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러시아 광장에서 만난 레닌과 스탈린
21세기 러시아 광장에서 만난 레닌과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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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1) 러시아 모스크바

   

지난 6월 5일 모스크바 엘리베이터 전시회에 참가하는 친구와 동행하여 러시아 여행에 나섰다. 두 번째 배낭여행을 생각하고 있던 참에 친구의 호의로 조금은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비자와 항공권을 마련해준 호의는 고마웠지만 나는 엘리베이터 전시회에 가볼 생각이 없었고, 친구는 사흘간의 전시회가 끝나는 대로 돌아가야 해서 한가하게 여행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친구는 나흘간의 일정이었고, 친구가 나에게 건네준 항공권의 날짜는 6월 5일 출발하여 6월 19일 귀국하는 2주간의 일정이었다. 그러나 항공권의 귀국날짜는 연장이 가능하여 나는 내심 일주일쯤 더하여 3주정도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다음날 호텔 뷔페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샤를 드골 장군의 동상이 버티고 서있는 호텔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러시아에 왔으니 붉은 광장과 크레믈궁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호텔 맞은 편 길 건너 빨간 색깔의 알파벳 M자가 건물 지붕에 배지처럼 붙어있는 지하철 역(ВДНХ)으로 향했다. 역사(驛舍) 앞 가게에서 모스크바 지도를 사고 나서 안으로 들어서다 낡고, 지저분한 지하철 역사의 모습에 좀 당황스러웠다.

스탈린의 권력이 확고해지고,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공황의 여파로 불황에 허덕이고 있을 무렵인 1935년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보다 우월함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의 하나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설되었다고 하는 모스크바 지하철이 이제는 지치고 쇠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의 깔끔하고 정돈된 지하철역과 비교되며 조금 너무하다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좁고, 승객에게 알리는 정보들이 무질서하게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역사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내 러시아어 수준이 보잘 것 없어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외국인을 위한 배려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출근시간대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바쁘게 들어와서 매표창구 안에 앉아있는 두 명의 여직원에게 소리치며 돈을 내고, 표를 받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표를 사는 모습을 조금 지켜 보고나서 한가한 틈을 타 창구 앞으로 다가가서 외쳤다.

   “끄라스나야 쁘로쉬츠(붉은 광장)!”

지하철 역 지도에 붉은 광장 역은 없었다. 그러나 그 소리를 창구의 직원은 알아들었는지 내가 내민 50루블 지폐를 받고 거스름돈 15루블과 표를 내밀었다. 지하철 요금 35루블은 약 1300원 정도로 서울과 비슷한데 모스크바의 다른 물가와 비교하면  대중교통 요금은 그나마 싼 편인 셈이다. 일단 표를 사는 덴 성공이다.

사람들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깊숙이 내려가서 요란한 굉음을 내며 들어와 멈춰선 전철에 올라탔다. 지도를 보니 대여섯 정거장쯤으로 보이긴 하는데 정확히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열차안은 냉방이 안 되어서 그런지 창문이 조금 열려있었고 그 틈으로 달리는 열차의 소음이 안에 가득 들어왔다. 몇 정거장을 지나면서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열차의 소음이 너무 심해서 말을 걸 수 없었다.

대충 짐작으로 열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으나, 기대했던 웅장한 붉은 광장과 끄레믈은 보이지 않고 평범한 시가지 역 주변의 풍경이었다.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 혼자 앉아 담배를 폼 나게 피우고 있는 여인에게로 다가가서 물었다.

  “그제 끄라스나야 쁘로쉬츠(붉은 광장이 어디입니까?)”

경계하는 눈길을 보내던 여인은 손을 들어 맞은편 대각선 방향을 가리키면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큰길을 건너오자 곧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가다보면 뭔가 보이겠지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는데, 낯선 도시에서 사람들의 왕래도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었다.

