려 아들의 성실함에 용기를 얻고’ 주위에서 빚을 내 2t급 동력선을 마련했다. 옥돔 연승어선인 이 배의 이름을 ‘남성호’로 지은 것은 부친이 배 사업을 하던 당시의 이름을 딴 것으로 현재 홍 이사가 소유하고 있는 어선 4척의 원조격이다.

서귀포항 1~2시간 거리 어장을 샅샅이 뒤지던 홍 이사는 1982년 입대하여 1985년 제대하자마자 부인 김화자씨와 가정을 꾸렸다. 홍 이사의 노력과 부친의 재기 의욕에 다소 펴진 살림은 홍 이사의 결혼선물로 4.5t급 옥돔연승어선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 부인과 함께 이달의 새어업인으로 선정된 홍서희 이사.
#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사업과 가정에서 독립한 홍 이사의 성공담은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주변 어장의 형편을 꼼꼼하게 기록했고 그 효과는 틀림이 없었다. 홍 이사의 '장인 정신’은 1986년 14t급 옥돔연승 제2남성호, 1990년 23t급 FRP어선 90남성호로 이어졌다.

1992년 29t급 어선을 지은 후 첫 출항 시 기억에 대해 홍 이사는 “고기가 몰리는 곳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어선에 비치된 어군탐지기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제주 남방 350마일 해상인 동중국에서 일주일간 어장을 찾아 헤맸다”면서 “결국 첫 항차 만선이라는 흔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홍 이사는 “고기가 사는 지형이 따로 있는데 그게 소유 어선 4척이 거의 ‘조업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근거”라며 “포인트는 아들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낚시꾼의 마음”이라고 공개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농을 던진다. 어쨌든 그런 덕에 ‘남성호가 들어오면 고기를 살 수 있다’는 소문이 서귀포시내 소매상들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현재 홍 이사가 운영하는 어선은 모두 4척. 29t급 3척과 50t급으로 확장중인 1척 등이다. 1999년부터 정부에 의해 전개된 어선감축사업과는 달리 홍 이사는 어선 규모를 늘리는 중이다. 그 이유에 대해 홍 이사는 남다른 철학을 소개했다.

“어선에 종사하는 직원만 36명입니다. 이들의 가족과 4척의 어선에 연결된 업체만 해도 서귀포 경제에서 결코 작지 않은 규모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선업을 그만 둘 수 없는 형편이지요.”

홍 이사 역시 1차산업 전망이 극히 불투명해지면서 2000년 보상금을 타고 어선 사업을 접으려고 했다. 당시 보상금은 5억3700만원. 대충 빚을 갚고 남는 3억원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홍 이사는 금세 돈을 반납하고 만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동안의 어로경험을 담은 ‘대학노트 몇 권’이 든든했기 때문이다.

# 정확한 노하우에 신용도 한몫

2년 전까지만 해도 선장으로 어로현장을 누빈 홍 이사는 최근 바다에서 벌어지는 경험담을 토대로 점차 험악해지는 어로환경을 설명했다. 동중국해에서 중국 경비정의 사격을 받아 가슴을 졸이던 일. 1999년 1월 20일 일본 공동어로구역에서 일본 경비정에 나포돼 3일 만에 풀려난 일 등이다.

홍 이사는 “나가사키에서 도내 선적 어선 3척과 함께 불법어로 사실을 자백하라고 강요받은 적이 있다”며 “혼자 절대로 어로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버텼다”고 강조했다. 홍 이사는 “차라리 시인하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고 여겼지만 다음에 시비거리에 휘말릴 도내 어선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며 “반성문을 15차례 써 내면서 글씨 한 자 틀리지 않고 똑같이 내니까 나중에 일본측이 지독하다고 혀를 내두르며 풀어 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홍 이사는 “이 모든 상황이 차츰 고달파질 어로 환경을 대변하는 셈”이라며 “그러나 어부에게는 바다만 있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홍 이사 성공담의 반쪽 주인공인 부인 김화자씨는 “주위에서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지만 사실 성공의 원천은 어로 작업에 대한 정확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던 탓”이라며 “여기에 명확한 거래관계로 쌓아 온 신용이 한 몫을 거들었다”고 홍 이사는 사업수완을 진단해낸다.

▲ 풍어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는 홍 이사.
# “관광과 연계, 경제성 높여야”

홍 이사의 향후 사업구상은 의외로 간단하다. 1회 출항시 마다 소요되는 2억원의 경비가 서귀포시 경제의 자양분이라는 확실한 믿음과 함께 어업과 관광사업을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호 선단이 잡은 활어를 ‘서귀포항 활어판매센터’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직접 판매한다는 홍 이사의 구상은 시작단계지만 충분한 가능성과 경제성이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제주대학교 생명과학대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할 만큼 만학의 열정을 기울이는 홍 이사의 수상경력은 화려하다. 해양수산부장관상 2차례 수상 등 헤아리기 힘든 정도지만 홍 이사는 이번 칠십리축제에서 수상한 ‘왕어부 상’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털어놨다. 영락없는 뱃사람이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돼 한 눈 팔만도 하지만 홍 이사의 생활 사이클은 여전하다. 아침에 일어나 부두를 둘러보고 어선 관련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수협 업무도 대기 중이다. 홍 이사는 “지금은 혼자 몸이 아니라는 마음가짐”이라며 “자칫 실수하면 어선 가족들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부식을 대는 반찬가게마저 힘들어 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어선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소리를 현실화 하고 싶다”는 그간 홍 이사의 바람은 “성공하고도 자신의 본연 업무를 충실히 하면서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남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홍 이사는 자신의 일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부인과 말썽 한번 부리지 않는 1남1녀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나룻배를 젓던 소년의 꿈’이 영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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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경제가 아직도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발전연구원은 '제주민생경제 희망찾기 프로젝트'로 도내 각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가지고 피땀어린 노력에 의해 성공을 일궈가는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소개했습니다. 제주의 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의 협조를 얻어 도내 자영엽자, 소상공인들의 성공스토리를 연재합니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도민 여러분이 제주의 희망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준 제주발전연구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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