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1) 무조신화 초공본풀이 3

<초공본풀이>의 다음 이야기는 스님의 자식을 임신하였다고 집에서 쫓겨난 ‘자주명왕 아기씨’가 계집종 ‘느진덕정하님’을 데리고, 황금산 주접선생을 찾아 머나 먼 ‘황금산도단땅’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기씨가 남편을 찾아가는 길은 고행의 과정이다. 그 고행의 과정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성년식의 의미를 지닌다. 길과 길 사이에는 건너야 할 다리가 있다. 다리마다 문제가 있고. 문제를 풀어야 다리를 지나갈 수 있다. 다리는 아기씨가 겪는 ‘마음의 갈등’을 나타내고 있다.

<초공본풀이>는 남편의 땅,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황금산을 ‘성(聖)의 세계-저승’로 그리고 있다. 부모님의 땅, 천하 임정국 대감이 살고 있는 궁전은 ‘속(俗)의 세계-이승’으로 그리고 있다. 부모님의 땅에서 쫓겨나 남편을 찾아가는 길은 성의 세계와 속의 세계 중간 지대다.

▲ 칼날이 서로 등을 돌린 '등진다리'. ⓒ제주의소리

아기씨가 뒤에 아들 ‘젯부기삼형제’를 낳았던 불도땅도 아마 성과 속, 하늘과 땅, 저승과 이승의 중간 지점이라 생각한다. 아기씨가 가는 길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기 위하여 겪어야 할 고행의 길이며, 이러한 과정을 동서양 어디서나 아이가 어른이 되는 의례로써 입사식(入社式) 또는 성년식(成年式)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깨달음(得道)을 위하여 ‘길을 찾아 떠나는 과정’이며, 무속에서는 심방이 되는 길(入巫儀禮)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을 찾아 떠나는 과정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같다. 쉽게 말하면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굿을 하여 점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신칼의 칼날이 바로 선 죽음의 '칼선다리'. ⓒ제주의소리

신화에 의하면, 쫓겨난 아기씨는 아버지가 준 부채, 급한 일이 생길 때 쓰라고 준 금부채를 들고 길을 떠난다. 처음부터 동서를 분간할 수 없는 길이 나타난다. 필요할 때는 아버지가 준 금부채 다리를 놓아 지나갈 수 있었다. 가다보니 마른 억새밭에 불이 붙고 있었다. 계집종이 말하기를 그것은 부모님 가슴에 붙는 불이라 하였다. 아기씨 마음에도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아기씨는 부모님이 임신 사실을 알고 죽이려 했던 마음을 보여주는 칼날이 선 듯한 ‘칼선다리’를 지나고, 마음 아프게 했던 ‘애선다리’를 지나고, 서로 등을 돌려 떠나야만 했던 ‘등진다리’를 지나, 정처 없이 여기까지 왔다. 가다보니 ‘건지오름’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아기씨는 건지를 틀어 올려 성년식을 하고, 조심조심 ‘조심다리’를 지나서 청수바다, 흑수바다, 낙수바다 수삼천리에 이르렀다. 더 이상  건널 수 없어 한참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꿈에 하얀 강아지가 나타났다. “상전님아, 상전님아, 나를 모르겠습니까?” 강아지는 아기씨가 기르다 병들어 죽어 바다에 던져버리자 용왕국 거북사자가 되었다 한다. 깨어보니 꿈의 거북이가 등위에 올라타라 한다. 그리하여 아기씨는 거북이 등을 타고 수삼천리 낙수바다를 건너, 주접선생이 사는 황금산 도단땅에 이르게 된 것이다.

▲ 날을 세워 서로 마음 아프게 했던 '애선다리'. ⓒ제주의소리

 무조신화에서 아기씨가 황금산 도단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다리는, 아기씨의 마음을 표현하며, 그것은 제주도 무점법이 되고 있다. 굿을 할 때, 심방은 신 칼 한 짝을 던져 점을 친다. 이를 신칼점이라 한다.

신칼점은 임신한 아기씨가 집에서 쫓겨나 남편을 찾아가는 어렵고 힘든 고통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심방이 점을 치는 행위가 무조의 어머니 아기씨의 마음을 읽는 관심법(觀心法)이라는 것이다. 신칼의 칼날이 바로 선 것을 ‘칼선다리’, 신칼의 날이 안으로 선 것은 ‘애선다리’, 신칼의 날이 바깥쪽으로 돌린 것을 ‘등진다리’, 신칼 날이 모두 왼쪽 방향으로 된 것은 ‘왼쪽자부다리’라 한다.

▲ 서로 등 돌려 떠나야하는 이별의 '등진다리'. ⓒ제주의소리

따라서 굿을 할 때는 신칼점을 하여 아기씨의 마음을 읽고, 신의 마음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것이 신칼점이다. 임신을 하여 쫓겨나, 세속의 세계에서 성스러운 불타의 세계로 길을 떠나는 고행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인생의 행로, 사람의 생로병사, 오욕칠정, 길흉화복이 다 신칼의 날로 표현된다. 칼날은 예리한 마음, 상처받은 마음이다. 아기씨의 상처받은 마음이 한이며, 한을 푸는 것이 굿이라 할 때, 불교에서는 한을 ‘인생의 고통’이며, 고통에서 해방되는 민중의 한풀이가 ‘깨달음’이 아닌가 한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임신한 아기씨는 고통 또는 한을 잉태한 것이며, 그것이 양반 가문에 태어나 중의 자식을 잉태한 죄로 집에서 쫓겨나 불도땅을 찾아가는 아기씨가 겪어야 할 원죄의 고통이다. 이와 같이 무속과 불교는 신화를 통하여 천시 받은 민중의 한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굿으로 엮어 나간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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