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5) 삼공본풀이 1

 

▲ ⓒ문무병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신화는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어떻게 살게 되었느냐를 설명한다. 우리 제주의 무속신화는 “천지지간 만물 중에 사람밖에 더 있느냐”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이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은 사람의 삶과 죽음을 해석하는 시간과 공간일 뿐이다. 천지창조나 서천꽃밭 이야기, 수수께끼 싸움, 꽃가꾸기 경쟁 등 선(善)/악(惡), 우(優)/열(劣)을 가리는 이원 대립 형식 화소들은 자연의 이치를 ‘풀이’하는 식물성의 정적인 ‘이야기’로 그러한 신화는 형식과 관념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론적 관념론이 아닌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 ‘제 3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무대 위에 삶과 죽음을 펼친다. 그중 삶의 무대는 ‘삼(三)의 원리’를 풀이하는 삼공본풀이의 세계다.

삼공본풀이는 이승의 생활의 이야기이며, 현실의 이야기다. 현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은 인간 가까이 내려와서 존재한다. 하늘(天)은 윗마을이고, 땅(地)은 아랫마을이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흉년이 들었다. 하늘과 땅의 흉년, 배고픔과 가난이라는 현실의 문제로 전개되는 것이 전상신 신화인 ‘삼공 본풀이’이다. 굿할 때, 보통 산 사람을 생인(生人) 죽은 사람을 귀신(鬼神)이라 한다.  ‘생인’이란 뜻은 ‘살아있는 사람’이며, ‘살아있다’의 명사형이 ‘사람’이라면, 삼공본풀이는 사람의 생활[職業], 인생의 원리, 삶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본풀이인 것이다.   

삼공본풀이는 전상신 가믄장아기의 신화다. 전상신은 사람의 직업을 관장하는 운명의 신이다. 그리고 ‘전상’이란 ‘전생(前生)의 업보(業報)’라는 데서 유래한다. 이는 불교의 연기설과도 관련이 깊다. 현실의 삶은 전생과 후생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이며, 과거에 쌓은 인연이 현생의 업으로 이어진 것이 ‘전상’이란 뜻이다. ‘전상’은 실제로 굿판에서는 팔자(八字)·직업(職業)·버릇을 뜻하는 듯한데, 거기에는 운명적인, 타고난 업보(業報)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나쁜 전상’이란 평상시와는 달리 마구 술을 먹거나 해괴한 짓을 하여 일을 망치거나 가산을 탕진하는 행위나 그러한 행위를 일으키게 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이 전상이 붙으면, 그 행위를 버릴 레야 버릴 수가 없다.

도둑질을 하여 몇 번이고 감옥엘 출입해도 역시 도둑질 할 마음을 일으키고, 놀음을 시작하면 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 다 전상 때문이라 하며, 나아가 농업, 공업, 상업 등 갖가지 직업을 택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도 역시 전상 때문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상’이란 젖어있는 ‘습관’ 또는 ‘버릇’이며,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생으로부터 타고난 ‘업보’인 것이다. 

꽃의 신화 이공본풀이가 불교의 <안락국태자경>의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는 것처럼 삼공본풀이는 불교의 연기설화와 함께, 말녀발복설화, 온달 설화, 서동 설화, 심청 설화, 개안 설화 등 근원 설화의 내용들을 차용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형식상 제주설화의 독특한 3단화법, 내용상으로는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유교적 봉건사회의 허위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직업의 신 ‘가믄장아기’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제주 여성의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 ⓒ문무병

옛날 윗 마을에는 강이영성이서불(이하 강이영성)이라는 남자 거지가 살고, 아랫 마을에는 홍은소천궁에궁전궁납(이하 홍은소천)이라는 여자 거지가 살았다.

두 마을에 흉년이 들었으나, 다른 마을에는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만 듣고 윗마을에서는 아랫마을로, 아랫마을에서는 윗마을로 얻어먹으러 가는 도중 두 거지는 서로 만나 부부가 되었고, 얼마 없어 딸아기를 낳았다. 위․아랫마을 사람들은 거지 부부를 동정하여 정성으로 은그릇에 죽을 쑤어 먹였다. 이 아이를 ‘은장 아기’라 불렀다.

또 딸아기를 낳았다.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처음만은 못했으나 놋그릇에 밥을 해다 키워 주었다. 이 아이를 ‘놋장 아기’라 불렀다. 또 딸아기를 낳았다.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기는 했으나 성의는 식어 있었다. 나무 바가지에 밥을 해다 먹여 키워 주었기 때문에 이 아이를 ‘가믄장 아기’라 불렀다.

셋째 딸을 낳으면서 운이 틔어 기와집에 풍경을 달고 부자로 살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하늘과 땅, 음과 양, 양극의 대립은 가난(-)과 흉년(-)이다. 그러나 윗 마을의 거지와 아랫마을의 거지는 서로 만나 결혼하여 세 딸을 낳고 부자가 되었다. 천지 음양의 조화와 남녀의 성적 결합과 세 딸의 출생이 자연히 거지부부를 부자로 만들고 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은장 아기를 낳았을 때는 위․아래 마을[天地] 사람들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았다. 가믄장아기를 낳았을 때는 마을 사람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의타적인 삶 ‘가난’이 자립적인 삶 ‘부(富)’로  역전될 수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