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4.3특별법과 4.3보고서는 제2의 4.3반란”이라는 이들에게

해묵은 색깔론이 등장했다. 제주도민 거의 대부분이 좌익이라거나, 5.18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했다거나, 심지어 검찰총수를 ‘빨갱이’라고 할 정도로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80년대, 90년대 얘기가 아니다. 2013년 9월2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4.3추념일 지정에 대한 세미나’. 좌편향으로 덧칠된 제주4.3의 진실을 바로 잡자는 취지로 자칭 우파들이 마련한 행사다.

이날 세미나는 그 이름도 유명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비롯해 자유논객연합, 500만야전군, 종북척결단 등 8개 보수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 국민모임이 주최했다. 참석자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70~80대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세미나는 마치 보수단체의 ‘좌익척결 결의대회’를 보는 듯 했다. 시작부터 제주4.3에 대한 왜곡으로 덧칠되기 시작했다.

제주출신인 김동일 자유논객연합 회장은 “4.3특별법과 4.3정부보고서는 제2의 4.3반란”이라고 주장했다.

제주도민 전체를 폄하하는 발언도 쏟아졌다. 대표적인 극우논객인 지만원 500만야전군 의장은 “사람이 돈 앞에서는 다 망가진다. 보상해준다는 거니까 전부 좌익이 되는 것이다. 지금 제주도 전체가 좌익으로 가고 있다”고 제주도민 전체를 욕보였다.

지씨는 심지어 국정원선거개입 의혹 관련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서도 “공소장 한번 읽어봐라. 그게 빨갱이가 쓴 것이지 어디 대한민국 검찰이 쓴 공소장이냐. 채동욱 검찰총장도 빨갱이”라고 막말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참가자들도 “맞다”며 적극 동조했다. 그들의 눈에는 수많은 양민이 무고하게 죽은 4.3사건은 그저 ‘공산폭동’일 뿐이고, 법치주의 수호자인 검찰도 ‘빨갱이’로 보일 뿐이었다.

사실 4.3특별법, 4.3진상조사보고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지난 MB정부 5년간 끊임없이 이어졌었다. 수많은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그들은 철저히 무너졌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공약한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는 이러한 4.3흔들기는 끝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MB정부에서는 성우회(장군출신 모임)와 경우회 등 보수진영의 메이저그룹이 전면에 나섰다면 이번에는 보수의 마이너리그격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자유논객연합, 종북척결단, 북한해방연합 등 다소 생소한 단체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대신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이들의 주장은 ▲先 4.3사건 성격 규명 ▲왜곡된 4.3보고서 수정 ▲4.3평화공원 위패 중 반란 주모자급 위패 분리 ▲추념일 지정시 4월3일은 피할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지금 유족회와 경우회가 65년 만에 ‘화해’를 하고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큰 물줄기를 만들어나가는데, 이들은 여전히 4~50년대 이데올로기 대결의 시대에 멈춰있다.

이날 세미나를 지켜본 한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때 열 살 남짓한 꼬맹이였다. 좌가 뭔지, 우가 뭔지 아무 것도 몰랐다. 지나고 보니 내 부모가, 내 형제가, 내 친척과 친구들이 다 죽었다. 이걸 뭐라 말해야 하나”.

수많은 양민이 무고하게 죽은 4.3사건에 대해 성격 규정을 하자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유는 뭔가. 그러면서 그들은 내내 ‘공산폭동’이라고 주장한다.

이날 세미나에는 발제자 5명 가운데 3명이 제주지역 인사였다. 그 중 한명은 경우회장 출신이다. 최근 경우회와 4.3유족회의 만남으로 이뤄진 화해 분위기에 앞장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핏대를 세우며 “4.3은 공산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눈에는 ‘광기’(狂氣)가 서려있었다. 10대에 4.3을 겪은 한 유족은 “서청(서북청년단)들 같다”고 치를 떨었다.

65년이 지난 제주에 여전히 서청의 광기가 아른거린다. 이들은 4.3보고서가 잘못됐다고 하고, 4.3추모일 지정은 좌익들의 주장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랴. 자신들이 ‘추앙’하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것을. 4.3추념일 지정과 4.3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란 도도한 물줄기가 바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의 정치인’ 아니던가. / 제주의소리 정치부장 좌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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