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10) 오슬로 上

노르웨이의 북쪽 끝 키르케네스에서 남쪽 끝 오슬로까지 비행시간은 약 2시간 10분정도 걸린다. 오후 2시 오슬로 공항에 도착하여 바렌츠 프록코스트 호텔 데스크 컴퓨터에서 검색하여 찾은 유스호스텔을 찾아가기 위해서 먼저 공항의 안내쎈타로 갔다. 안내쎈타의 나이 지긋한 여인은 내가 검색한 두 개의 유스호스텔 중에 하나가 오슬로 중앙역 근처에서 가까워서 거기로 가는 게 좋겠다면서 공항에서 중앙역까지 바로 가는 열차를 탈 것을 권했다.

덤으로 관광객을 위한 오슬로 가이드북을 한권 얻었다. 직행열차는 공항에서 오슬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중앙역까지 중간에 딱 한번 멈춰서고, 바로 갔는데, 요금이 200크로네(약 4만원)으로 거리에 비하여 꽤 비싼 편이었다. 오슬로 지리를 몰라서 안전하게 가기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모든 결제를 카드로 하다보니 현실감이 떨어지고 습관처럼 긁어댔다. 

열차는 거의 소음이나 흔들림이 없이 빠르고 쾌적하다. 좌석 앞쪽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는 날씨와 오늘의 국제뉴스를 전해주고 있었는데, 이란의 대통령 선거,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시리아의 회담에 이어 북한의 미국에 대한 핵회담 제안을 전하는 자막위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반복하여 내보내고 있었다. 북한뉴스에는 군사퍼레이드 화면이 바늘에 실 가듯이 따라가는 것이 나에게는 마음이 편치 않고, 영 못마땅하다.

그리고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가 잠깐 스쳐지나갔는데, 아마도 오늘 오슬로에서 ‘바냐 아저씨’ 연극 공연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 오슬로에서 체홉의 연극을 보면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말은 못 알아듣겠지만 어쩌면 오래된 옛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르겠고, 분위기만 느끼는 것으로도 감동이 있을 것이다.

채 30분이 안되어 중앙역에 도착했다. 다시 역 근처의 관광안내쎈타에서 내 수첩에 적혀있는 유스호스텔 주소 ‘Sentrum Pensjonat Hostel’ Tollbugata 8을 보여주자 여직원은 길 건너편을 가리키면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비슷한 모양의 오래된 석조건물들이 이름표처럼 붙이고 있는 번호를 세어가며, 거리의 모퉁이를 몇 번씩이나 돌면서 헤맨 끝에 간신히 유스호스텔을 찾아갈 수 있었다.

침대 6개가 있는 방인데도 요금은 이틀치 578크로네. 하루 5만원이 넘는다. 이 정도면 중국에서는 1만원이면 충분하고, 요즘 한창 게스트 하우스가 늘어나는 제주도에서도 2만원이 채 안될텐데. 

방에 들어서자 방 옆에 마련된 주방에서 한 중년 남자가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참자로서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는 만들어진 음식을 들고 와 TV를 크게 켜고는 먹는데 열중하며 새로 온 낯선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집으로 오슬로에 도착하여 유스호스텔까지 무사히 찾아온 소식을 전하고 난 다음, 식사를 마친 그에게로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그는 별 관심없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건너다보며, 말했다.
  ‘불가리아에서 왔고, 이곳에 3개월째 머물고 있다. 이곳의 일이 몹시 힘들다.’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TV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배정받은 침대 옆에 무거운 배낭을 놓아두고, 여권, 지갑, 그리고 카메라를 넣은 복대만 허리에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천천히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 주변은 오슬로 시의 중심가로 중요한 관청과 고급 호텔들이 밀집해 있고, 중앙역에서 이어진 길에는 국회의사당과 국립극장 그리고 왕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과 공원, 호텔앞의 노천 까페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있었다.

국립극장 옆의 노천 까페에 자리를 잡고앉아 느릿느릿 맥주를 한잔 마시고 난 즈음, 검은색 정장차림의 학생들이 악기를 들고 카페 바로 옆의 정자로 모여들었다. 예고된 연주였는지 모르겠는데, 주변의 공원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어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트럼펫, 트럼본, 호른 같은 금관악기로만 구성된 윈드 앙상블의 연주회였다. 클래식과 재즈가 어우러진 곡들이 연주되었는데, 야외연주회인 만큼 그다지 처지지 않게 때론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곡들로 선곡된 흥겨운 연주회였다.

