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70) 저승사자 강림과 강림의큰부인 신화 4

성문 안에 사는 아홉 첩들, 성문 밖에 사는 아홉 첩들과 살림을 가르고, 강림은 그날 밤 오랜만에 큰부인과 사랑을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강림의 삼년상 첫제사만 넘으면 강림의큰부인과 혼인하여 같이 살아보려 기다리던 뒷집 김서방이 큰부인을 찾아왔다. 찾아와보니 웬 망건이 벗어 걸어져 있고, 관대가 벗어 걸어져 있으니, 그 길로 원님에게 달려가 고했다.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을 잡아오겠다고 한 강림이 실제로는 낮에는 병풍 뒤에 숨어살고, 밤이면 병풍 밖을 나와 부부 살림합니다.”


원님은 강림을 잡아와 호통을 쳤다.
“어느 것이 염라대왕이냐?”
“모레 사오 시에 온다고 했습니다. 삼척해동은 등을 보라 하였으니 나의 등을 보십시오. 뭣이라 하였는가?”
강림의 등에는 과연 저승의 글이 쓰여 있기는 했지만, 염라대왕을 잡아오는 일이었으니 그냥 믿을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없다. 염라대왕이 올 때까지 강림을 잡아 가두어라.”


그 날 그 시각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사오시가 되니 하늘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면서, 어디선가 빛이 비추더니 벼락 치듯 염라대왕의 모습이 나타났다. 모두들 도망가고 동헌 마당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혼자 감옥에 갇혀 있던 강림이 눈을 꿈쩍하니, 감옥 자물쇠가 철컥, 저절로 풀렸다.


염라대왕이 소리 질렀다.
“강림아, 이리 오너라.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까닭이 뭐냐?”
“모르겠습니다. 우리 원님이 아십니다.”
“원님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 집은 누가 지었느냐?”
“서 목수가 지었습니다.”
“서 목수를 불러들여라.”


“이 집을 네가 지었느냐?”
“예.”
“이 집 기둥은 몇 개를 세웠느냐?”
“네 개입니다.”
“이 기둥 중에 네 솜씨가 아닌 기둥이 있을 것이다. 그 기둥을 큰 톱으로 끊어라.”
“공주기둥은 저의 솜씨가 안 들어간 기둥입니다.”
서 목수가 자신의 솜씨가 아닌 기둥을 톱으로 끊자, 변신한 김씨 원님의 손목에서 피가 났다. 이때 난 법으로 새 집을 짓고자 상량식을 할 때는 수탉의 모가지를 잘라 네 기둥에 피를 바르는 법이 생겼다.

▲ 상방. 제주의 가옥에서 안거리나 밖거리 등 살림채의 중심에 위치하는 마루방이다. 문전신이 있고, 상량식에서 제일 먼저 닭의 피로 깨끗하게 하는 기둥인 ‘생깃기둥’이 있는 신성한 공간이다. (출처/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원님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발발 떨며 댓돌 아래로 내려서니, 염라왕이 소리를 높였다.
“어떤 일로 나를 청하였느냐?”
원님도 감히 대답을 할 수 없어 주먹만 쥐어 떨기만 하니, 원님 대신 강림이가 대답했다.
“염라왕님아, 어찌 그리 욕을 하십니까? 저승 왕도 왕이고 이승 왕도 왕인데, 왕과 왕끼리 청하지 못할 바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염라대왕은 언성을 낮추었다.
“강림이가 똑똑하구나. 그럼, 이승왕님아, 어떤 일로 나를 청하였습니까?”
“과양생이의 아들 삼형제가 한 날 한 시에 태어나고, 한 날 한 시에 과거에 급제하고, 한 날 한 시에 죽어버렸습니다. 그 후로 과양생이처가 백일동안 매일같이 소지를 올렸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그 소지를 해결할 수가 없어 염라대왕을 청하였습니다.”
“음, 그렇구려. 저승에서 이미 그런 줄은 알고 왔습니다. 일단 과양생이 부부간을 동헌 마당에 데리고 오십시오.”


