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65) 백주또여성 4


백주또 여성의 장점은 부지런하며 자립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데 있다. 한 가족의 어머니로서 그녀의 지위에 대한 철저한 역할수행은 너무나 완고하다. 남편이나 아이들 자신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 믿는다. 마땅히 해야 할 일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자신의 몫을 남에게 밀어둘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주또 여성은 남편만 밭에 보내지 않는다. 밭으로 나가라고 남편을 채근하기 전에 이른 새벽에 벌써 혼자 밭에 나가 있다. 남편이 밭에 나오지 않으면 밭에 나오지 못하는 당연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믿고 염치없이 기대며, 게을러서 밭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힘들고 피곤하다는 소리도 없다. 혼자 일하고 돌아왔으니 정다운 말이나 웃음을 건네기란 만무하다. 길거리의 예쁜 꽃을 따와 낭만을 나누기엔 그녀의 마음은 이미 팍팍해 있을 것이다. 잔소리를 하기도 싫다. 그러니 별다른 표정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내오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다.
이런 점은 처음에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어련히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 자의반 타의반 그녀는 점점 무뚝뚝해져 가며, 가족 간의 정다운 대화나 활기는 없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액자 속의 정물화가 되어버린다. 


제주의 문화는 제주 여성의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를 지탱해 온 것은 남성들이 아니라 척박한 땅에서 자손들을 먹이고 입히려 긴긴 하루 머리 수건 한번 벗지 못한 채 살아 온 제주의 어머니들, 백주또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제주의 문화라는 것들이 사실은,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했던 할망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둔, 삶의 방편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 할망들을 위한 따뜻하고 얕은 할망바당(사진 출처-제주브레이크 뉴스 2013.4.6). ⓒ제주의소리
▲ 제주의 오일장에는 오일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할머니들을 위한 할망장터가 있다. 임대료는 물론 전기나 수도 사용료도 내지 않는다. (2013.5.17)

궂은 일, 힘든 일,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좀 더 유용하고 편안하게, 좀 더 많은 가치를 확보하면서, 좀 더 합리적으로, 그녀들은 치마를 입고 폼을 잴 틈도 없이 도맡아 했다. 샘에 가서 식수를 떠서 물허벅에 지고 나르는 일, 애기구덕에 애기를 눕히고 웡이자랑 노래를 부르면서 잡초를 매는 일, 바다에서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경험을 하며 미역이며 전복을 따오는 일, 밥을 지으면서 조냥의 쌀독을 마련하는 일, 늦은 밤에 헤어진 옷을 깁는 일, 그 모든 일을 했다.


바로 그것들이 생활력이 강하며 무뚝뚝하고 도전적인 여성성, 안팎거리 가옥구조, 수눌음 갈중이, 빙떡, 애기구덕, 조냥정신, 할망바당과 같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오래된 제주의 문화이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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