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국정원 개혁과 제주 행정개편

 

                 I.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적 저항

  갑자기 ‘국민적 저항’이 화두이다. 야당의 전용어 같았던 국민적 저항이라는 단어가 정부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도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사에서 보면 국민적 저항의 고전적 사례로 1960년의 4·19 의거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둘 다 권위주의적 억압 정치의 폐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대다수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은 바 컸다. 그 열기가 큰 만큼이나 국민적 저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성과를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부의 비상식과 막무가내에 도전을 하는 야당은 어디에서든 국민적 저항이라는 아래로부터의 분출에 잔뜩 기대를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국민적 저항’이라는 말은 많이 한 정치인은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다. 지난 5월 29일 김한길 대표는 진주의료원 폐업과 관련하여 ‘정부와 새누리당은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7월 4일에는 국제비즈니스과학벨트 조성 사업과 관련하여 ‘과학벨트 수정추진을 중단·철회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민주당은 2주째 장외투쟁이던 8월 14일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정부의 세제개편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내었는데, 이 때 ‘새누리당이 국민과 민주당을 기만하려 하다간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언명함에서는 김한길 대표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절절히 가슴에 와 닿기도 했다.

  민주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었던 김한길 대표가 이른바 ‘장외투쟁’으로 돌입하게 된 경위는 명확하다. 그것은 국회 내에서 소수당의 한계로 인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대표로서 정부와 여당의 독주와 비상식에 도전을 하는 데는 장외투쟁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대학과 천주교, 시민사회단체 등 여기저기서 국정원 관련 시국선언이 봇물 터지듯 나오면서 민주당은 취약한 정치적 위상을 그런대로 유지해 나가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렇게 장외투쟁의 동력에는 국정원 사태에서 비롯되는 국민적 의혹과 불만이 크게 뒷받침되고 있고, 그래서 김한길 대표로서는 국민적 의혹을 그대로 둔 채 쉽게 국회로 회군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올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뙤약볕 아래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 지도부에 위로를 보내야 할 듯싶다.  

  9월 17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노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한가위의 대국민 화해 선물을 기대하던 국민들에게 찬 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야당이 장외투쟁을 고집하면서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적 저항이란 단어에 대한 야당의 독점권은 무너져버린 것일까. 박대통령의 말대로 민주당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지지도가 낮아 어려움에 처한 민주당으로서는 살아남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이석기 사태 이후 한동안 진보세력의 지리멸렬이 명확하게 보이는 2013년의 정치 국면에서 이어 장외투쟁으로 인해 제1야당인 민주당마저 무너지게 되면, 곧바로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는 새누리당 1당 지배체제로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제1 야당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되는 정치적 상황은 그래서 누구든 쉽게 얘기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에 대한 국민적 저항 운운 하는 것은 일면 공포정치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추석 전후 정부-야당 간의 대치국면에서 김한길 대표가 ‘박대통령의 불통정치가 계속 민주주의 회복을 거부하면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며 예의 화살을 던지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다. 2013년 한국정치는 국민적 저항을 누가 쟁취하느냐의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는 듯싶다. 그나마 국회로의 회군 가능성을 탐색하고 마련할 수 있었던 여야 3자회담마저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 입장으로 말미암아 빈수레로 끝남에 따라, 경색정국의 장기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와중에서 여야 3자회담의 한 축인 새누리당 내의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국회 정상화의 길을 모색하려고 애쓰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도 2013년 한국 정당정치의 비극이다. 집권여당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새누리당의 정국 주도 역량은 미미하다. 정부와 야당 간의 대치가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답답하다

  임기 초반의 박근혜 정부는 50%가 넘는 여론조사 지지도를 의식해서인지 당당해 보인다. 그에 비해 민주당의 살아남기 몸부림은 애처로울 정도이다. 그렇다고 아직 손에 안 잡히는 창조경제의 언어로 민생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에게 무언가 기대를 걸만큼의 신뢰가 큰 것도 아니다. 안철수 신당에 대한 25% 안팎의 지지가 지속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국민적 저항과 관련해서는 정부보다는 민주당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주어야 할 실용적 필요가 제기되는데, 그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지 않으면 생명-평화-복지 등에서 국민에 대한 정부의 책무가 쉬이 유야무야에 묻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불만이 있더라도 대대적인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적 압박이 없이는 한국 사회의 미래가 요원한 것은 명약관화하다.  

  생명-평화-복지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먼저 민주주의가 선행되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왜냐하면 국정원의 ‘셀프개혁’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대수술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보아 무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정원 개혁을 욕구하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국민적 저항을 직면하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야당에 대한 국민적 저항 운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되받아치기는 정치적 레토릭 그 이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2013년 가을 널리 운위되는 국민적 저항의 핵심은 국정원 개혁을 이끌어 내는 데 있는 것이지 여야 어느 정당을 죽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정치가 국정원 개혁 없이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치열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야당 죽이기에 나서는 박근혜 정부의 일방성은 다원적 정당정치의 운용에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다.

