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경제 희망찾기(6)] 제주자연식품 대표 고영진
안목과 개척정신으로 16년 한 우물

북제주군 조천면 함덕리 우회도로에서 와산리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함덕리와 와산리 경계지점에 잘 가꿔진 정원에 순백색의 회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미래의 건강을 추구한다’를 회사의 경영모토로 내세운 제주자연식품(사장 고영진 49).

▲ 제주자연식품.
# 안목과 개척정신으로 16년 한 우물

청정 제주자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공식품으로 개발 판매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주자연식품은 16년째 한 우물을 파 온 1차 농산물 가공산업의 장인이다.
1천 평의 대지에 공장과 창고 2동 등 480여 평의 건물, 그리고 임직원이라고 해 봐야 고 사장과 함께 10명. 물론 일손이 달릴 때는 일용직도 쓰기는 하지면 제조업체라고 하기에는 단촐한 이 공장에서 꿀과 선인장, 오미자만 갖고 연간 2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꾸준히 올린다는 것은 일찌감치 웰빙시장의 가능성을 본 고 사장의 안목과 끊임없는 시장개척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 사장도 한때는 남들처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80년대 후반만 해도 자식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고향에서는 일종의 ‘자랑거리’였다.

▲ 고영진 대표.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한 탓도 있지만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체질이 아니었습니다. 산과 바다, 제주의 자연을 잊지 못하겠더라구요. 이게 아니다 싶어 1년 만에 낙향했죠. 다행히 고향(함덕)에서 양봉을 하시던 아버님께서도 ‘싫으면 내려와라’고 힘을 주셨죠.”

잘 나가던 직장생활을 접은 고 사장이 쉽게 할 수 있던 사업은 30여년 동안 가업으로 이어온 양봉업이었다. 그러나 고 사장은 단순히 꿀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가공판매’를 하기로 결심하고 전 재산이라고 해 봐야 그 동안 갖고 있던 현금 2백만원을 털어 1989년 11월 함덕리에 25평의 조그마한 공장을 지어 출발한 게 지금의 제주자연식품의 시작이었다.

# 단기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성장률을 봐라

꿀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워온 탓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문제는 판로였다. 처음에는 쇼핑백에 꿀을 몇 개 담아 동문시장을 비롯해 납품처를 찾으러 다녔으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 때만해도 제주도 도처에 깔린 게 꿀이었고, 관광시장을 중심으로 워낙 ‘가짜 꿀’이 판치던 시절이라 품질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고 사장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몇 달을 말 그대로 맨발로 뛰어다녔으나 매출은 고작 월 10만~20만원, 그리고 1년이 지나도 매출은 70만~80만원으로 제자리걸음일 뿐이었다. 제조업체 이익률이라고 해 봐야 고작 10~20%. 가게살림은 고사하고 용돈도 안 되는 힘든 상황이었다. 고 사장의 형제와 선후배들은 “돈도 안 되는 데 이쯤해서 접으면 어떠냐. 이왕 접을 거면 빨리 접어라”며 고 사장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러나 고 사장은 첫 번째 성공비결을 바로 그 어려움 속에서 찾아낸다.

   

“사업을 시작해서 첫 달 매출이 10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에는 70만원. 물론 돈은 안됐죠. 그러나 저는 성장 가능성을 봤습니다. 1년 사이에 매출이 700%나 신장됐습니다. 지금 당장 돈은 벌지 못하겠지만 이 같은 추세라면 언젠가는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눈앞의 이익은 잠깐 잊기로 했죠.”

영업성장률 하나만 믿고 다시 힘을 낸 고 사장은 “거래처는 자기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불어난다”는 신념하에 다시 뛰어들었다. 고 사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2년이 되니 월 매출액이 2백만원으로 뛰어 올랐다. 2백만원 해 봐야 순이익은 40만원에 불과했으나 고 사장의 회사는 2년 사이 매출이 1000%나 뛰어 오른 것이었다.

