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3) 이공본풀이 5

▲ 수레멜망악심꽃 꺾음. ⓒ문무병

제주도 신화에서 보면,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들의 싸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수수께끼 싸움(수치젯기기)’이고 다른 하나는 ‘꽃 피우기 싸움’이다. 수수께끼 싸움이 지혜의 우열을 가리는 싸움이라면, 꽃 피우기 싸움은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싸움이다.

‘꽃 피우기 싸움’은 서천꽃밭에 가서 꽃씨를 타다가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행위는 하나의 인연을 쌓는 것이다. 선업(善業)을 쌓아 가지와 송이가 무한히 뻗어 번성(繁盛) 꽃이 되어 이긴 자[勝者]는 이승을 차지하고, 악업(惡業)을 쌓았기 때문에 꽃에 물은 주었지만 부정하여 ‘검뉴울꽃(이울어 가는 꽃)’이 되어 진 자[敗者]는 저승을 차지한다. ‘꽃 피우기 시합’에서 꽃이 상징하는 의미는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을 쌓은 결과이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원리와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하늘을 거스르는 일[逆天行]이 생기기도 하며, 그 결과 세상의 일은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지왕 본풀이>에서 보면, 하늘 옥황의 천지왕은 마음씨 착한 큰아들 ‘대별왕’이 이승을 차지하여, 이 세상은 맑고 공정한 세상이 되고, 마음씨 나쁜 작은 아들 ‘소별왕’이 저승(죽음의 세계)를 차지하여, 저 세상은 혼돈과 무질서의 어둠의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꽃이 뒤바뀐 사건이 벌어진다.

‘꽃 가꾸기 시합’에서 대별왕의 꽃은 번성꽃이 되고, 소별왕의 꽃은 검뉴울꽃이 되었지만, 소별왕이 잔 꾀를 내어 “성님, 옵서 우리 지픈 잠이나 자 보게”하며 누가 더 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는가 하는 잠자기 시합을 제의하고, 잠자는 척하다가, 형이 깊이 잠든 사이에, 꽃을 바꿔치기 하여 결국 이승은 마음씨 나쁜 소별왕이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승은 살인, 방화, 도적, 강간 등 온갖 악이 들끓는 세상이 되고, 저승은 마음씨 착한 형 대별이이 다스리는 맑고 공정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삼싱할망 본풀이>는 누가 아이를 잘 낳고 기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는가를 겨루는 신들의 싸움이야기이다. 두 여신은 모두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고, 그 능력을 옥황상제도 판단할 수가 없었다. 삼싱할망(産神)은 ‘명이 긴 나라(명진국)’의 공주였고, 아기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구삼싱할망(저승할망)은 동해바다 용왕국의 공주였다. 동해 용왕의 따님과 명진국의 따님이 서로 아이를 잘 낳게 할 수 있는 생불왕(生佛王=産神)이라 우기며 싸웠다. 두 처녀는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등장을 들었다.

옥황상제는 꽃씨 두 방울을 내주며 꽃씨를 심고 꽃이 번성하는 자가 생불왕이 되라 하였다. 동해 용왕 따님의 꽃은 뿌리도 하나요, 가지도 하나요, 순도 겨우 하나 돋아 이울어 가는 ‘검뉴울꽃’이 되었는데, 명진국 따님의 꽃은 뿌리는 하나인데, 가지는 4만 5천 6백 가지로 번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해 용왕 따님은 죽은 아이의 영혼을 차지한 저승할망(=구삼싱할망)으로 들어서고, 명진국 따님은 삼승할망(=생불왕)으로 들어서라 하였다. 이 분부가 떨어지자 동해 용왕의 따님은 명진국의 꽃가지를 오독독 꺾어 가졌다.

명진국 따님이 “왜 남의 꽃가지를 꺾어 가지느냐?”하고 묻자, “아기가 태어나 백일이 지나면 경풍∙경세 등 온갖 병이 걸리게 하겠노라” 하였다. 명진국 따님은 “아기가 나면 너를 위해 적삼∙머리, 아기 업는 멜빵 등 폐백과 좋은 음식을 차려 줄 터이니, 서로 좋은 마음을 가지자”고 달래며 두 처녀는 화해하고 헤어졌다. <삼승할망본풀이>의 ‘꽃 피우기 시함’은 결국 저승으로 데려가는 죽음의 꽃, 띠를 묶어 만든 ‘수레명망악심꽃’과 사람을 살려내는 꽃, 동백꽃으로 생명꽃․번성꽃․환생꽃의 생기게 된 내력과 그 꽃들의 주력(呪力)을 상징하고 있다.

 

▲ 수레멜망악심꽃 꺾음. ⓒ문무병

때문에 굿에서 심방은 동백꽃으로 환자를 살리고, 수레멸망 악심꽃을 제초시켜 환자를 죽음에서 구한다. 결국 심방은 굿을 하여 서천꽃밭의 꽃을 따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며, 그러한 이야기는 여러 신화에 나타나고 있다. <세경 본풀이>에서 자청비는 서천꽃밭의 꽃을 따다가 자기가 죽인 목동신 ‘정이어신정수남이’와 남편인 ‘문도령’을 살려낸다. 서천꽃밭에는 꽃을 지키는 꽃감관 황세곤간이 있었다. 꽃감관은 서천꽃밭에 밤이면 부엉이가 날아와 울어 멸망을 주는데, 부엉이를 잡아 주면 사위를 삼겠다고 하였다.

자청비는 아무도 몰래 노둣돌 위에 옷을 홀랑 벗고 누워 정수남이의 혼령을 불렀다. “정수남아, 혼령이 있거든 부엉이 몸으로 환생하여 원(怨)진 내 가슴에 앉거라.” 부엉이 한 마리가 울면서 날아와 자청비 젖가슴 위에 앉았다. 자청비는 부엉이 두 다리를 꼭 잡고 화살 한 대를 찔러 부엉이를 잡아주고 황세곤간의 막내 사위가 되었다. 자청비는 서천꽃밭에서 살오르는 꽃, 피가 살아 오르는 꽃, 죽은 사람 살아 나는 환생꽃을 따서 꽃을 뿌려 정수남이를 살려 내었다. 그리고 하늘에 있을 때는 죽은 남편 문도령도 서천꽃밭 환생꽃을 따다가 살려내기도 하였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문전본풀이>를 보면, 남선비[門神]의 아들 일곱 형제는 주천강 연화못에 빠져죽은 어머니 여산부인[竈王神]을 살려내기 위하여 서천꽃밭에 가서 열두 가지 생기 오를 꽃, 웃음 웃을 꽃, 말하는 꽃, 오장육부 오를 꽃, 걸음 걸을 꽃, 성화날 꽃, 울음 우를 꽃을 따다 놓고, 송낙막대기로 한번 두 번 연세 번을 때리니, 어머니는 “아이구, 봄잠 너무 잤구나.”하며 와들랭이 일어났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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