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4) 이공본풀이 6

▲ 꽃점. ⓒ문무병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태초에 하늘과 땅이 어떻게 나눠졌느냐 하는 <천지왕 본풀이>에도,

아이를 낳게 하고 길러준다는 삼승할망, 족보를 따져 보면, 저 하늘나라에서 노각성 자부연줄을 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는 명진국의 따님과 미모에다 온갖 능력과 재주는 다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를 낳게 하는 참으로 중요한 해복법을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한 채 동해 용궁에서 쫓겨나 인간세상에 올라 온 동해 용왕의 딸이 명진국의 따님과의 꽃 싸움에 져서, 불쌍하게도 아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인기 없고 배고픈 신으로 전락해버린 저승할망의 이야기를 담은 <삼승할망 본풀이>,

세경 넓은 땅에 오곡의 씨를 뿌려 먹고 입고 살아갈 인연을 만들어주는 신, 그리고 살다가 죽으면 땅에 묻히는 것을 허락해주는 아름답고, 탁월한 힘과 능력을 지닌 여성 영웅신이며, 농경신인 ‘제석할망 자청비’ 이야기 <세경본풀이>,

특히 제주도는 기일제사 때, 조상의 차례보다 먼저 문전제와 조왕제를 지내는 풍속이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온는 문신신앙, 집안의 사업을 번창하게 하고 집안으로 모든 부(富)와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신, 무역 장사의 신이며, 집안을 지키는 문전신(門前神) ‘남선비’와 그의 부인으로서, 맑고 깨끗한 청결의 신이며, 부엌의 불씨를 지켜주는 불의 신이며,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조왕신 ‘여산부인’의 이야기를 다룬 <문전본풀이>에도 서천꽃밭의 ‘꽃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꽃의 담론은 폭이 넓고 깊다. 이공본풀이는 친근감을 갖게 하는 이야기다. ‘할락궁이’와 딸 ‘원강암이’가 서천꽃밭을 지키는 ‘꽃감관’이 되어 벼슬을 살러 이공서천 도산국을 찾아가는 길은 무섭고 서꺼운(두려운) 길이다. 서천꽃밭은 저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은 아름다운 저승이며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어렸을 때 들려주던 할머니의 이야기들, 무서운 꽃감관 ‘황세곤간’이 지키는 서천꽃밭의 꽃을 따와 어머니를 살렸다는 이야기는 많다.

그리고 이 서천꽃밭 이야기인 <이공본풀이>는 제주 사람들의  미학(美學)의 단초로서 지니고 있는 경험적 인식론을 내포하고 있다. 신화는 “무엇이 아름다운가”하는 이야기를 서천꽃밭 꽃을 따다 죽은 사람을 살려낸 이야기로 서사화 하면서, 그 속에 제주인의 문화적 상상력이 창조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 꽃타레듦. ⓒ문무병

사람은 죽는다. 죽는다는 문제는 죽음의 공간인 저승과 삶의 공간인 현실의 대립이다. 그러나 굿을 통하여 대립은 화해로 바뀌며, 화해는 꽃을 통하여 ‘환생의 의미’로 바뀐다. 이공본풀이의 ‘꽃 싸움’은 대립의 이야기이며, 죽음의 문제이지만, 굿판에서 본풀이를 노래하고, 굿을 하여 꽃의 의미를 풀어나가면, 죽음의 문제는 풀리고, 환자는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동백꽃을 들고 춤을 추는 굿은 아름답다. 왜냐면 심방은 서천꽃밭의 생명꽃을 따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굿은 제주사람들의 죽음의 재생의 의식이다. 그리고 본풀이에는 사람들에게 온갖 ‘살의살성(殺意煞性)’을 불러주고, ‘소록[不淨]’을 불러주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레멜망악심꽃’이 나온다. 그것은 굿판에서 띠(억세)를 묶어 만든다.

이 띠로 만든 ‘수레멸망 악심꽃’은 잘 죽지 않고 그야말로 징그럽고 억센 죽음을 상징하는 꽃이다. 제주굿의 또 다른 의미는 이런 악심꽃을 제초하여 불행을 사전에 막고, 나쁜 전상, ‘소록’을 바깥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심방이 굿판에서 “악심꽃을 제초하여 불행을 없앤다.”는 것이다. 꽃을 꺾어[除草] ‘불행과 죽음을 쫓아내는 것’ 또한 제주 사람들이 “꽃의 미학”이다.
 
꽃의 미학은 몇 가지 더 ‘아름다움’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앞에서 살펴본 <천지왕본풀이>에서 ‘꽃 싸움’은 뒤바뀐 세상, 모순된 세상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굿을 통하여 삶과 죽음의 대립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로 환원된다.

신화가 이야기하는 잘못된 이승, 그리고 이승의 인간이 모순된 삶 속에 얻은 사회적 질병으로써의 맺힘[恨]은 굿을 통하여 저승의 맑고 공정한 ‘새로운 질서’로 환원됨으로써 풀린다. 이러한 꽃 이야기는 ‘꽃의 경쟁’으로 대립되는 저승과 이승, 선과 악, 밤과 낮이라는 음양이원의 존재론에 기초하며, 이러한 음양 이원론은 ‘대립’에서 ‘화해’로 가는 신화논리학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서천꽃밭 꽃이야기는 잘못된, 전도된, 모순된 세상을 바르고, 공정하고 새로운 질서의 세계로 환원시키는 변혁의 아름다움을 내포한다.  
 
<삼싱할망 본풀이>에서 ‘꽃의 경쟁’은 두 여인의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아이를 잘 낳고 기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느냐가 문제다. 아름다움은 결국 미모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잉태하는 임신과 포태, 생산과 생식의 능력에 대한 시험이다. 제주인의 ‘아름다움’에는 생산적·생식적인 것을 내포한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그리고 <세경 본풀이>에서 서천꽃밭의 꽃은 먹을 연(緣), 입을 연(緣)을 내어주는 생산활동과 함께 죽은자의 넋과 산 사람의 육체, 삶과 죽음의 조화를 추구하는 생명의 논리학을 내포한다. 세경 땅은 생산활동을 하는 삶의 텃밭이며, 죽은 자들을 ‘엄토감장(埋葬)’하는 음택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생명의 꽃은 죽은 넋을 환생시키기도 하고, 산 사람의 육신을 잠재우기도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꽃의 뿌리’에 대한 확대 담론은 굿을 통하여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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