광장과 기차역과 대형 호텔들이 밀집한 번화한 곳에 이르렀는데 아무래도 붉은 광장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었던 것 같았다. 두 기차역이 큰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있었는데 길 건너편의 카잔 역은 우랄 방향의 동쪽으로 가는 기차가 떠나는 역이고, 내가 서있던 야로슬라블 역은 백해(white sea)가 있는 북쪽으로 가는 기차가 떠나는 역이다.

지하철로 대여섯 정거장이고, 10여분 남짓이면 도착해야 할 붉은 광장을 아직도 가지 못한 채 아침부터 한 시간 넘게 걸어 다녀서 진을 빼고 나니, 야로슬라블역 광장의 한구석에 앉아서 어떡해야하나 생각하다 그냥 기차타고 북쪽으로 떠나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모스크바는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그때 시간을 내서 돌아보고, 골든 링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즈달, 블라디미르, 그리고 툴라 같은 모스크바 주변의 도시들도 그때 보기로 하고 우선 북쪽으로 가자 혼자 결정을 내리고 역안 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저녁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살 수 있었는데 매표창구에는 비자카드 표시가 되어있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도착지가 내가 얘기했던 아르한겔스크가 아니라 세베로빈스크로 되어있었고, 창구의 여직원이 뭐라고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을 찾아보니 아르한겔스크 옆에 세베로빈스크라는 도시가 조그맣게 나와 있다.
 
   기차표의 내역은 대략 이렇다.
   6월 6일 19시50분 모스크바 야로슬라블역 출발
   6월 7일 19시06분 세베로빈스크 도착 (23시간 16분소요)
   1번 차량, 32번 좌석(침대)
   요금 2372.3루블(약 8만5천원)

기차 출발 시간까지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다시 붉은 광장을 가보기로 하고 옆에 앉아서 낱말 맞추기에 열심인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할머니는 친절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하철 지도를 꺼내 야로슬라블역 광장 지하의 콤소몰스카야 전철역에서 내려야할 역인 오호트느이 랴드 역을 손가락을 짚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 붉은 광장과 바실리 성당. ⓒ양기혁

 

▲ 지하쇼핑몰이며 지하철로 연결되는 오호트느이 랴드 입구에서 바라본 역사박물관. ⓒ양기혁

 

▲ 역사박물관 앞에 세워진 주코프 장군의 동상 (제2차 세계대전시 소련군 총사령관으로 독일군의 침공을 물리치고 1945년 5월 9일 베를린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아냈다). ⓒ양기혁

 

▲ 끄레믈 앞 마네쉬 광장에 세워진 모스크바 수호성인 성 게오르기 상. 반원형의 지구의 위에서 말을 탄 성 게오르기가 긴 창으로 악의 상징인 뱀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다. 광장지하가 고급 쇼핑몰인 오호트느이 랴드이다. ⓒ양기혁

두 번째 타는 모스크바 지하철은 벌써 익숙해져서 제대로 찾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붉은 광장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으로도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다. 돌아서 나오며 아쉬운 마음을 달랠 겸 어쩌면 앞선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리다시피 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가 짧은 시간 내에 러시아 역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박물관 밖으로 나왔을 때, 길거리에는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러시아의 여러 민족의상을 입거나 역사인물의 모습으로 꾸민 가장행렬이 관광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행렬과 조금 떨어진 한쪽 구석에는 대머리에 양복차림의 레닌과 군복을 입은 스탈린이 다정하게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랫동안의 힘든 망명생활 탓에 깡마른 얼굴이며 맑스주의 혁명이념에 대해서 타협을 모르고 독선적이었던 혁명가 레닌은 이제 자본주의 물을 먹어서 그런지 볼살이 붙어있는 너그러운 모습이었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정적을 제거하고, 수많은 인민들을 집단농장과 강제수용소로 보내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한 잔혹한 독재자의 모습과 달리 21세기 모스크바 거리에 부활한 스탈린은 매우 인자한 모습의 할아버지였다. 그들은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선뜻 모델이 되어 관광객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21세기에 새롭게 태어난 자본주의 러시아는 20세기말 혼란의 터널을 빠져나와 한 세기 전 볼셰비키 혁명을 이끌었던 맑시스트 혁명가들을 희화화하고, 조롱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은 것일까? 무신론자의 나라에서 신성시 되었던 그들은 이제 역사(歷史)를 포장한 관광 상품으로 전락해 있었다.