과양생이 부부가 동헌마당에 도착했다.
“너희는 아들이 죽었으니, 어디에 임시로 매장하였느냐?”
“앞밭에 매장하였습니다.”
과양생이 부부의 말을 따라 앞밭에 가 보았으나 앞밭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염라대왕은 연화못으로 과양생이 부부를 데리고 갔다. 뻔뻔하게 속여대기만 하는 과양생이 부부를 세워놓고 염라대왕은 화려한 금부채로 연화못의 물을 세 번 내리쳤다.
몰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물이 줄어든 밑바닥에는 삼형제의 뼈가 살그랑하니 남아 있었다. 염라대왕이 또 이를 금부채로 세 번 치니 삼형제가 부스스 일어나며 말했다. 
“아이고, 봄잠이라 늦게 잤습니다.”


살아난 삼형제는 과양생이처에게 활 받아라, 칼 받아라, 죽일 판으로 덤벼들어 갔다. 염라대왕이 ‘원수는 내가 갚아 줄 테니 너희는 어서 부모님이나 찾아가라’ 했다. 
과양생이 부부간 팔 다리 아홉에 소를 묶고, 목자를 시켜 동서로 몰아가라 하니, 과양생이 부부간이 아홉 조각으로 찢어졌다. 찢어지다 남은 것은 방아에 넣어 독독 빻아서 바람에 날려 버리니, 살아 있던 때도 남의 피만 빨아먹자고 하던 과양생이 부부간은 죽어도 남의 피를 빨아 먹자고 각다귀, 모기 몸으로 환생했다.


일은 해결되었고, 염라대왕은 똑똑한 강림이 탐이 났다. 
“김씨 원님, 강림을 빌려주시면 저승에 데려다가 조금만 일을 시키고 보내드리겠소.”
“그건 안 됩니다. 여기도 항상 손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반반씩 나누어 가지면 어떻소?”
“그건 그렇게 하십시오.”
“육신을 가지겠습니까, 정혼을 가지겠습니까?”
이승의 김씨 원님은 육신을 가지고 있어야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육신을 가지겠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강림의 혼을 뽑아 저승으로 가져가 버렸다.


김씨 원님은 기분이 좋아 술상을 차리고 강림을 불렀으나 강림은 그 자리에서 꼼짝을 안했다.
“강림아, 이 술 한 잔 먹고 저승에 갔다 온 말이나 해 봐라. 저놈 봐라. 염라왕을 잡아왔다고 너무 큰 척하여 말대답도 안 한다.”
원님이 강림을 툭 건드리자 강림은 쓰러졌다. 가만히 보니 강림은 혼이 나가 있고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


강림이 죽자 강림의큰부인은 정말 섭섭했다. 초염습, 대염습, 성복, 일포, 동관을 하여도 섭섭하고, 역꾼을 모아 상여를 메어 어기낭창 하며 상여노래를 불러도 섭섭했다. 좋은 땅에 감장하고, 초우, 재우, 삼우제를 지내고 초하루, 보름 삭망제를 지내도 섭섭했다. 소기, 대기를 지내도 섭섭함이 남자 삼명절(정월, 추석, 단오)에 차례를 지냈다. 그래도 섭섭하여 일 년에 한 번 기일제사법을 마련했다. 이 모든 상례법이 강림의큰부인이 마련해놓은 법지법이다.


저승으로 간 강림은 염라대왕의 사자로 일하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강림에게, ‘여자는 칠십, 남자는 팔십이 정명이니 차례차례 이승에서 저승으로 데려오라.’ 고 명령을 내렸다.
강림은 적패지(赤牌旨)를 등에 지고 이승으로 내려오다가 너무 먼 길이라 지쳐서 쉬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까마귀가 뭘 그렇게 지치도록 걸어 다니느냐고 놀렸다. 강림은 까마귀에게 자기 대신 이승에 날아가서 적패지를 붙여오라고 시켰다.
까마귀는 적패지를 앞날개에 달고 이승으로 날아가다가 밭에서 말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싱싱한 말 피라도 얻어먹을 요량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기다렸다. 때마침 말을 잡던 백정이 말발굽을 끊어 휙 던졌는데 까마귀는 자기를 맞히는 줄 알고 퍼뜩 날아오르다가 그만 적패지를 떨어뜨려 버렸다. 마침 담구멍에 있는 뱀이 적패지를 호로록 삼키고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뱀은 죽는 법이 없이 아홉 번 죽었다가도 열 번 살아나는 법이다. 

