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트로이트 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고 놀라는 사람은 그런 문제를 파산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보면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부채 180억달러를 인구 70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2만5000달러. 4인 가족이면 우리 돈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이것이 싫은 사람은 다른 주로 이사를 가면 된다.

산업과 인구가 줄어든다고 도시의 전체 면적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서울 절반의 크기의 널브러진 땅 곳곳에 버려진 건물들. 밤에는 가로등의 40%가 꺼져 있고 범죄율이 전국평균의 5배. 경찰이 사건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58분 걸린다면 이미 도시의 기능을 잃은 것이나 진배없다.

1950년대를 미국 자동차 전성시대라고 본다면 이 황폐화 과정이 진행된 기간은 50년이 넘는다. 그 동안 디트로이트의 시장이나 미시간 주의 주지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나선 것이 2011년에 주지사로 당선된 릭 스나이더다.

시군 등 지방정부의 파산 절차를 규정한 파산법 제9장이 일반 회사의 파산을 다루는 제11장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재협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인회계사이며 스스로 벤쳐캐피탈 회사를 설립하여 최고경영자로 활동하던 릭 스나이더가 이 파산법의 무기를 사용하려 착안한 것은 그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매년 거액의 적자를 보면서도 예산의 1/3 이상이 퇴직 경찰관, 소방관 등 퇴직공무원의 연금과 의료보험에 지출되는 상황. 그리고 이것을 지방채를 발행하여 메워나가고 지방채 원리금을 갚기 위해 다시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우선, 재정위기를 맞은 지방에 비상구역 선포 및 비상관리인 투입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입법화했다.

단체협약 재협상 가능한 미 파산법 제9장

이어 금년 3월 디트로이트 시를 비상구역으로 선포하는 동시에 구조조정 전문변호사, 케빈 오어를 비상관리인으로 임명했다. 6월에 들어서서는 디트로이트 시의 모든 무담보 채무에 대해 지급정지(모라토리움)를 선언했고 지난주에는 드디어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제출했다. 실로 일사천리의 수순이었다.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빚 180억달러에 대한 탕감이다. 특히 무담보 장기채무 115억에 대해서는 지난 6월의 채권단 회의에서 원금의 20%에 해당하는 어음 또는 현금으로의 스왑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이 무담보 채무는 퇴직금, 연금, 건강보험 등 임금채무 내지 복지에 해당하는 항목이 절반을 차지한다.

파산의 당의성은 다음과 같다. 차입금에 대한 상환약속의 이행, 전 현직 공무원들에 대한 복지 등 과거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범죄예방, 치안, 교통안전, 쓰레기 수거 등 도시가 굴러가기 위한 현재의 의무들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데 과거의 약속에만 매달릴 수 없다. 따라서 양자 간의 균형을 찾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주 지사 릭 스나이더는 차기 대선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 중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들먹이는 인물이다. 그는 문제를 미루는 정치인이 아니라 해결하는 정치인으로 전국의 유권자들에게 비치고 싶을 것이다.

수레바퀴는 자국을 남기기 마련이다. 첫째 디트로이트 전 현직 경찰, 소방관 등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다. 둘째 디트로이트 시의 신용을 믿고 그 지방채를 매입한 투자자들도 큰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들 중에는 미국 지방채의 부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디트로이트 시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한 유럽 은행들도 꽤 있다고 전해진다.

과거의 가설과 가치 변하고 있어

오랫동안 존중되어 오던 가설들이 무너지고 있다. 징세권이 있는 지방정부는 세금을 더 징수하면 되므로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가설은 세금인상이 불가능한 지금과 같은 때에는 거짓이 된다. 법인은 파산하지만 개인은 살아 있는 한 빚을 갚을 수밖에 없다는 가설 하에 개인대출을 무작정 모집하던 때도 있었다.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자는 것"이라는 비상관리인 케빈 오어의 일갈대로 현실 인식의 중요성이 다른 모든 가치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면 이것은 여간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한 주 미국 주식펀드에 몰린 신규 투자자금 175억달러는 2008년 이후 최고기록이라고 한다. 통화긴축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버냉키 연준의장의 의회 진술에 다시 현혹되고 있는 미국 증권시장의 모습에서 일말의 고공공포증을 느낀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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