▲ 역사박물관 옆 길거리에 한가하게 앉아있는 레닌과 스탈린. ⓒ양기혁

지하 쇼핑몰 안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와 콜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야로슬라블 역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역 근처의 휴게소를 겸한 야외카페에서 러시아산 발티카 맥주와 땅콩 안주로 2시간여를 때워야 했다.

7시가 넘어서 역사안의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햇볕은 한낮처럼 따갑게 내려쬐이고, 사람들은 그늘 막도 없이 건물귀퉁이에서 서성이거나 화단의 낮은 울타리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앉아있거나 했다. 나에게는 승객들을 위한 배려라곤 찾아보기 힘들었으나,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처럼 불편해 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따가운 여름 햇살도 나에게는 힘들고 불편한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불편함이라기보다 반가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랫폼에서는 작별을 아쉬워하는 연인들끼리의 짙은 스킨십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포옹과 키스가 두 번 세 번 거듭 이어졌다.

기차는 지하철이나 도시에서 느꼈던 것과 달리 깨끗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침대는 아래 위 두 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난번 중국에서 탔던 기차에서 옴쭉할 수도 없었던 위쪽 세 번째 칸은 짐을 올려놓는 선반으로 되어있는 것도 한결 나아보였다.

위쪽 침대가 내 자리였고, 아래쪽은 할머니가 차지하고 있었다. 맞은편 쪽엔 머리를 짧게 깍은 청년이 위쪽 침대를, 중년의 여인이 아래 침대에 앉아있다. 아래 칸을 여자들이 쓰는 것은 여성을 배려한 자리배치였을까?

기차가 출발하여 시내를 벗어나자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이 계속 이어졌는데, 이런 광경은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계속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주로 삼나무와 자작나무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숲속에는 어떤 나무들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스베틀라나 할머니가 몇 가지 나무이름을 러시아어로 내 수첩에 썼다.

소나무(СОСНА КОЛЮЧАЯ), 가문비나무(ЕЛЬ), 잣나무(КЕДР), 자작나무(БЕРЁЗА). 잠깐씩 숲이 끝나고 강과 호수, 늪지대가 나타나기도 하고,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벌판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내가 하얀 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민들레의 꽃씨가 하얗게 망울져 있는 것을 멀리서 보고 착각한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녹음이 더 짙어지고 푸르게 보이기도 했을 테지만 몇 년 전 갔던 중국의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고원이나 사막과 많이 비교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기차 탔을 때와 비교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주변을 개의치 않고, 음식을 잔뜩 펼쳐놓은 채 요란하게 먹으면서 쓰레기들을 바닥에 쏟아내는 등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느낌이었는데 러시아의 기차 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끔 들릴 뿐 대체로 조용하고, 준비한 음식도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먹고, 남은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는 일없이 차량 끝에 있는 쓰레기통에 직접 갖다버리고 있었다. 중국의 기차 차량마다 배치된 승무원은 바닥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이나 러시아의 기차에서는 쓰레기를 치울 일이 없었다.

중국의 기차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밤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도시락이며, 술과 음료 등 물건을 파는 수레가 끊임없이 오갔는데, 여기서는 내가 열차를 내릴 때까지 물건을 파는 수레가 한 번도 다니질 않았다. 행상의 수레가 너무 안다녀서 맥주나 커피 같은 음료도 살 수 없어서 답답할 정도였는데, 객실 승무원이 인스턴트커피를 팔고 있었고, 뜨거운 물이 항상 나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아르한겔스크로 가는 기차의 실내 풍경. ⓒ양기혁
▲ 내 아래 좌석에서 기차여행을 함께 한 스베틀라나 할머니.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내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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