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0) 무조신화 초공본풀이 2

▲ <초공맞이> 초감제를 집전하는 양창보 심방.

#. 제주 9월의 단풍 같은 ‘자주명왕 아기씨’의 탄생

 초공 콤플렉스는 ‘자주명왕 아기씨’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태어났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초공본풀이>에서 심방이 신구월(신이 태어난 구월이란 뜻)에 태어났으며, 9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겪는 초공과 아기씨의 불행 그리고 자주명왕 아기씨가 9월의 단풍을 닮은 아름다운 미색을 지녔다고 붙여진  좋지 않은 운수, ‘추초봉상(秋草逢霜)’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도 팔자를 그르쳐 심방으로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초공 콤플렉스의 출발이다.

 어느 날 황금산 도단땅에 사는 스님 ‘주접선생’이 시주를 받으러 김진국 대감 집에 들렀다가, 점을 쳐주고는 예언을 하였다. “아기(生佛)를 얻으려면, 법당에 와서 기자불공을 드리시오. 그러면 자식을 얻을 수 있을 거요”라고 일러 주었다.

 대사(大師)의 말을 듣고 부부는 100일 불공을 드렸다. 100일 째 되는 날, 스님은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딸아이가 태어날 것이라 예언하였다.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합궁(合宮)할 날을 잡아 천정배필을 맺고 9월 초여드렛날 아름다운 딸아이를 낳았다. 제주의 자연을 닮은 아이, 너무나도 지극정성으로 태어난 딸아이는 단풍이 곱게 물든 9월 하늘처럼 곱다고 ‘자주명왕 아기씨’라 했다.

 아기씨가 자라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임정국 대감은 천하공사, 김진국 부인은 지하공사를 살러 오라는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부부는 아기씨를 궁 안에 가두어 놓고 자물쇠로 잠그고 봉인을 한 후 계집종 ‘느진덕정하님’에게 창문 구멍으로 밥을 주고 창문 구멍으로 옷을 주며 아기씨를 잘 키우고 있으면 돌아와 종살이를 면제시켜주마 약속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아기씨가 이미 다 자라 처녀가 됐는데 부모는 집을 비웠던 것이다. 말 만큼 자란 처녀를 두고 공사 살러 하늘에 올라갔던 것이다. 
 
#. 자주명왕 아기씨의 사랑을 얻으려는 지혜와 돈 삼천 냥

 아기씨는 고삐 풀린 사내들, 미숙한 성인 양반 3천 선비나 노련한 불승 주접선생에겐 먹이에 불과했다. 아기씨에겐 위기인지 기회인지 위험한 신호가 오고 있었다. 선택은 아기씨에게 있었고, 이야기는 아기씨가 불승 주접선생을 배우자로 그 ‘운명적인 선택’을 하였다. 아기씨는 그리하여 몸을 허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바꾸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스님의 변명, 자신의 한 손은 하늘 옥황상제의 맥을 짚고 있었고 다른 손은 아기씨의 머리를 쓸고 있었다는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기씨는 결국 성령을 받아 임신한 여자, 사실은 애비 없는 사생아를 잉태한 여자가 돼버렸다.

 이 팔자를 그르쳐야만 하는 비극의 시작을 <초공 콤플렉스>의 시작이라 하겠다. 사랑을 얻기 위한 남자들의 싸움은 나라와 신분을 건 전쟁이어야 했다. 그래야 9월 단풍 같은 아기씨의 주가 또한 드높을 텐데 신화는 양반 삼천선비와 불승 주접선생의 내기, 아기씨의 사랑을 확인할 증표를 건 사랑싸움으로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초공본풀이>가 비극인 것은 아기씨가 사랑했고 사랑을 쟁취한 남자가 누구인가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애비 없는 초공 젯부기삼형제가 과거를 반납하고 하늘에 갇힌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심방의 길, 팔자를 그르쳐 심방이 되어야만 했던 <초공 콤플렉스>가 생겨난 것이다.

