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7) 삼공본풀이 3

 

   

모든 게 다 원점으로 돌아가면 아무 것도 없다. 어둠은 무명(無明)이며, 무지(無知)이며 어리석음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해 드리려고 어부들에게 몸을 파는 것이 심청이의 업이라면, 세상 물정(現實)을 모르는 ‘눈 뜬 장님’을 업으로 가지고 태어난 자가 심청이의 아버지 심봉사다.

<삼공본풀이>의 화소 중에 장님이 눈을 뜨는 이야기, 개안설화(開眼說話)는 “행복[業]이란 무엇일까?”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화두이다. 본풀이는 장님[無明 ; 깨닫지 못함]에서 개안[知慧 ; 깨달음]할 때까지의 이야기와 굴러 들어온 복을 쫓아버렸기 때문에 다시 거지가 되었다는 인과응보의 이야기를 ‘전상’, 즉 ‘전생의 인연’으로 설정하고 있다.

거지 부부가 결혼을 하니 주위에서 도움을 주었고, 먹을 연(緣) 입을 연(緣)이 생겨나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가믄장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분명히 ‘굴러 들어온 복(福)’인데, 그것도 모르고 복을 내쫓았으니, 다시 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행복이란 잠시 잠들고 있는 동안에 왔다가 가는 것일까?” 딸을 잃고, 문지방에 넘어져 장님이 되고, 거지가 된 부부가 다시 깨어나 내 딸 가믄장아기가 곁에 있음을 깨달을 때까지는 장님으로 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지만 잠을 자는 것과 같다.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삼공본풀이>에 의하면, 굴러 들어온 복이 가믄장아기임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거지 부부를 장님으로 그리고 있으며, 사람은 전생의 인연에 따라 직업과 팔자를 타고난다는 불교의 연기설화를 빌어, 직업이란 것도 결국 선업(善業)이든 악업(惡業)이든 전생의 인연에 따른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신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익을 쫓아 악업을 지으면, 벌을 주고 재앙을 내리는 주력(呪力)을 삼공신 ‘가믄장아기’가 지니고 있다. 선업은 ‘좋은 전상’, 악업은 ‘나쁜 전상’이라 하며, 이러한 업에 따라 삼공신이 내리는 재앙을 ‘록[邪]’이라 한다. 이러한 내용을 삼공본풀이에서 살펴보면, 당장 나가라는 말을 듣고, 가믄장아기가 하직 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사라지자 부부는 막내딸이 복둥인 줄도 모르고 쫓아버린 뒤, 마음이 섭섭하여 다시 불러들이려 하였다.

▲ 봉사잔치에 온 장님부부 강이영성과 홍은소천.

맏딸을 불렀다. “밖에 나가 동생에게 식은 밥에 물을 말아 요기라도 하고 가라 이르라”고 시켰다. 그러나 은장아기는 동생을 남겨 이로울 게 없다 생각하고, “설운 동생아 어서 가라. 아버지 어머니가 널 때리러 온단다.”고 하였다. 가믄장아기는 언니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큰 형님은 노둣돌 아래 내려서서 청지네로 환생하십서” 이 말이 떨어져 노둣돌 아래 내려서니 은장아기는 청지네가 되어 노둣돌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부모는 가믄장 아기를 기다렸으나 은장아기까지 들어오지 않으니, 둘쨋 딸을 불렀다. 놋장아기도 시기심이 나서 두엄 위에 올라서서 “어머니, 아버지가 때리러 오니 빨리 달아납서”하였다. 놋장 아기의 고약한 마음을 아는 가믄장아기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두엄 아래 내려서거든 버섯 몸으로나 환생하라”하고 중얼거리니. 놋장아기가 두엄 아래 내려서니 버섯이 되어 두엄에 뿌리를 박고 서 버렸다. 부부는 놋장아기까지 소식이 없자 얼른 밖으로 나오다가 문턱에 눈이 부딪혀 봉사가 되어 버렸다.

그날부터 부부는 가만히 앉아 먹고 쓰다 보니 가산을 탕진하여 다시 거지가 되었다. ‘굴러들어 온 복’을 내쫓아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윗마을의 하늘 거지 강이영성과 아랫마을의 땅 거지 홍은소천은 사람이 중한 줄 모르고 그들의 복을 쫓아버렸기 때문에 다시 원래의 거지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제 “누구 덕에 사느냐?”를 깨달을 때까지는 ‘장님’으로 살아가야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거지로 장님으로 살아도 좋은 것인지 모르지만, 거지이고 장님이란 것이 ‘나쁜 정상’이며, 신이 내린 ‘소록’이라면. 이는 물리쳐야 할 것이다. 그들이 지은 악업에따라 은장아기는 청지네, 놋장아기는 버섯의 몸으로 환생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님이 되었다면, 선업을 짓고, 선업에 따라 복을 받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아닌가.

따라서 전상신 가믄장아기 신화는 지혜를 얻는 신화, “굴러온 복이 무엇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푸는 신화이다. 그대는 누구 덕에 사는가. 심방들은 가끔 굿을 할 때마다. “신의 덕에 먹고, 신의 덕에 입고, 신의 덕에 행동발신합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팔자를 그르쳐 심방이 되었다”고 말한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심방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며, 이는 직업은 팔자라는 운명론이며, 일의 전문성을 뜻한다. 심방이 운명적으로 선택한 전문적인 직업이라면, 시인의 운명론은 “시를 쓰기 때문에 먹고, 입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성은 ‘좋은 전상’이다. 그런데 “술을 퍼마시고, 각시를 두드려 패고, 패가망신한다.”면 그것은 ‘나쁜 전상’인 것이다. ‘좋은 전상’은 타고난 재주, 뛰어난 전문성을 뜻한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