#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밖으로 눈을 돌려라

이 때 고 사장에는 남다른 고민이 있었다. 일부 관광농원과 토산품점에 깔려 있는 값싼 ‘가짜 꿀’과 제 살 깎아먹기 식의 ‘덤핑경쟁’이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시장과 소비자 눈에는 그저 그런 꿀 중의 하나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제주시장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었다.
고 사장은 판매시장 다각화에 눈을 돌렸다. 육지부 시장공략에 나선 것이다. 그것도 국내 쇼핑 1번지라고 하는 롯데백화점을 타겟으로 정했다.

“시장은 엄청나게 널려 있는데 육지부 대형백화점에 가서 보면 제주제품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왜 그럴까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파악해 봤더니 ‘품질’이었습니다. 잘못된 상품이 하나 들어오면 그 제품만 아니라 백화점 전체 이미지가 추락되기 때문에 아무나 받지 않았던 거죠.”

고 사장은 3개월 동안 롯데백화점이 제시한 까다로운 품질심사를 통과해 마침내 ‘한라산 참꿀’이 입점에 성공하면서 전성기를 맞기 시작했다. ‘롯데백화점 입젼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다른 백화점과 대형매장 입점은 ‘프리패스’였다.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대형할인매장이 없을 때라 백화점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한라산 참꿀’의 인지도를 높인 또 하나는 우체국쇼핑이었다.

   

“전국에 깔려 있는 게 우체국 아닙니까. 우체국이란 신뢰도와 함께 무궁무진하게 깔린 시장이었습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들어갈 수 있지만 처음에 우체국 심의를 뚫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농원과 토산품점에서 매일 같이 가짜 꿀이 판매되는 탓에 처음에는 심사조차 거부당했다. “다른 꿀도 있다. 제대로 된 꿀을 팔자”며 우체국과 심사위원들을 설득한 지 2년 만에 심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입점 성공’이었다.

 



# 품질이 첫째 조건… 외국수출 길 열어

백화점 입점과 우체국 쇼핑이라는 좌우 양 날개를 달고 제주자연식품을 이때부터 비상하기 시작했다. 고 사장이 생산한 한라산 꿀은 우체국쇼핑 벌꿀업계에서 줄 곳 2위를 차지하면서 전국적인 소비자 인지도를 급속하게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체 쇼핑몰(www.nfcshop.co.kr)을 만들어 12년 동안 해 온 우체국쇼핑을 그만 뒀지만 이때 얻은 노하우는 고 사장에게는 대단한 힘이 됐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25평의 공장은 지금의 1000평 부지로 옮겼고 제주자연식품이 생산하는 제품만도 유채꿀과 한라산꿀, 영지꿀차, 선인장차, 오미자차 등 50여종으로 늘려나갔다. 1997년에는 농림부 지정 전통가공식품 승인에 이어 ISO 9002 인증까지 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그동안 바이어와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여왔던 일본 수출 길도 터놓았다. 아직 물량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한류열풍과 함께 소비자들의 반응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는 게 고 사장의 귀뜸이다. 그리고 몇 해 전 미국시장을 둘러보고 온 고 사장은 현재 새로운 제품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감기’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생강’을 제품화하는 것이다.

   

“미국에 가 봤더니 ‘생강’이 기관지에 좋다고 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산모들에게는 무조건 생강 캔디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다’ 싶어 지난해부터 생강 수매에 들어갔으나 농사구조가 시스템화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수억원을 날린 후 올해부터는 직접 2만평을 재배하고 농가와도 계약재배에 들어갔다. 또 함덕농협에서도 농가들에게 종자를 나눠주고 시범재배에 들어갔다. 고 사장은 생강차와 생강캔디, 생강잼을 만들어 내는 데 불철주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고 사장은 생강이 새로운 ‘효자 상품’으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 사장의 성공비결은 간단했다. 당장 눈앞에 떨어지는 돈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느냐, 또 시장을 어느 정도 다각화 시키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품질이 첫째 조건인 것은 당연하다.

