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8) 자청비 놀이

자, 들어봅서. 하늘의 큰 난리, 세변난리를 자청비 할망이 다 막으난 하늘 옥황에서는 우리 자청비 할망에게 큰 상을 내렸수다. 무슨 상인가 하면 처음에 하늘 옥황 천지왕은 하늘의 기름진 땅, 구름 같은 꿈의 땅, 하늘의 강남땅을 갈라주겠다 해십주(했지요).

그런데 할망은(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마우다(싫어요). 난 마우다. 하늘의 땅은 마우다. 부디 상을 내리시겠다면 하늘님아, 하늘의 땅이 아니라 제주 땅에 내려가서 심을 오곡의 씨를 내려주십서(주세요). 하늘 세상은 싫으니까요. 그러니 하늘옥황 천지왕은 우리 세경할망에게 열두시만곡(모든 곡식), 주곡(主穀) 5곡과 부곡(副穀) 7곡, 12종의 곡식 씨앗을 내리셨지요.

자, 그래서, 할망은 제주 땅에 내려오게 된 겁주(거지요). 자, 그러면, 자부일월 상세경 신중또 마누라님(세경할망 자청비)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질(길), 세경할망 자청비 할망 오시는 길도 닦으러 가자.(다리를 길게 늘어뜨려 놓는다)

(연물소리)

하늘 옥황에서 칠월 열나흘 백중일이 되니, 자청비가 열두시만곡(모든 곡식)의  씨를 가지고 내려오는 길을 치워 드리자. (자청비 등장한다.)

심방 : 어서 옵서. 다리 잘 밟으며 오십서. 노각성 자부연줄(하늘에서 내려오는 길), 거기 밟으며 오십서. (자청비는 씨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손에는 한 아름의 꽃을 들고 있다.)
심방 : 아이구, 오셨습니까?
자청비 : 나 왔수다.
심방 : 메께라(기막혀). 이리 오십서. 마당 가운데로. 오시려니 지쳤지요?
자청비 : 난 여신인데 지칠 리가 있어요?
심방 : 편히 앉읍서. (심방과 자청비 마주앉아서) 얼굴이 정말 곱네요?
관객들 : 미스 탐라, 아니 미스 월드 감이지요.
자청비 : 고마워요.
심방 : 아이고, 하늘 옥황에도 꽃이 핀 모양이죠.
자청비 : 예. 막 고왕 꺾어서 머리에도 꽂고 왔지요.
심방 : 그러니 올해 정월, 입춘에 보았는데 오늘은 더 곱네요.
자청비 : 나 입춘 때 왔다갔지만, 하늘에서 바라보니 거 뭐라더라 무슨 축제? 연물소리가 왕강징강 나기에 한 번 더 내려왔지요.
심방 : 그래요?
자청비 : 예.
심방 : 어깨에 멘 것은 뭐예요?
자청비 : 하늘에서 보낸 이건 좁씨고, 이건 보리씨고,
심방 : 내어 놓아보세요. (씨 주머니 열어 보여준다) 하늘에는 비단이 많은 가 봐요.
자청비 : 하늘나라 비단이 최고지요.
심방 : 하늘나라에 비단이 최고? 이것 봐요. 얼마나 고마운 여신이에요? 조씨, 보리씨 (씨주머니를 하나씩 내어 놓는다)
자청비 : 바다 밭에 뿌릴 씨앗도 챙겨 왔어요.
심방 : 아이고, 구젱기(소라)랑  아이고, 왜?
자청비 : (씨 주머니를 보다 잊은 것이 생각나서) 나 잠깐 하늘나라에 갔다   올게요. (급히 어딘가 갔다 와서) 이걸, 빼 먹고.
심방 : 어째서 겨드랑이에 접혀 오셨어요?
자청비 : 잃어버릴까 봐서요.
심방 : 이건 메밀씨네.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줘요?
자청비 : 메밀씨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씨주머니를 꺼내며)
심방 : 이것이 메밀 씨예요?   
자청비 : 겨드랑이에 눌려서 각은 졌지만, 그러니 제주 비바리 물속옷에 싸고 오다 눌려진 거지요.
심방 : 물질할 때 옛날 속옷 벌모작한 거 입었지 예? 메밀 씨가 연하니까 속옷 입고 물질하당 보민 벗겨지니까 벗겨지지 말라고 벌모작하는 거지요. 메밀씨가 막 가벼우니 그겁니다. 씬 어떻게 뿌립니까?
자청비 : 거 잘 물어봤네요. 오다 보니, 저기 강태공서목시(신화에 나오는 신범한 목수) 나무 썰던 데 가서 보면, 나무 밑에 톱밥이 뿌려져 있는데 그거 좀 가져다가 씨와 버무려 섞어 뿌리면 잘 날 겁니다. 한 알도 떨어뜨리지 말고 잘 심어서 빙떡도 지져 먹어봐요.
심방 : 아이고. 이건 익어 가는군. 덩드렁만썩 마께만썩 이삭을 보면 알건데, 이건 어떻게 메밀인 줄 알까? 나는 줄 알면.
자청비 : 먼저 난 곡식이 다 떨어져,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파가면, 그때 밭에 환하게 메밀꽃이 피면, 배고플 일은 없어지지요.
심방 : 메밀꽃은 하얀 꽃, 아이고, 고맙습니다. 우리 자청비 어른 없인 못살겠네요. 자청비 어른 이제랑 실컷 놀다 가요. 신나게, 어서요.

(노래)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오늘 오늘 오늘은 오늘이라
날도 좋아 오늘이라.
달도야 좋아서 오늘이라
세경 신중또 마누라님 오시는 날,
간장 간장 맺힌 간장, 맺힌 간장을 풀려놀자.
(자청비 꽃을 들고 이쁘게 춤을 춘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 자청비 놀이.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