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7) 세경본풀이 5

농경신화 <세경본풀이>의 마지막 이야기다. 여기서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하늘에도 세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늘 세상에서 자청비가 겪은 큰 난리는 땅에서 겪는 인간사의 대소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하늘 세상은 문화가 다른 이웃 나라이거나 북방의 천신족(天神族) 또는 한류(韓流), 요하문명 또는 고구려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신화에서 고대 우리민족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제주와 한류의 고문명의 관계를 하늘과 땅의 이야기로 풀어갈 수는 없는 것인지.

신화의 마지막 이야기는 땅의 여자 자청비에게 첫 남자를 빼앗겨 100일 동안 울다 죽어 새가 되어버린 하늘의 여자 서수왕 따님 이야기, 남장여자 자청비 때문에 평생을 홀로 살아가야 하는 박복한 여자, 서천꽃밭 꽃감관의 막내딸, 이꽃 저꽃 다 내주고 외롭게 사는 여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문도령과 서천꽃밭 꽃감관의 막내딸의 신접살림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문도령을 독살 시키는 이야기, 그리고 자청비를 푸대쌈하려는 음모, 이런 것이 자청비가 서천꽃밭의 멸망꽃을 따다가 하늘의 난리를 막았다는 이야기의 내용이다.

그 때문에 자청비는 하늘 옥황 천지왕이 주는 큰 상을 받았다. 그런데 자청비의 사랑 때문에 불행해진 두 여인이 생겨났다. 자청비는 하늘이라는 대국의 난리를 막아준 여성영웅신이었지만 반대로 남장여자로 여인을 유혹하여 불행하게 한 양성의 악신의 모습도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악 양면성이 진정 인간적인 모습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몇 개의 에피소드들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자. 

첫 번째 에피소드는 실연당한 서수왕 따님이 새의 몸으로 환생했다는 이야기다. 서수왕 따님과의 약혼은 두말없이 무너졌다. 서수왕 따님은 화가 치밀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드러누웠다. 석 달 열흘 백일이 지나 문을 떼고 보니, 서수왕 따님 아기는 새의 몸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술을 부리는 새가 된 것이다. 그때의 일로 이 새가 들어서면 다정했던 부부간에도 살림의 분산을 시키고 결혼 잔치를 할 때 신부가 상을 받으면 먼저 상위의 음식을 조금씩 떠서 상 밑에 놓는 법이 생겨난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자청비를 얻은 하늘의 문도령이 서천꽃밭 막내딸과 살림을 차리더란 얘기다. 자청비와 문도령은 백년 가례를 올렸다. 문도령과 깨가 쏟아지는 하늘에서의 어느 날 자청비는 서천꽃밭의 막내딸 생각을 생각해내었다. 자청비는 문도령에게 사실 이야기를 하고 나 대신 서천꽃밭에 가서 보름을 살고 나한테 와서 보름을 살아 달라고 당부했다.

▲ <세경본풀이>를 창하고서 쌀점을 쳐주는 심방.

문도령을 서천꽃밭을 찾아갔다. 서천꽃밭 막내딸과의 살림은 너무나 달콤했다. 보름만 살고 오겠다던 문도령은 한 달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자청비는 편지 한 장을 까마귀 날개에 끼워 보냈다. 문도령은 급한 김에 관을 쓰는 게 행전을 둘러쓰고 두루마기는 한 어깨에만 걸친 채 돌아 왔다. 자청비는 바쁜 김에 풀어헤친 머리를 짚으로 얼른 묶어 마중을 내달았다. 그때 낸 법으로, 인간의 일생에서 부모가 죽었을 때가 가장 바쁜 때이니, 초상이 나서 성복하기 전에는 통두건을 쓰고, 두루마기는 한 쪽 어깨에만 걸치는 법을 마련하고, 여자 상제는 머리를 풀어 짚으로 묶어 매는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자청비가 죽은 문도령을 서천꽃밭 환생꽃 따다가 살려낸 이야기다. 하늘 옥황에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이를 시기하는 패가 생겼다. 이 패들은 궁 안에서 문도령을 죽이고 자청비를 푸대쌈하기로 모의를 하였다. 자청비는 모를 리 없었다. 출타하는 문도령 가슴에 솜뭉치를 듬뿍 넣어 주며 궁녀들이 술을 권하면 모두 이 솜뭉치에 붓도록 하였다. 궁녀들은 술을 권했고 문도령은 마시는 척하며 솜뭉치에 부었기 때문에 문도령은 말짱했다.