                  II. 도민의 뜻과 행정계층구조 개편

  중앙정치가 국민적 저항을 둘러싸고 공방을 하고 있다면, 제주정치에서는 특히 제주도정과 제주도의회가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둘러싸고 누가 더 도민의 뜻을 대변하고 있는지 다투고 있다. 제주도정은 도내 3개 신문사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해 85.9%가 찬성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행정시장 직선제에 반대하는 도의회에 대해 도민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이에 대해 박희수 도의회 의장은 MBC 여론조사를 보면 61%가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차기 도정으로 넘기라’고 응답했다며 도민의 뜻이 다른 데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과연 정책결정에서 여론조사 응답으로 도민의 의사를 가름하는 게 적절한 것인가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를 금과옥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해군기지 유치와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명백히 드러난 바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게 여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차례에 걸친 여론조사의 결과가 도민의 뜻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경향성을 띠는지를 알아보는 자료로 유용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정책결정을 여론조사로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크다. 더욱이 여론조사 응답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한다면 누구든 아무나 도지사가 되고 도의회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오히려 도민들이 제주도정과 도의회에 대해 바라는 것은, 정파적 이해관계나 선거공학상의 고려가 아닌 진정으로 도민에게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대화하는 숙의적 토론 과정과 민주적 리더십 역할이 아닐까.

  행정시장 직선제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그것은 나름대로 도민의 의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단기적 처방으로서 유용성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도의회와 도내 정당들이 2014년 도지사 선거를 둘러싼 정파적 입장에 따라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해 마냥 반대로만 나가는 게 안타깝다.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이 우근민 지사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얽매여서인지 모처럼 새누리당 제주도당과 민주당 제주도당이 손을 잡았다. 두 정당 모두 우근민 지사의 2014년 출마에는 대적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까. 현행 행정시를 그대로 지지하는 게 당의 입장으로 보이는 새누리당과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민주당 모두, 일단은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을 반대하는 데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행정시 체제 유지와 기초자치단체 부활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입장의 한축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과연 내년 지방선거 이후 어떤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내놓을 수 있을 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현행 행정시 체제로 인해 불편해 하는 다수 도민들의 바람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눈을 감아 버렸다는 데서 두 공당에 대해 아쉬움이 크다. 두 정당 모두 자신들의 당론에 갇혀있을 뿐이다.

  물론 행정시장 직선제의 단기적 유용성에 대한 우근민 도정의 그간의 행보도 마음에 안 든다. 이와 관련 제주도행정계층구조개편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것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우근민 지사가 4년 전에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울 때 그 핵심 내용은 행정시장 직선제라고 본다. 다만 명칭이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부활’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도민들이 잘 못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는 주장도 유효하다. 그래서 이미 다른 논평가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근민 도정은 임기 초에 명확히 행정시장 직선제가 자신의 공약의 핵심 내용이라고 밝히고는, 재임 2-3년간 자신의 공약인 행정시장 직선제를 추진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당연히 선거 과정에서 혹 자신이 발언 일부분이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다고  약속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선거 과정에서의 오해일 것이기에 처음부터 도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치인이 당선되면 자신의 공약을 추진하는 건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근민 도정은 그렇지 않고 널리 도민의 의견을 수렴한다며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 해 버렸다.

  혹 많은 도민들이 계속하여 우근민 지사의 공약이 기초자치단체 부활로 잘 못 알고 지지를 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의를 제기하면, 행정시장 직선제와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놓고 주민투표를 하면 될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른바 일부에서 강력하게 제시되었던 ‘대동제 안’은 우근민 지사의 공약에는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정시장 권한 강화 후 행정체제개편 논의라는 이른바 도의회의 부대의견도 우근민 지사의 공약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괜스레 용역하고 위원회 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가, 내년 지방선거가 8개월밖에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주민투표 운위하는 것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제주도행정계층구조개편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은 처음부터 계층구조 개편 문제 갖고 괜스레 학술적 토론을 벌이고 어느 안이 좋은지 공방을 벌일 게 아니라 화끈하게 주민투표를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몇 번이나 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제주특별자치도에 잘 맞는 행정계층구조가 어떤 것인지는 사실 전문가의 학술적 문제가 아니라 도민들의 경험칙에서 나오는 정치적 사안이라고 볼 것이며, 그러한 한 주민투표가 문제해결의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2013년 9월에 들어서야 행정계층 구조 개편 문제를 놓고 주민투표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적절해 보인다. 주민투표 할 것이면 벌써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시간을 어디에 다 쓰고는 이제 와서 도의회가 행정시장 직선제 동의안을 부결한 이후에야 주민투표를 할 수도 있다는 우근민 지사의 맞대응은 도민 사회의 분열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우근민 지사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이 자신의 공약일 뿐만 아니라 행정시장 직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최소한 4년간 많은 도민이 겪을 불편함을 생각하는 위민 충정에서 어떻게든 행정시장 직선을 도입하고자 원한다면, 2103년 9월의 시점에서 유용한 정치적 돌파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우근민 지사가 2014년 도지사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공약 지키기와 한데 묶어 행정시장 직선을 소신껏 추진한다면 많은 도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면서 두 개의 큰 공약을 지킨 지사로 기억에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근민 지사의 통 큰 결단에 의해 우선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하고, 이어 2014년 6월 도지사 선거에서는 기초의회 도입을 할지 말지 여부를 놓고 후보자들  간에 공방을 벌이는 게 더 도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도민을 위하는 도정이고 도의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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