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가족이 그리운 사람, 인도네시아인 이주노동자 와완씨

▲ 인도네시아인 이주노동자 와완씨

난 20대 초반에 배를 타고 해외를 떠돈 적이 있는데, 배에서 맞는 명절도 운치가 있다. 선상에서야 휴일도 없이 근무를 이어야하지만, 명절이라고 주방장이 한상 음식을 내오면 보는 것만으로도 명절 기분을 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날일 수록 가슴 깊은 곳에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오르게 마련이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질 수록 명절에는 애틋한 고향생각에 잠기게 된다.

청명한 가을하늘이 추석에 너무도 딱 어울린다. 모처럼 연휴가 길게 이어져 예년보다도 고향을 찾는 이들이 많다. 경기침체로 갈수록 사는 게 팍팍해도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대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반갑기만 하다. 정말 한 해 살이가 더도 말고 한가위만 했으면 좋으련만.

명절이면 고향생각에 잠기는 사람들

명절이 되어 많은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꿈에 부풀어 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 그중에서도 코리안 드림을 품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대표적이다. 우리 집 인근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한국인들과 섞여 일을 하는 인도네시아 노동자 와완(34)씨를 만났다.

와와이 일을 하는 곳은 제주의 대표적 수산물가공업체인 (주)청룡수산(대표 문영섭)이다. 그는 이 업체에서 한국인들과 뒤섞여 수산물을 다듬고 포장하는 일을 한다. 이 업체의 직원 42명 중 4명이 인도네시아 인이고 나머지는 전부 한국인들이다.

▲ 가족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잠시 상념에 잠겼다.

와완씨는 인도네시아에서 결혼을 하고 스티븐(8)과 기셀(2) 등 두 아들을 두었다. 결혼을 한 후 인도네시아에서는 양계장에서 일을 했는데, 임금이 낮아 두 아들을 키우고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2년여 전에 아내와 논의한 끝에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인도네시아 남성들이 외화벌이로 나갈 경우,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 1순위로 한국을 2순위로 일본을 꼽는다고 한다. 반면, 여성들은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완 등으로 나가 가정부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은 한국, 아내는 홍콩에

와완 부부도 대세를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특히 한국어 시험이 어려웠다. 처음 대하는 말과 글이라 쉬울 턱이 없다. 그래도 가까스로 시험을 통과했고, 고용계약에 성공해서 입국절차를 마쳤다. 그렇게 와완은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아내는 홍콩으로 떠났다. 그사이 두 아들은 고향에서 와완의 어머니가 키우고 있다.

와완에게 내가 예전에 배를 탔었고, 인도네시아 수라바야를 가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수라바야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로 우리나라의 부산과 비슷하다. '수라바야'라는 말을 듣고 와완은 반색을 했다. 그의 고향은 말랑(Malang)인데, 수라바야 인근에 있는 소도시이다.

와완네 가족의 꿈은 고향에 가족이 살만한 근사한 집을 짓고, 공장을 지어 사장님이 되어보는 것이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도 그 꿈을 위해서다. 지금은 괴롭지만 5년만 참아보자고 했다. 약속한 5년을 채우려면 앞으로도 2년을 더 참고 일해야한다.

아내가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페이스북을 통해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매일같이 서로 "힘들지는 않아?", "주변 사람들은 잘해줘?"라는 안부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다행히도 서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을 한다. 와완은 주변 친구들로부터 전해들은 한국의 다른 일터에 비해 청룡수산의 환경은 매우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사장님이나 한국인 직원들이 고함도 지르지 않고, 모두 친절하다고.

한국 음식도 입에 잘 맞는다고 했다. 특히, 갈비탕과 계란찜이 맛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김치는 아직까지 매워서 먹기 어렵다고 한다. 지난 3월엔 아내와 일정을 맞춰서 한 달 간 고향엘 다녀왔다. 1년에 한번 온가족이 만났으니 그 기쁨이야 말해 뭐하랴?

돈 만원도 허투로 쓸 수 없는 이유

와완에 따르면 한국 돈 1만원이면 인도네시아 화폐로 9만5천 루피아 정도 되는데, 그 나라에서 자전거 한 대를 살 수 있는 규모로 큰돈이다. 한국에서 번 돈을 허투루 쓸 수 없는 이유다.

▲ 와완씨는 제주의 대표적 수산물가공업체인 (주)청룡수산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수산물을 가공하고 포장하는 일을 한다.

실제로 내 후배 한 명이 자카르타에서 사업을 하는데, 매니저 한 명을 고용하는데 한 달 급여가 우리 돈 10만 원 정도고, 가정부 한 명은 7만원이다. 인건비와 물가의 수준이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선 한 달 급여를 받아도 집에 갖다 줄 돈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머니에게 100만원도 넘는 돈을 매달 송금할 수 있다. 이국 생활에 외롭고 고달프지만 그 보람으로 매일매일 버티고 있다.

추석에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종사촌들과 만나기로 했다. 이종사촌 둘이 평택에서 공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마침 추석 연휴가 길어서 제주를 방문하기로 했다. 와완은 중문, 제주시, 성산일출봉 등에 놀러갈 계획을 세워놓고 사촌동생들이 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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