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영민 제주발전연구원장...'피부에 와닿는 선제적 연구' 강조 

▲ 공영민 제주발전연구원 원장.
"학술적인 연구만으로는 제주도의 싱크탱크 역할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제주의 미래 비전과 관련해 도민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미리미리 연구해서 제주도에 던져줘야 합니다"

지난 1일 제8대 제주발전연구원장에 취임한 공영민(59) 전 제주도 기획관리실장은 일성으로 '조직과 역할의 변화'를 주문했다.

제주발전의 큰 그림을 그려놓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과제들을 선제적으로 연구하되 학술적 연구에 매몰돼선 안된다는 메시지다.

사실 제주발전연구원(제발연)은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연구 결과물을 쏟아낼 만큼 열정적인 반면, 학술적 연구에 치우친 나머지 다소 공허하게 느껴지거나 현안을 뒤쫓는 경우가 적지않았다. 

지난 3년간 지식경제국장, 기획관리실장을 맡으면서 제발연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공 원장의 진단은 그래서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공 원장은 변화를 위한 핵심 키워드로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정책연구, 수요자 중심의 현장 연구, 내부역량의 지속적인 쇄신을 꼽았다.

그동안 제발연의 업적을 과소평가하지는 않았다.

지난 16년동안 제주의 싱크탱크로서 많은 일을 해왔으며,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도라는 차별화된 제도를 발전시키고, 대내외 환경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해 온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제주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고도 평가했다.

그럼에도 성에는 차지 않은 듯 했다.

공 원장은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면서 "대내외의 급변하는 환경에 발맞춰 제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거듭 '선제적인 연구'를 강조했다. 결론은 '창조적 리더'(Creative Leader)였다.

우주발사기지로 유명한 전남 고흥 출신인 그가 공직 마감 이후에도 제주와 인연을 이어가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제주에 대한 애정이었다. 고흥에서 가까운 제주는 어릴적부터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2010년 9월1일 기획재정부에서 제주에 파견된지 3일만에 주소지를 제주로 옮긴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때는 '1년 정도만 하고 기재부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커다란 잠재력과 미래 비전이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식경제국장이 무책임하게 하다 그만 두고 가버릴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제주도청 입성 후 승승장구(?)한 것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도 있었다. 도민이 베푼 은혜를 되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변화 못지 않게 공 원장이 신경 쓰는 것은 발전기금과 연구인력 확충. 현재 65억원 가량 조성된 발전기금은 2015년까지 1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연구에만 매진하려면 안정적인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연구인력 확충은 선제적 대안 제시를 위한 필수요소로 여겼다.

특히 연구기획팀에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연구원간 협업체제를 구축하는게 또 하나의 목표다.

공 원장은 취임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승병(僧兵)을 이끌고 구국의 길에 나선 서산대사의 말씀을 인용했다. 최고의 정책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본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눈 덮인 산길을 가더라도 어지러이 가지 마라 /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이 /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된다" <제주의소리>

<김성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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