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6) 무조신화 초공본풀이 8

아이가 심방이 되면,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 점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면 ‘신안(神眼)’을 얻었다고 한다. 젯부기 삼형제는 서강베포땅 어주애삼녹거리 ‘이승 삼하늘’에 신전(神殿)집을 지어 악기의 신 너사무너도령에게 악기와 무구들을 관리하며 어머니를 보살피라 하고 ‘저승 삼시왕’으로 올라갔다.

삼시왕은 젯부기 삼형제를 일컫기도 하며, 삼형제가 올라간 저승 즉, ‘심방이 죽어서 가는 저승 삼시왕’으로 삼천천제석궁(三千天帝釋宮)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이 죽어서 가는 저승인 시왕(十王)과는 다르다. 삼시왕에 올라가다 보니, 어머니를 죽인 양반 삼천선비 중의 한 사람인 유정승의 딸이 길가에서 놀고 있었다.

삼시왕은 유정승 딸이 육간제비를 줍게 하여 전생팔자(前生八字)를 그르치게 하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던 것이다. 육간제비는 무점구(巫占具)이다. 무점구를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은 심방이 되어 팔자를 그르치라는 신의 소명이 내린 것이다.

신의 소명이 내리면 그때부터 앞일을 예견하는 능력, 신의 뜻을 점지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신안(神眼)’을 얻을 때까지 시련을 겪게 된다. 몸이 아파 죽었다 살아났다 혼절하며 겪는 시련을 무병(巫病)이라 한다. 육간제비를 주운 유정승의 딸은 일곱 살에 눈이 멀었다 열일곱 살에 눈이 뜨이고, 스물일곱에는 또 눈이 멀었다, 서른일곱에 눈을 뜨다가, 예순 일곱에는 눈은 멀었으나 미래를 예견하는 신안(神眼)을 얻게 되었다.

어주애삼녹거리 자부장자 집에 다 죽어 가는 아기가 있어서 굿을 하면 아기를 살릴 수 있다는 걸 예언했고, “굿을 해서 아기를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앞이 캄캄했다. 굿하는 법을 몰랐다. 굿을 하다 굿법을 몰랐기 때문에 수레법망에 잡혀버렸다. 수레법망에 잡혔다는 것은 심방이 굿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저승법망에 걸렸다는 뜻이며, 심방조차도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는 것이다.

굿을 할 때 <시왕맞이> 때가 되면 심방은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저승에 다녀온다. 심방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은 심방이 저승에 갔다오는 것이며, 이는 사경을 헤매는 인간을 ‘저승법망’ 또는 ‘수레(멸망악심)법망’으로부터 풀어내는 것과 같다. 신화에 의하면, 유정승의 딸은 굿을 하다 혼절하여 서강베포땅 신전집에 가 엎드려 절을 하니, 저승 삼시왕이 하늘에서 보고 신전 집을 지키는 너사무너도령에게 하는 말이, “저기 엎드려 있는 자는 어떤 신녀(神女)냐?”하니까, 너사무너도령 삼형제가 가서 “어떤 어른입니까”하고 물으니, “난 유정승의 딸인데, 일곱 살에 육간제비를 주워 눈이 머는 병을 얻고, 67세가 된 나이에 처음으로 굿을 하게 되었는데 굿법을 몰라 수레법망에 잡혀 이리 되었습니다”고 했다.

▲ <당주연맞이>의 새 심방의 입무의례. ⓒ문무병
▲ 신에게 폐백을 올리는 <역가올림>. ⓒ문무병

삼시왕은 유정승 따님 아기가 굿을 하며 얼마나 역가(役價)를 올렸는지 그녀의 정성을 저울로 달아보았다. 역가란 심방이 자격을 얻어 굿을 하게 되었을 때 그 고마움의 대가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물(供宴禮物)을 뜻한다. 그러나 유정승의 딸이 바친 정성은 백 근이 못 찼다. 정성이 부족했다. 그로부터 유씨 부인은 어머니의 궁전 ‘이승 삼하늘’ 신전집에서 도를 닦았다. 삼시왕은 하루에 한권씩 무당서 삼천 권을 읽어라 했다. 삼천일, 10년이 지난 77세가 되는 날, 굿법 공부를 마치는 날, 삼시왕에서 약밥약술[藥飯藥酒]을 먹여 심방이 되는 의식을 행하고, 어인타인(御印打印)을 찍어 심방의 자격을 얻었음을 인정해 주면서, 무당서 삼천 권과 삼천기덕[旗]·일만제기(祭器)·궁전궁납(樂器)을 내어 주었다.

유정승의 딸은 돌아와 굿을 하여 자부장자의 딸을 살려냈다. 유정승의 딸이 받은 무당서 삼천 권은 굿법을 기록한 책이며, 지금도 심방들은 무당서 삼천권의 굿법에 따라 ‘차례차례 재차례 굿’을 한다. 정승의 딸은 양반의 딸로 신의 소명에 의해 팔자를 그르친 최초의 심방 선생 유씨 부인이다. 유씨 부인의 굿법을 계승하며 이어온 것이 제주도의 굿이다. ‘팔자를 그르친다’는 말에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과거를 포기한 젯부기 삼형제와 양반의 딸로 태어났으면서도 ‘신의 길’을 가기 위해 팔자를 그르친 유씨 부인의 한(恨)이 포함되어 있으며, 굿을 통하여 ‘한풀이’의 굿법이 계승되고 있다.

▲ 신이 내리는 <약밥약술>. ⓒ문무병
▲ 심방의 자격을 인정하는 도장 <어인타인>. ⓒ문무병

유정승의 딸이 67세에 신안을 얻고 도를 닦아 굿법을 전수한 3000일은 무당서 3천권의 굿법을 전수한 기간이다. 이는 저승 세계의 10일에 해당하며, 심방의 저승 갔다 온 10일, <시왕맞이> 굿을 하는 10년이다. 유씨 부인은 자복장자집 시왕맞이 굿을 하는 10일 동안에 어머니의 궁이 있는 ‘이승 삼하늘’ 신전집에 10년 동안 굿법을 전수하였다. 이 기간은 저승에 갔다 온 10일, <시왕맞이> 굿을 했던 10일에 해당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10년에 해당하는 저승에서 10일을 보낸 것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즉 인간의 나이로 67세에 신안을 얻은 유씨 부인이 77세의 나이에 최초의 심방이 되었다는 것은 저승 10일 동안 굿을 익혀 돌아와 자복장자집의 최초의 굿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0년 공부한 굿법으로 정성을 다해 10일 동안 굿을 하여 사람을 살렸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인간 세계의 10년은 저승의 10일이란 역법(曆法)이 생겨났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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