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녹취록·음원파일 물증 앞에 결국 직위해제…자신과 얽힌 ‘거래설’ 차단 노림수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한 송년모임에서 “내면적 거래”를 운운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한동주 서귀포시장을 전격 경질(직위해제)한 것은 꼬리 자르기 성격이 짙다.

민선 5기 마지막 행정시장으로 기록될 것 같던 한동주 서귀포시장이 30일 전격 경질됐다. 전날 저녁 서귀고 재경동문회 송년행사에서 쏟아낸 발언 때문이다.

<제주의소리>가 단독 보도(한동주 시장, 우근민 제주지사 노골적 지지유도 파문)한 지 15시간 만, 녹취록과 음원파일 등 빼지도박지도 못할 물증을 내민 지 6시간 만에 이뤄진 속전속결 조치다.

제주도는 이날 오후 5시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한동주 시장에 대해 30일자로 직위해제 조치했다”고 밝혔다. 또 직무대리 규칙에 따라 양병식 부시장으로 하여금 직무대리토록 바로 조치했다.

아울러 감찰부서에 발언경위 등을 상세히 조사한 후 공직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행위가 드러날 경우 사법기관 등에 수사의뢰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단순한 직위해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찰을 통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사실이 드러나면 수사의뢰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전 공직자는 내년 선거와 관련해서는 선거개입,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하겠다”이라고 엄포를 놓은 뒤 공직자들에게 도민으로부터 신뢰 받는 공직기강을 확립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우근민 지사의 ‘지시’로 이뤄진 것임을 강조했다.

그 같은 속전속결 조치는 한동주 시장의 ‘내면적 거래’ 발언이 불러올 파장을 크게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근민 지사 입장에서 꽤나 다급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시장의 노골적인 우근민 지사 지지유도 돌출 발언은 29일 오후 7시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2013 재경 서고인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 행사에서 나왔다.

<제주의소리>는 이를 이튿날 새벽 2시44분에 단독 보도했다. 8시간쯤 뒤인 오전 10시51분에는 녹취록 전문과 함께 음원파일까지 공개했다.

<제주의소리> 첫 보도가 나간 뒤 한 시장은 일부 언론을 통해 “어처구니없는 말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이를 보도한 <제주의소리>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 시장의 제주공항 도착 시간에 맞춰 취재에 들어간 <제주의소리> 기자를 보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정치권은 물론 제주사회가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과 시민사회 진영은 ‘현대판 매관매직’으로 규정하며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와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사태가 급박하기 돌아가자 정치9단 우 지사가 빼든 카드는 발 빠른 ‘직위해제’ 조치였다.

우 지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 시장의 발언을 ‘부적절한 발언’으로 뭉뚱그리며 초점을 흐렸다. 하지만 발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우근민 지사가 내년 선거에서 당선돼야 자신도 서귀포시장직을 연임할 수 있다는 취지로 우 지사 지지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

이보다 더 폭발력을 갖는 것은 사실 “내면적 거래를 하고, 이 자리에 왔다”고 한 대목이다. 우 지사가 내년 선거를 이기면 자신을 민선 6기에서도 시장에 연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관권 선거’ 밀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법적인 문제를 떠나 ‘현대판 매관매직’으로 도덕적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우 지사와 한 시장 사이에 ‘내면적 거래’가 있었는지 현재로선 확인한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고위직 공무원이 공식 석상에서 현직 지사에 대한 지지를 노골적으로 유도한 충격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도민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실 우 지사는 민선 5기 제주도지사로 취임한 후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공무원의 선거중립’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심지어 “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바로 공직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공직기강을 잡기 위한 ‘단속용’일 수 있지만 이를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남 얘기가 아니고 자신의 얘기도 될 수 있다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동주 시장의 “내면적 거래” 발언은 우 지사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자신도 ‘공직 퇴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녹취록과 함께 음원파일이라는 확실한 물증이 제시된 마당에 어설프게 대응했다가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서둘러 도민사회를 경악케 한 문제의 발언을 ‘부적적한 발언’으로 뭉뚱그려 포장하고, 한동주 시장을 전격 경질함으로써 사태 조기진화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무엇보다 사건을 유야무야 넘긴다면 ‘공직퇴출’까지 거론했던 과거 자신의 발언은 ‘헛말’이 되고 만다. 신뢰를 중요시하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치명타다. 그렇다고 우 지사와 ‘내면적 거래’를 했다고 한 한동주 시장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서둘러 직위해제 조치를 내리긴 했지만, 자신과의 연관성을 애써 차단하려 했다는 점에서 ‘꼬리 자르기’라는 더욱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당장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우 지사의 분명한 해명과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무리 충복이라지만 ‘돌××’ 아니냐. 선거를 코앞에 두고 악재가 생겼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긴급회의를 갖는 등 발 빠르게 진상파악에 나섰다. 선관위 조사와 검·경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도민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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