이번에는 외눈박이 할머니를 보냈다. 배고파 달달 떨며 술 한 잔 사 달라는 게 가련하여 말 위에서 술값 한 푼 던져 주고 술 한 잔 받아 마셨다. 술에는 독약이 들어 있었다. 문도령은 말 위에서 떨어져 죽어 갔다. 자청비는 남편의 시체를 업어다 방에 눕혔다. 이튿날 궁 안에서 자청비를 푸대쌈 하려고 몰려들었다. “나를 푸대쌈 하려면 낭군 먹던 음식을 먹는다면 자청하여 가지요.” 함지박에 무쇠 수제비를 한 그릇 떠다 놓았다. 아무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면 우리 낭군 깔고 앉던 방석이나 깔고 앉아 보시오.” 무쇠방석이었다. 선반 위에서 끄집어 낼 수도 없었다. 매미를 일제히 울게 하니 문도령의 콧소리 같았다. 군중들은 문도령이 살아 있다고 믿고 모두 달아났다. 자청비는 서천꽃밭에 가 환생꽃을 따다가 문도령을 살려내었다.

네 번째 에피소드다. 하늘 옥황에 큰 난리가 일어났다. 난을 평정하는 자에게 땅과 물 한 조각 갈라 주겠다는 방이 붙었다. 자청비는 하늘 옥황 천지왕에게 난을 막겠다 약속하고 서천꽃밭에 가 멸망꽃을 따다 싸움판에 뿌렸다. 삼만 군사가 건삼 밭에 늙은 삼 쓰러지듯 즐비하게 나자빠져 난은 수습되었다. 하늘 옥황 천지왕은 자청비가 하늘의 난리를 평정한 상으로 하늘의 땅을 갈라 주겠다고 하였다. 자청비는 그 제의를 사양했다. 하늘의 땅을 얻는 것은 하늘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므로 자청비는 하늘 세상의 일을 청산하고 오곡의 씨앗을 얻어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땅의 농사 이야기다. 자청비는 하늘 옥황 천지왕이 내려준 오곡의 씨앗을 가지고 7월 보름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그리하여 7월 보름날에 백중제를 지내게 된 것이다.

세상에 내려와 보니 정수남이가 배가 고파 휘청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자청비를 만나자 밥을 달라고 사정하였다. 소 아홉을 거느리고 밭가는 장남들에게 가서 얻어먹어라 하였다. 정수남이가 가서 밥을 달라 사정을 해도 부잣집 장남들은 밥을 아니 주었다. 자청비는 고약하다 하여 그곳에 흉년이 들게 하였다. 자청비는 배고픈 사람을 돕지 않는 부자를 벌하기 위해 흉년을 내린 것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가다보니 두 늙은이가 쟁기도 없이 호미로 밭을 갈고 있었다. 정수남이가 밥을 달라고 하니 두 늙은이가 도시락에 밥을 정성껏 대접하였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늙은 사람에겐 지청비는 호미농사를 지어도 대풍년이 되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상세경 문도령은 하늘의 천기와 우순풍조(雨順風調)를 조절하게 히고, 중세경 자청비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물과 농경세시를 조절하게 하였고, 정수남이는 하세경으로 세경테우리[牧畜神]이 되어 많은 목자를 거느리고 칠월 마불림제를 받아먹게 하였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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