# 육지부에 제주상품 많아야 시너지효과

이런 고 사장에게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첫 번째가 제주상품이 육지부 시장에 너무 없다는 것이다.

“해안도로에 있는 카페촌을 봅시다. 몇 년 전만 해도 불과 한 두 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수 십 개로 불어났습니다. 언제가 장사가 잘 됩니까. 처음에 한 두 개가 있다고 해서 독점이라고 장사가 잘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카페촌을 형성되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많은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으레 해안도로를 찾게 되는 겁니다. 제주산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이나 육지부 판매점에 제주산 제품이 수십 종이 있어야 일단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고 선택하게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먹는 제품은 실험을 하질 않습니다. 많은 제주산 제품들이 진열돼 있어야 소비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주를 벗어나 육지부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제주에서만 안주하다보면 품질저하나 덤핑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홍보·인증마크 등 체계적 정책지원 아쉬워

고 사장은 제주산 가공제품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연구개발과 홍보를 제주도를 비롯한 관계기관에 주문한다.

“우리만 해도 제품개발을 하는 데 솔직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몇몇 기술요원들이 나름대로 원료의 특성에 맞춰 개발을 하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탓에 힘이 듭니다. 성분분석 하는 데만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에 각종 성분분석을 의뢰하는데 싸야 몇 천만 원입니다. 영세한 업체들로서는 감히 엄두를 못 내죠. 업체 스스로 하다 보니 상품이 조잡해 질 수밖에 없구요. 제주도가 최소한 성분분석이라고 지원할 수 있는 연구기관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지금 농업기술센터가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기업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주도 단위의 홍보의 필요성과 함께 인증마크가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는 점도 주문한다.

“제주도나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하는 간담회에 가 보면 대부분이 자금지원을 요청합니다. 물론 자금이 있어야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홍보입니다. 제품을 만들어 놓았는데 판매가 안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국을 상대로 한 홍보를 영세한 기업체가 담당하기란 사실 불가능합니다. 백화점 판촉행사나 특판행사에 참여해 보면 제주도 상품의 인기는 최고입니다. 문제는 신뢰도입니다. ‘제주도 상품이 확실히 맞느냐. 진짜면 사겠다’는 게 소비자들의 한결 같은 반응입니다. 제주도 상품을 만들어 놓고도 제주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제주도가 기업들의 제품마다 홍보할 수는 없습니다. 제주도가 품질인증마크를 도입하면 됩니다. 제주도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증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확실한 제품에 대해서는 제주도지사가 보증하는 품질인증마크를 부여하면 됩니다. 광고도 개별 제품으로 할 게 아니라 품질인증마크만 홍보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입니다. 지금 북제주군에서도 하고 있지만 시군단위가 아니라 제주도 광역차원에서 해결해 줘야 할 문제입니다”

고 사장은 한 예를 들었다.

“얼마 전에 모 기관에서 제주도 상품 홍보책자를 만들었습니다. 몇 부를 만들었느냐 했더니 2천부를 제작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디에 배포하느냐고 했더니 해당 업체와 유관기관이라는 거예요. 상품을 홍보하려고 만든 홍보지가 소비자에게는 돌아가지도 못한 채 엉뚱하게 기관 전시대에만 꽃혀 있는 겁니다. 이래가지로 어떻게 제주상품이 홍보가 되겠습니까. 각 기업체마다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은 있겠지만 안 되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준다고 제품이 잘 팔리겠습니까. 문제는 제품이 잘 팔릴 수 있도록 행정이 지원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제품만 팔리면 자금은 자연히 생깁니다. 또 제품이 팔릴 수 있도록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기업인의 당연한 의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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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경제가 아직도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발전연구원은 '제주민생경제 희망찾기 프로젝트'로 도내 각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가지고 피땀어린 노력에 의해 성공을 일궈가는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소개했습니다. 제주의 소리는 제주발전연구원의 협조를 얻어 도내 자영엽자, 소상공인들의 성공스토리를 연재합니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도민 여러분이 제주의 희망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준 제주발전연구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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