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신화 19] 무조신화 초공본풀이(1)

▲ 청너울을 쓴 자주명왕 아기씨. ⓒ문무병

아기씨는 초공을 성령으로 잉태한 것인가? 사생아를 임신한 것인가? 신의 뿌리(신불휘)라 말하는 무조(巫祖) 신화는 심방이 신을 지키고, 신의 덕에 살고, 신을 대신하여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신의 아이’ ‘신의 형방(刑房)’이라 부르는 ‘심방[巫]’의 조상  삼시왕의 신화다.

아름다운 어머니 ‘자주명왕 아기씨’와 무조 ‘젯부기삼형제’, 초공이라 부르는 본명두·신명두·삼명두의 내력담을 굿법과 무점법으로 그려낸 <초공본풀이>는 팔자를 그르쳐 심방으로 살아야 하는 신의 이야기다.

초공신 젯부기삼형제는 인간처럼 어머니의 자궁[陰門]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어머니의 한 맺힌 가슴을 헤치고, 겨드랑이를 뜯어 태어났다는 ‘낯선’ ‘이상한’ ‘신이(神異)한’ 출생을 이야기한다. 무조 젯부기삼형제는 인간처럼 태어나지 않았다. 성스러운 하늘님[天帝] ‘삼시왕’의 맥을 짚고 성령(聖靈)으로 잉태하였다. 그렇게 성령으로 잉태하였기 때문에 “팔자를 그르쳐 심방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심방이 되어 팔자를 그르쳤기 때문에 한풀이의 비극이 완성되었다는 신의 뿌리가 <초공본풀이>다.

그리고 잘못된 세상, 이승의 타락한 사람들을 저승의 맑고 공정한 굿법으로 굿을 하여 생명을 구하는 심방이 되어 팔자를 그르쳐야 하는 심방들의 천형, 신을 모시고 신을 위하여 살고 신을 위하여 먹고, 입고, 행동발신하는 신역을 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여, 팔자 그르쳐 심방으로 살아야 했던 신의 길, 이 신길을 가야하는 소명의식을 ‘초공 콤플렉스’라 부를 수 있겠다.

팔자를 그르쳐야 하는 운명 또는 신의 선택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초공 콤플렉스>이다. 그러므로 신의 뿌리, 신의 근본은 ‘완전함’이 아니라 ‘흔들림’이다. 실컷 흔들리면서 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초공의 신길 닦는 것이며, 그러한 팔자를 피할 수 없는 길이 <초공 콤플렉스>이다.

<초공본풀이>에는 제주 신화의 문화 계통, 당(堂) 오백을 있게 한 샤머니즘의 북방문화와 절 오백을 있게 한 불교의 남방문화의 접합에서 완성된 초공의 출생 계보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초공의 성할아버지[姓祖父]는 석가여래, 성할머니는 석가모니, 초공의 외할아버지[外祖父]는 천하 임정국대감, 외할머니는 지하 김진국부인, 초공의 아버지는 황금산도단땅 주접선생, 어머니는 자주명왕 아기씨”이다.

본풀이는 초공 젯부기삼형제의 성친은 불교 계통이며, 외친은 무교(샤머니즘) 계통의 한류(고조선)의 가계임을 나타내고 있다. 아버지 황금산주접선생은 중이며, 어머니 자주명왕아기씨는 고조선 또는 요하문명의 딸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본명두, 신명두, 삼명두라 부르는 젯부기삼형제는 샤먼의 혈통을 지니고 있으며 중의 자식이다.
 
<초공본풀이>는 젯부기삼형제를 낳은 어머니 미모의 여신 자주명왕 아기씨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천하 임정국 대감과 지하 김진국 부인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부자로 살았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근심이 대단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금산도단땅에 ‘주접선생’이라는 스님이 권재(勸齋)를 받으러 왔다가, 동개남 은중절 법당에 와서 원불수륙재(願佛水陸齋)를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일러준다.

