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8) 무조신화 초공본풀이 10

제주도의 무당은 심방이다. 무업에 종사하는 제주 사람들은 천시하는 듯한 ‘무당’이란 말보다 자신은 ‘신의 아이’ 또는 ‘신의 성방(刑房)’이기 때문에, 신의 일을 대신하기 위하여 팔자를 그르쳐 신의 덕에 입고, 자고, 먹고, 행동하는 신방(神房)으로서 신에 의지하여 대를 이어 살아온 세습무라는 의미를 지닌 ‘심방’이라 생각한다.

심방은 적어도 조상으로 모시는 명두[明刀] 한 벌을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아 지니고 있으며, 그 ‘명두물림’이란 의식에 의해 물려받은 명두가 영험 있고 족보 있는 ‘조상’이어야 심방으로서 추앙을 받는다.

명두는 무조신(巫祖神) ‘젯부기 삼형제’의 이름이 ‘본명두’, ‘신명두’, ‘삼명두’이기 때문에 심방이 조상으로 모시는 신이며, ‘본명두는 요령’, ‘신명두는 신칼’, ‘삼명두는 산판’으로 무구(巫具)인 ‘요령’, ‘신칼’, ‘산판’을 가리키는 동시에 실제로 심방이 집안에서 조상으로 당주상(堂主床)에 모시고 있는 당주이며 몸주이다.

명두는 또 무조신의 영험이 담겨있는 증거물로서 ‘본메’라 한다. 새 심방은 스승의 수양딸이나 양자가 되어 사제관계에서 부모자식의 관계를 맺어 대를 잇는다. 팔자동관(八字同官) 유학형제(儒學兄弟)의 관계를 맺어, 부모와 같은 옛선생, 옛조상을 모시고 그들의 무업을 세습하게 된 심방의 가계에 편입된다. 그리되면 대대로 내려오는 명두 한 벌을 물려받거나 그 명두를 본떠서 새로 만들어 대를 이을 자식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이러한 의식을 명두물림이라 한다.

명두를 물려받아 심방되어 굿을 하여 벌어먹다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게 되면 신굿을 하게 된다. 신굿은 심방집에서 하는 큰굿이다. 사가에서 7일 동안하는 큰굿 4탕클굿(四祭棚祭)에 초공본풀이를 굿본으로 하여 신의 질서를 바로 잡는다. 심방으로 거듭 나게 하는 삼시왕맞이 또는 당주맞이라고 하는 큰굿이 결합되어 15일 이상 계속되는 굿중에서 가장 큰 굿이다.

신굿은 심방이 되어 굿(巫業)을 하여 벌어먹은 역가(役價)를 신에게 바치는 역례(役禮)이다. 동시에 심방이 신에게 비로소 심방으로 인정받는 입사식(入社式 Initiation)이다. 명두 조상을 얻어 새로 난 심방은 신굿을 행하면서 하신충이나 하신충에서 중신충으로, 또는 중신충에서 상신충이 되어 큰심방으로 공인받는 기회를 얻게 된다.

▲ 고분멩두 질치기. ⓒ문무병

신굿에는 심방이 되는 과정에 치러야 할 중요한 굿들이 있다. 공시풀이, 약밥약술, 어인타인, 예개마을굿, 당주질치기, 고분멩두, 쇠놀림굿 등이 그것이다. 공시풀이는 명두의 내력, 유씨부인으로부터 비롯한 굿법을 어느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아 자신의 무업을 계승하게 되었느냐고 하는 옛선생들의 계보를 밝히는 것이다. 즉 공싯상에 놓인 본주 심방이 지니고 다니는 명두의 내력을 풀이하는 것이다.

약밥약술(藥飯藥酒)은 심방이 될 사람이 신굿을 하여 삼시왕[巫祖神]에게 역가(役價)를 올리고, 신으로부터 그 정성을 인정받으면 삼시왕(巫祖神)에서 내려 주는 신약인 약밥약술[藥飯藥酒]을 타 먹고 하늘에서 심방의 자격이 있다고 찍어주는 도장 어인(御印打印)을 등에 맞게된다. 신으로부터 무당서(巫堂書) 삼천 권과 무구와 무악기를 받아, 소무를 데리고 가 예개마을 굿을 한다.

그때야 비로소 신의 덕에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의 은공으로 먹고살게 되었기 때문에 신에게 역가를 바치는 초역례를 행하게 된다. 초역례를 바친 심방은 하신충이 되고, 다시 이역례를 바치면 중신충, 삼역례를 바치면 상신충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신굿은 말하자면 신에게 벌어먹은 역가를 바치는 동시에 큰 심방들로부터 평소에 배우지 못한 굿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를 “신길을 바로 잡는다”고 한다. 신굿 당주맞이를 <삼시왕맞이>라고 하는 것은 심방이 죽어서 가는 삼시왕의 길을 치어 닦아 심방의 영혼을 삼시왕으로 보내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 고분멩두 질치기. ⓒ문무병

그러므로 처음에 거칠고 험한 길을 닦아 가는 <질치기>의 과정은 시왕맞이의 <질치기>와 같으나, 그 이후의 과정은 초공본풀이에 입각하여, 삼시왕으로 가는 과정, 즉 심방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삼시왕 길을 바르게 닦아 가는 과정이 ‘신 길을 바르게 하는 것’이며, 당주가 초공본풀이의 굿법에 따라 신 길을 닦아가 과정이다. 신굿 <당주연맞이>에는 당클(祭棚) 속에 본주 심방의 멩두(明刀)를 숨겨 두고, 문점하고 굿을 하면서, 어렵게 명두를 찾는 방법을 공론하고, 간신히 명도를 찾아 본주에게 내어 주는 의식이 있다. 이를 <곱은멩두>라 한다.

마치 주몽신화에 유리왕이 부러진 칼을 찾는 ‘신물찾기’와 같다. <곱은멩두질>의 ‘곱은’은 ‘숨은’의 뜻이므로, <곱은멩두>는 일종의 ‘신물찾기’이다. 심방은 <초공본풀이>를 창(唱)해 나가다가, 명도(明刀)와 관련된 부분이 나오면, “연양당주 삼시왕길도 바르게 하자”하고, 그 명도를 “시왕전에 도올리자”하며, 안팎으로 춤을 추며, 신 길을 쳐 나간다.

그러면 명도는 ‘시왕당클’에 숨겨지고, 심방은 소무와 함께 수수께끼 문답으로 잃어버린 명도를 그려 나가고, 결국은 잃어버린 명도가 무엇인가를 알아낸다. 신굿 당주맞이의 마지막은 신 길이 바로잡혔는가를 점치는 종합적인 명두점으로 <쇠놀림굿>이 있다. 쇠놀림굿은 굿에 참여한 수심방과 소무들의 명두(밧공시의 명두)와 본주와 본주 집안의 명두(안공시의 명두) 전부를 던져서 점을 치고, 그 명두가 놓인 자리를 보고 신길이 바르게 잡혔는가를 점친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명두를 지닌 새 심방은 신굿을 하여 역례를 바침으로써 신 길을 바로잡아주는 수심방과 소무들의 명두의 질서 속에 편입됨으로써 새로운 심방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