 주접선생이 아기씨의 머리를 세 번 쓸었던 ‘성희롱’ 같은 사건은 부모님이 하늘 공사를 살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 그것은 딸 관리 소홀이었다. 양반 삼천선비는 돈 삼천냥(財物)을 걸고, 불승 황금산의 주접선생은 신통력(知慧)을 내어 내기를 하였다. 누구든지 양반 집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자주명왕 아기씨’에게 시주를 받아오면 돈 삼천 냥을 준다는 것이다. 황금산 주접선생이 나서서 시주를 받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곧 아기씨를 찾아가서 술법으로 닫힌 살창을 열고, 아기씨가 살창에서 걸어 나와 아기씨 손으로 쌀을 퍼다 직접 시주토록 했다. 주접선생의 신통력이 양반들과의 내기에서 이긴 것이다. 신통력을 지닌 주접선생은 시주를 받으며 영력(靈力)을 내어 “한 손으론 하늘의 맥을 짚고, 한 손으론 아가씨의 머리를 세 번 쓸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자리에서 부모님이 근무하는 하늘나라 옥황천제의 맥을 짚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은 “한 손은 자신의 무엇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아기씨의 무엇을 만지며 무엇을 하였다”고 얘기를 마치고, 고깔과 장삼 귀를 증표로 주고 돌아갔던 것이다. 그렇게 사건이 저질러졌고 아기씨는 운명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 내 아버지는 하늘입니까 스님 ‘주접선생’입니까?

 그때부터 아기씨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날마다 배가 불러오는 터에 놀란 계집종은 하늘공사와 지하공사를 살러 간 부모님께 편지를 하여 큰일이 났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였다. 부모님은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딸의 모습을 보니 이상했다. 배는 불어오고 젖꼭지는 검고 젖줄이 섰다. 임신한 게 분명했다. 은대야에 딸을 올려놓고 보니 뱃속에 중의 아들 삼형제를 품고 있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부모가 딸을 죽이자니 다섯 목숨을 죽여야 할 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검은 암소에 행장을 싣고 집밖으로 쫓아버렸다. 아기씨는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사생아를 배어 한을 품은 죄인이 되었고, 그러한 인연의 씨앗은 아버지로부터 비롯한 것이었다. 무조신 젯부기삼형제의 아버지는 황금산 도단땅의 주접선생이라는 스님이었다.

 <초공본풀이>는 그가 만들어 놓은 인연의 사슬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간다. 먼저 ‘양반 삼천선비’라고 하는 양반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대감일지라도 자식이 없는 팔자라면 새와 짐승, 거지 부부만도 못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양반의 기득권이 되고 있는 부귀영화가 한갓 부질없다는 것, 색즉시공임을 깨우치게 하고, 자식의 없음을 한탄하게 한다. 양반사회의 허위에 대한 까발림이다. 결국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아이를 얻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법당에 와서 기도를 해야 한다. 생불(아이)을 얻기 위해서는 양반 사대부들도 법당에 와서 기자불공을 드려야 한다. 수만금을 차려 올리는 기도지만 정성이 부족하다 하여 아들이 아닌 딸을 점지해 준다. 이와 같이 신화의 발단은 득남할 수 없도록 해서 부계전통의 양반사회를 불완전하게 하고, 딸을 통한 모계적 무속적 전통을 계승하게 함으로써 무교와 불교가 융화 공존하는 새로운 이상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양반과의 내기에서 이겨 아기씨를 쟁취하는 것은 양반의 권세보다 스님의 신통력이 우위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신화는 스님의 자식을 잉태하였기 때문에 양반사회에서 쫓겨난 아기씨의 임신과 출산, 산육의 과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세계, 황금산 도단땅이라는 불교의 세계와도 다른 새로운 살림집 ‘불도땅’ 이야기로 이어진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따라서 무조신화 <초공본풀이>의 발단부는 결국 유교적인 양반사회의 붕괴와 무속과 불교가 혼융된 새로운 이상사회의 건설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상은 서방정토가 아닌 ‘아기를 잉태하는 땅’으로서 ‘불도땅’을 건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도땅은 어디인가.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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