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2) 이공본풀이 4

꽃의 신화 <이공본풀이>는 큰굿 속의 굿 <이공맞이>, <아공이굿>, <불도맞이>의 굿본[臺本]이 될 뿐만 아니라, 이공신 ‘한락궁이’가 서천꽃밭에서 사람을 살리는 생명꽃․환생꽃․번성꽃을 따다가 어머니를 살려내고, 어머니를 죽인 제인장자 집안을 수레멸망악심꽃으로 멸망시키는 내력담을 통하여 꽃의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제주도 큰굿에서 꽃의 신화가 의미하는 것은 굿의 원리를 풀어내는 ‘신풀이’, ‘꽃풀이’, ‘전상풀이’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심방이 동백꽃을 들고 춤을 출 때, 동백꽃은 겨울 음지에 피는 질긴 생명을 지닌 단순한 동백꽃이 아니라, 생명․번성․환생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러므로 심방이 들고 있는 제주도의 동백꽃은 ‘서천꽃밭의 꽃’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공본풀이의 ‘서천꽃밭’은 저승의 하나이며, 온갖 주술이 작용하는 신비스런 꽃들이 피어 있고, 꽃을 지키는 무섭고 두려운 꽃감관(花監官)․꽃성인(花聖人)과 열다섯 십오세 이전에 죽은 아이와 젊어서 죽은 너무나도 착하고 불쌍한 처녀들이 신소미[神小巫]가 되어 꽃밭에 물을 주고 있는 곳이다. 신소미는 하늘나라의 소무(小巫) 즉 선녀(仙女)를 말한다.

서천꽃밭은 아름다운 환상과 신비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이며 제주 사람들이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칭원하고 불쌍한 서러운 정네(貞女)들이 죽어서 선녀가 되어 꽃밭에 물을 주어 생명의 꽃들을 키워내는 저승의 피안이다.

아마 서천꽃밭은 제주사람들의 이여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천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따다가 망자들을 살려내는 일이야말로 굿을 하여 맑고 공정한 저승법으로 억울한 죽음, 버려진 시신들을 거두어 “아이고, 봄잠 너무 오래도 잤다”하며 되살아나는 도환생(還生)의 의미를 지닌다. 제주인에게 ‘서천꽃밭’은 불교의 정토사상과 관음신앙의 토대 위에 다시 세운 제주인의 낙원 ‘이여도’가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서천꽃밭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저승이지만, 부정(不淨)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다. 신이거나, 신을 대신할 수 있는 ‘신의 아이’ 또는 ‘신의 형방(刑房)’인 심방[神房]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서천꽃밭에서 쫓겨난 이야기로 심방이 되려다 오빠에게 죽임을 당한 비극적인 <양씨아미 본풀이>가 있다. 이 본풀이에 의하면, 북제주군 조천읍 눌미(臥山里)에 ‘양씨 아미’가 살았다. 얼굴 곱고, 소리 좋고 춤 잘 추는 아이라 소문이 자자했다. 양씨 아미에겐 세 명의 오라비가 있었는데, 큰 오라비는 강단이 세어 누이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미워했고, 아래 두 오라비는 양씨 아미의 재주를 아까워하며 사랑했다.

7세, 8세 때부터 양태청에 나가 심방노래도 부르고, 친구들의 일을 미리 점쳐 예언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넌 소리도 잘하고, 점치는 재주도 있으니, 심방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양씨 아미도 심방이 되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싶었다. 새벽에 몰래 물 길러 갔다가 어욱삥이(억새)를 뽑아 신칼 삼아 춤을 추고 노래도 불렀다. 15세에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의지가지 없는 양씨 아미는 그 충격이 너무 컸다.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와흘리 김씨 선생이 와 귀양풀이(굿)를 하고 돌아갈 때 그를 몰래 따라 나섰다.

▲ ⓒ문무병

 

“삼촌, 나도 심방질 배우쿠다.” “아이구, 양씨 아미 이거 어떵헌 일이우꽈? 큰오라비 알면 죽을 일이니, 어서 왔던 길로 돌아 갑서” 하니 양씨 아미는 미쳐서 정처 없이 헤매어 돌아다녔다. 작은 오라비들이 동생을 겨우 찾아내었다. 아이구 설운 나 동생아, 어서 집에 가자. 네 소원(所願)을 들어주마 달래어 집으로 데려왔다. 큰 오라비는 양씨 아미를 방안에 가두고 밖으로 잠가버렸다. 밥 한 끼 안 주고, 오뉴월 염천에 물 한 모금 아니 주었다. 그때마다 작은 오라비들은 큰형 몰래 대접에 물을 떠다 창구멍을 뚫고 보릿대로 “설운 동생아, 이 물이나 빨아먹고 목이나 축이거라”하며 물을 빨아 넣어 주었다.

스물 한 살 되던 해, 큰 오라비는 도고리에 개를 삶아 큰 마당에 내어놓고, 양씨 아미를 머리채를 휘어잡고 질질 끌어다가 개장 국물을 억지로 먹이고 개 국물에 목욕을 시켰다. 죽어도 개 국물을 먹지 않으려 버둥대다가 양씨 아미는 새파랗게 죽어갔다. 마음씨 착한 양씨 아미는 죽어서 서천 꽃밭에 갔다. 서천꽃밭에 들어가니, 신소미(仙女)들이 나와 “아이구, 저 아이 얼굴도 곱다”하며 손목을 잡고 서천꽃밭으로 인도하여 은동이 놋동이 내어주며 꽃밭에 물을 주라 하였다.

어느 날 꽃감관․꽃성인이 꽃밭을 살피러 왔다. 양씨 아미가 물을 준 꽃들은 다 시들어 검뉴울꽃(시들어 죽어가는 꽃)이 되어 있었다. 양씨 아미를 불러 들여 개 국물에 목욕을 했기 때문에 부정이 많다 하여 인간 세상으로 쫓아버렸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양씨 아미는 인간 세상에 돌아와 혼백은 있으나 몸체가 없어 이승도 못 가고 저승도 못 가 비새 같이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굿판을 찾아가는 고적적을 만나 따라가 그 집안의 조상이 되었다. 이와 같이 서천꽃밭은 마음씨 착한 처녀들이 죽어서 선녀로 태어나 꽃밭에 물을 주는 아름다운 낙원으로, 부정한 사람은 꽃을 키울 수 없는 저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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