부부는 법당에 가서 석 달 열흘 백일불공을 드렸는데, 정성이 백근 다 차지 못해 슬하에 여자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일러준다. 합궁일을 택해 천정배필을 맺고 신구월 초여드레 미모의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의 이름은 ‘이 산 줄이 뻗고 저 산 줄이 뻗어 왕대월산 금하늘 녹하(綠下) 단풍 자주명왕 아기씨’라는 매우 긴 이름을 지어 준다.

가을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의 단풍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이 이름을 줄여서 ‘자주명왕 아기씨’ 또는 ‘아기씨’라 부른다. 이 아름다운 여인이 비극의 시작, 중의 자식 젯부기삼형제의 잉태가 신의 출생이며 한의 잉태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신의 뿌리를 푸는 <초공본풀이>는 인간처럼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신을 모시고 신의 덕에 먹고 입고 행동하는 심방으로 살아갈 것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한 ‘팔자 그르친 사람’ 한을 잉태(孕胎)한 무조신(巫祖神)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스님은 권재를 받으러 갔다가 아기씨의 머리를 한 손으론 하늘 옥황의 단수육갑을 짚고, 한 손으론 아기씨의 머리를 쓸었더니 임신이 되었고, 아기씨는 무조 삼형제를 잉태하게 된 것이다.

남녀 사이에 성관계를 하여 아이가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아기씨는 시주를 하고,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하늘의 맥을 짚었을 뿐이다. 하늘의 맥을 짚었더니 임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에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빛으로 예수를 잉태한 것처럼 일종의 ‘성령의 잉태’이며, 신들의 ‘신이(神異)한 출생’인 것이다.  이와 같이 빛의 잉태는 고구려의 주몽신화에도 나온다. 천신(天神) 해모수의 아이를 가진 수신(水神) 유화는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와 유화의 뱃속을 감쌌고, 그로부터 임신을 하게 되었으며, 둥그런 알을 하나 낳았다.

금와왕이 이를 돼지우리에 갖다 버렸지만 돼지들이 이를 보호했다. 그리고 알을 까고 나온 아이가 주몽이다. 문제는 예수를 낳은 마리아나, 주몽을 낳은 유화나, 젯부기삼형제를 낳은 아기씨는 사생아를 잉태하였기 때문에 구박받거나 쫓겨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의 아이를 가진 여인이 사생아를 낳았다는 죄목으로 추방당하는 이야기는 이민족에 대한 탄압, 이교도 집단에 대한 탄압, 노골적인 무속과 불교의 탄압에 대한 실상을 서술하는 대목이다. 아무튼 자주명왕아기씨는 황금산 주접선생 사이에서 본명두·신명두·삼명두 젯부기삼형제를 낳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절간 법당에 가 불공을 드려 낳은 양반집 딸이 중과 통정하여 ‘중의 자식을 잉태’ 했다는 것은 무속이 불교와 한 계통이라는 것이며, 중의 자식이기 때문에 양반이면서도 사회에서 버림받는 것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 대목이다.  그러니 무조신 젯부기삼형제는 역설적으로 서당에서 정상적으로 공부한 양반 삼천선비를 제치고 과거에 급제한다.

그리고 과거에 낙방한 삼천선비들이 젯부기삼형제의 어머니를 죽여 하늘 삼시왕 깊은 궁에 가둬 버린다. 이를 안 삼형제는 과거를 반납하고 양반되기를 포기하고, 심방이 되어 굿을 하여, 어머니를 죽인 양반 삼천선비를 복수한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현실세계는 이승법으로 다스리는 사회, 양반들을 위한 사회지만, 과거를 반납하고 심방이 되어 죽음으로부터 어머니를 살리는 무속사회는 저승의 맑고 공정한 법으로 천시 받은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세상이라는 것, 그러한 세계가 무불혼융의 이상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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