▲ 2012. 9.11. 강대원심방이 등에 적패지를 붙이고 강림신화를 구술하고 있다. ⓒ김정숙

까마귀는 옆에 앉은 솔개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적패지 달라. 까옥.”
“안 보았다. 뺑고로록.”
그 때 낸 법으로 지금도 까마귀와 솔개는 만나면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 싸우는 법이다.


적패지를 잃어버린 까마귀는 이승에 날아와서 아무데나 되는대로 외쳐댔다.
“아이 갈 때 어른 가십시오, 까옥~”
“어른 갈 때 아이 가십시오, 까옥~”
“부모 갈 때 자식 가십시오, 까옥~”
“자식 갈 때 부모 가십시오, 까옥~”
“자손 갈 때 조상 가십시오, 까옥~”
“조상 갈 때 자손 가십시오, 까옥~”
그 때 낸 법으로 어른 아이 순서 없이 죽는 것이고, 까마귀가 울면 좋지 않은 법이다.


까마귀가 적패지를 잃어버리고 되는 대로 외치는 바람에 남녀노소가 순서도 없이 마구 저승으로 몰려들자, 어리둥절해진 재판관이 강림을 불러 문초를 했다. 
“분명 나이가 되면 차례차례 데려오라고 했는데 어째서 어른 아이 구별 없이 이리 몰려오고 있는 것이냐?”
곤란해진 강림이 까마귀를 잡아 닦달하니 말 죽은 밭에 들어 피나 한 점 얻어먹으려고 하다가 적패지를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강림은 화가 나서 까마귀를 보릿대 형틀에 묶어 놓고 아랫도리를 후려 갈겼다. 그때 낸 법으로 까마귀는 바로 걷지 못하고 어기적어기적 걷는 것이다.
이 일로 제 할 일을 잊고 공짜로 뭔가를 얻어 볼까 엉뚱한 곳으로 들어간 사람을 ‘말 죽은 밭에 들었다“는 말이 생겼다. 


그때 염라대왕에게 큰 근심이 생겼다. 목숨이 다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도저히 잡아오지 못하고 있었던 동방삭 때문이었다. 염라대왕은 강림에게 동방삭을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다. “동방삭을 잡자고 하여 차사를 보내는데, 아이차사가 가면 어른이 되고, 어른 차사가 가면 아이가 되어도 잡아오지를 못하니 이 어떤 일인고? 네가 동방삭이 있는 곳으로 가서 동방삭을 잡아오면 한 달을 놀려주마.”
“어서 그건 그리하십시오.”


강림은 어떻게 동방삭을 잡아올까 고민하다가 사람 왕래가 많은 시냇물에서 시커먼 숯덩이를 박박 씻는 수를 냈다. 사람들이 재미난 구경이 났다고 몰려들었다.
삼천년을 살아오도록 별의별 일을 다 꺽은 터라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안하는 동박삭도 시커먼 숯덩이를 씻고 있다는 황당한 일에는 어인 일인가 호기심이 생겨 시냇가로 갔다.
역시나, 시냇물에는 숯을 박박 씻고 있는 이가 있었다.

▲ 동방삭. 한나라 시대의 문인이었지만 실제보다 설화에 더 많이 등장한다.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등장했던 긴 이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세브리깡… .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의 마음속에 동방삭이 있다.(출처/구글이미지. idealist.egloos.com)

“무슨 까닭에 시커먼 숯덩이를 씻고 있소?”
“예, 이 검정 숯을 백일만 씻으면 하얀 숯이 되어, 백가지 약이 된다고 해서 씻고 있습니다.”
“야, 이놈아 이 동방삭이가 삼천년을 살아도 그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다.”
“옳거니, 네 놈이 바로 동방삭이로구나.”
강림은 방긋 웃으면서 날쌔게 달려들어 동방삭을 밧줄로 묶었다.
“어떤 차사가 와도 간단히 따돌렸는데 이번은 제대로 된 저승사자를 만났구나, 네 이름은 무엇이냐?”
“강림이오.”
동방삭은 순순히 저승의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갔다. 
너무 오래 살고 있는 동방삭을 잡아오는 근심을 없앤 염라대왕은 크게 기뻐하며, 똑똑한 강림을 사람을 잡아오는 차사로 삼았다.


*참고 현용준 <제주도 무속자료사전>, 문무병 <제주도무속신화>, 제주문화원 <제주신화집>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