국립극장은 굳게 문이 닫혀있었고, ‘바냐 아저씨’ 연극은 어디서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뒤 공원의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신문을 주워서 극장을 확인 했을 때는 저녁 8시가 넘었고, 연극은 7시 30분 시작이었다.

▲ 오슬로 국립극장 앞 정자에서 벌어진 관악 연주회 모습. ⓒ양기혁

6월 17일 (월요일)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이며, 현대 유럽회화의 개척자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흔히 모던니즘과 표현주의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며, 그가 자라난 오슬로(당시의 이름은 크리스티니아)에서는 보헤미안 무브먼트(Bohemian movement, 19세기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부르조아 주류 문화에 저항하여 일어난 급진적인 문학 예술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884년에서 1909년까지 오랜 기간 파리와 베를린에서 지냈는데, 그 곳에서 그는 많은 세계적인 예술가와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불안과 질시, 사랑과 죽음같은 심리적, 감정적인 테마들을 다룸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절규(The Scream)’은 핏빛 색깔과 물결치는 선들이 배경을 이룬 가운데 인간의 본질적인 불안을 가면같은 얼굴속에 표현한 그의 대표작이다.”

내 번역이 거칠기는 하지만 영어로 된 오슬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뭉크를 소개한 내용이다. 올해는 뭉크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로 ‘MUNCH 150’이라는 제목으로 6월부터 9월까지 뭉크 작품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고, 시내 곳곳에 포스터와 배너 광고가 나부끼고 있었다. 포스터와 배너는 뭉크의 대표작들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작가 자신의 만년의 초상화와, 뭉크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절규’,  ‘마돈나’, ‘사춘기’ 그리고 바렌츠 프록코스트 호텔에서 첫날밤 묵었던 방 침대 머리맡의 벽에 걸려있었던 그림 Amour& Psyche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제목이 ‘Cupid & Psyche’로 되어있었다.

▲ 뭉크의 초상화. ⓒ양기혁

 

▲ 마돈나(Maddona, 1893). ⓒ양기혁

 

▲ 절규(The scream, 1890). ⓒ양기혁

 

▲ 사춘기(Puberty, 1894). ⓒ양기혁

아침에 어제 갔던 중앙역 근처의 관광안내쎈타로 가서  오슬로 가이드 북에서 권하는 대로 오슬로 패스 1일 이용권을 샀다. 270크로네. 버스, 트램, 지하철 같은 공공교통수단과 박물관, 미술관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안내쎈타에서 가까운 지하철을 타고 뭉크 박물관으로 향했다. 전시회는 국립 미술관과 뭉크박물관 두 곳에서 나누어 하고 있었는데, 40대 이후의 만년의 작품 등을 전시하는 뭉크박물관만 보기로 작정했다. 뭉크박물관은 중앙역에서 두정거장만 가면 되었다. 노르웨이 글자를 알 수 없었지만 지하철 약도를 보고, 대충 눈치로 사람들을 따라 내려서 조금 걸어가니 주택가 주변의 공원에 아담한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1인 95크로네(약 2만원)인데 오슬로 패스를 제시하니 무료통과다. 전시실로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뭉크의 일대기가 영화로 상영되는 것을 봐야했다. 노르웨이어로 말하며, 간간이 영어자막이 나오는 흑백영화는 담백한 화면이면서도 뭉크의 생애가 보여주는 불안과 격정 등을 음울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실 안에는 곳곳에 정장을 한 경비원들이 삼엄하게 지켜보고 있었고, 일체의 사진촬영이 금지되었다.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전시실 밖의 매장에서 간단한 기념품을 몇 가지 사고, 박물관 앞 노천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신 다음 일어서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올 때와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방향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적이 없는 한산한 주택가를 지나 사람들이 붐비는 상가가 밀집한 좁은 골목의 노천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하기도 하면서 오슬로의 사람들과 시내 분위기에 젖어들어갔다. / 양기혁

 

▲ 뭉크 박물관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노천 카페가 있는 거리. ⓒ양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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