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7) 무르만스크 下

 객실 창밖으로 보이는 무르만스크는 도시를 둘러싼 언덕위에 세워진 회색빛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들이 마치 점령군처럼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무채색의 아파트 건물들은 도시 전체에 음산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동안 지나온 여러 도시들에서 보아온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다름이 없이 무미건조한 도시의 모습이다.

 가이드북에서 소개하고 있는 볼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 호텔을 나섰다. 우선 기차역에서 가까운 항구의 터미널 근처에 있는 퇴역한 핵추진 쇄빙선(Ice braker) ‘레닌’호를 보기위해서 항구쪽으로 길을 잡았다.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선들이 늘어서있고 크레인과 금속성의 소음으로 가득한 항구의 한쪽에 레닌호는 굵은 밧줄에 매달린 채 거대한 고철 덩어리로 전락해 있었다.

 세계최초의 핵추진 선박으로서 최첨단을 자랑하던 ‘레닌’호는 1957년 12월 진수되어 30여 년 간의 운항 끝에 1989년 퇴역하였고, 이제는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돼 무르만스크항구에서 기약 없는 정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전함은 입구에 출입금지 팻말을 걸어놓은 채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항구를 나와서 2000년 무르만스크 앞바다인 바렌츠 해에서 침몰한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의 선원들을 추모하는 등대탑과 그 위쪽에 건립된 구세주 정교회 사원을 보기위해 걸음을 옮겼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걸어서 찾아갔는데, 먹구름이 간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다가 황급히 바쁘게 사라지기도 하며, 종잡을 수 없는 날씨를 보였다. 등대 기념탑과 구세주교회는 아침에 택시를 타고 찾아갔던 ‘알료샤’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한꺼번에 볼 수도 있었던 건데 두 번씩이나 발걸음하게 되었다.

 2002년 시민의 성금으로 세워졌다고 하는 정교회 사원은 새하얗게 칠해진 벽과 파란색 지붕, 황금빛 돔이 정교회 특유의 외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으로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호텔 창밖으로 점령군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던 회색빛 아파트 단지가  바로 구세주 교회 길 건너편에 우중충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서있었다.

 아름다운 색깔의 조합으로 햇빛에 빛나는 정교회 성당과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는 기묘한 대비를 보여주었다. 어쩌면 러시아 민중들에게 일상을 지배하는 저 우중충하고 음산한 회색 아파트에서 나와 하얀색 벽과 파란색 지붕, 황금빛 돔으로 치장한 성당에서 구원을 얻게 하고, 도피하고픈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아닐까? 자신들이 사는 어둡고 음습한 세상에서 나와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열망이 길 건너편 이곳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호텔 방 창밖으로 내다본 시내 전경. 멀리 보이는 언덕에 아파트 단지가 위압적으로 도시를 감싸고 있다. ⓒ양기혁

 호텔로 돌아왔을 때 앞 광장에선 가운데 무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임시천막들이 둘러쳐져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무대에선 전통복장을 한 밴드가 러시아 민요와 가요들을 남녀가 번갈아가며 부르고 있었고, 주변에선 기념품가게, 연기를 피워 올리며 고기를 굽는 간이음식점들이 들어서고, 사람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무대 옆에 내걸린 배너에는 ‘6월12일 러시아의 날’이라고 써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흥을 돋우고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는 내 귀에도 익숙한 ‘검은 눈동자’, ‘모스크바 근교의 밤’같은 러시아 민요도 들렸다. 이슬람복장을 한 천막의 탁자에 앉아 구운 고기에 흑빵을 시켜서 늦은 점심을 때웠다. 행사장 내에 술은 금지되어 있는지 팔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한편으론 이 행사가 밤새가 벌어지면 어떡하나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에 전통적으로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며 놀기를 즐겨하는 러시아 인들이고 보면 오래 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는 잠깐이고, 오락가락 하던 날씨가 저녁시간이 되면서 굵은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무대 위 가수들과 악기들도 곧 철수하고 말았다. 호텔 바로 앞 광장에서 벌어지는 행사의 소음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 했던 우려는 말끔히 가시고, 모처럼 샤워도 하고 밀렸던 빨래도 하고, 근처 가게에서 사온 보드카와 맥주를 마시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 무르만스크에서 노르웨이 키르케네스로 가는 버스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양기혁

아침6시. 풀어헤쳤던 배낭을 다시 챙기고 나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텅 빈 광장의 한쪽에 외롭게 서서 번쩍이던 전광판에서 낯익은 광고가 반복하여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삼성 전자제품 광고였는데, 아르한겔스크의 시내 길모퉁이에 서있던 전광판의 현대 중장비 광고와 함께 한국의 장사꾼들이 참으로 멀리도 왔구나! 이 세상의 한 끝자락까지 멀리도 왔다는 생각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는 7시에 호텔 앞에 온다고 했는데, 호텔 아침식사도 7시에 시작이다. 어제 저녁 후론트 데스크에 아침식사를 좀 일찍 해 줄 것을 부탁하여 10분을 앞당겨 혼자 뷔페로 차려진 식당에서 조금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미니버스는 내가 식사하는 도중에 이미 와서 호텔 앞에 세워져있었는데, 1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버스는 시내를 통과하여 곧 콜스키 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에서 러시아의 콜라반도에 이르는, ‘라플란드’라는 아름으로 불리는 툰드라지대의 동토의 땅에도 여름이 오자 감춰둔 속살을 내보이듯 녹색으로 산야를 뒤덮고 있었다. 강과 호수와 늪지대가 반복하여 나오고 국경이 가까워오자 중무장한 군사기지들이 자주 나타났다. 중간 휴게소에서 잠깐 쉬는 사이에 운전기사는 버스요금을 받았다. 편도가 1000루블이었는데, 왕복요금은 1700루블이었다. 낯선 동양인이 걱정스러웠는지 내 여권을 좀 보자고 해서 꺼내 줬는데 그는 별 이상이 없는 듯 곧 여권을 돌려줬다. 3시간여를 달려 러시아와 노르웨이 국기가 나란히 서서 펄럭이고, 철조망 건너편에는 'Kingdom of Norway'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러시아와 노르웨이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았다. 러시아와 노르웨이 사이로 돌출되어 바렌츠 해로 나갈 수 있는 핀란드 영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은 이 핀란드 영토를 점령하였고, 노르웨이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으며, 핀란드는 북쪽 바렌츠해로 나갈 수 있는 영토를 상실하고 말았다.

 세관통과는 매우 꼼꼼하고 더디게 진행되었다. 특히 낯설고 먼 나라에서 온 나에 대해서는 여권과 얼굴을 몇 번씩 대조해 보면서 조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노르웨이 쪽 세관은 의외로 간단히 끝났다. 제복을 입은 세관 여직원은 특별히 신고할 술이나 담배같은 것이 없는지 묻고는 곧바로 OK다. /양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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