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발행인 칼럼]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 세우는 한해 되길...
 
동양철학의  '바코드'라 할 수 있는  60갑자(六甲)에 있어  갑의 상징성은 대단하다.

갑은 시작을 의미하고, 으뜸을 상징하며 또 변화를 의미한다.

시작을 의미함에 있어 갑은 새벽을 의미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상징한다. 새로운 10년의 출발을 의미하며, 오방중 해뜨는 동방을, 오방색 중에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색(靑色)을 나타낸다.

그러기에 새로운 십년의 시작인  갑오년 새해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유별나다.
 
관심사의 으뜸단어는 역시 4년만에 열리는 지방선거 일 터.

하지만 어쩐지 마음들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선거 때면 으레 겪게되는 트라우마를 의식해서다.
 
민주주의 선거에 있어 갑은 분명 유권자인 국민이고, 을은 후보자들임이 분명하다. 주권재민의 대원칙하에 있는 풀뿌리 민주선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선거권자인 주민이 갑이며, 피선거권자는 그게 도지사이든 도의원이든 을의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 갑과 을의 관계가 언젠가부터 뒤바뀌어 있다.
 
갑은 을을 쫓아 줄서기에 익숙해져 있고, 을은 아예 이들의 줄세우기를 당연시하고 있다.

줄서기, 줄세우기는 당연 편가르기가 됐고, 서로의 이해를 논하는 파당으로 변질되어 왔다.

뒤늦게 주객이 전도되어 있음을 지각한 이들도 있지만 별다른 행동을 하기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기엔 이미 소금에 찌든 생선이 되어 바다로 돌아갈 수 없거나, 처지가 처지인 만큼 줄에서 이탈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의(情宜)를 앞세운 익숙한 얼굴에, 당근과 채찍을 든 을을 보면 달리 행동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미 내가 잠시 맡긴 권력 앞에 더이상 갑임을 주장할 엄두가 안 날 것이다. 잠시 맡긴 내 권력이 세월이 오래되면서 네 권력이 되버려서다.

사실이 그렇다. 갑의 권리가 장기임대되면서 을은 어느새 갑들의 권한을 독과점해 버렸다. 이같은 지방정치의 독과점 체제는 4반세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쯤 되면 신성한 주민주권은 이미 박제가 돼버린다.
 
지방정치의 독과점체제 내에서 공정을 담보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이 불공정해지면서 패거리가 생겨나고 그들 패거리간 대립과 갈등은 분열을 조장한다. 패거리의 일부는 자리를 내걸기도 하고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 선량한 주민들은 더이상 안중에 없다. 새롭게 을에서 갑이 된 권력자만 바라다 볼 뿐이다. 이쯤되면 지방자치의 근간이 크게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주민 몫으로 되돌아온다.  
 
골짜기를 파서 언덕을 높인다(掘壑而附邱)고 했던가.

이들 독과점자들에게 있어 을의 처지가 된 주민들은 그들의 언덕을 높이는 데 동원되는 정치노동자.선거노예에 불과하다. 서로 골짜기를 파내는데 등 떠밀리고, 골짜기가 깊어갈수록 하늘이 좁아지고 멀어질 따름이다. 반면에 새로운 갑은 한없이 높아지는 언덕에 기대어 상대를 노려보기에 여념이 없다.

주권자인 주민을 골짜기로 밀어 넣고, 하늘을 가리는 것은 그들로부터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공무담임자들이 할 도리는 아니다.

분명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모든 자치권력 역시 주민들로부터 나온다. 그럼에도 작금 주인이 주인행세를 못하고, 그들의 공복이 되려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시대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주객이 전도된 오늘의 상황을 혹자는  '봉건주의' 부활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장기간에 걸친 특정인들의 지방정치 독과점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결코 곱지않다. 이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한다. 갑과 을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불공정한 게임을 유발하는 독과점 상태를 풀어 헤쳐야 한다. 골짜기로 밀어 넣은 선거노예들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주권재민의 지방자치가 바로서기가 힘겹다.
 
결자해지다. 독점하고 과점한 자들이 풀고 내려 놓을 것은 내려 놔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인 주민들의 힘겨운 저항에 의한 것보다는 훨씬 아름답다. 경험칙에 비춰서도 그러하지 않은가.
 
옛말에 풀숲에 병장기를 몰래 숨기는 수단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면 삼세불흥(三世不興)이라고 한다.

그럴 일이 없겠지만 선거제도가 민주의 꽃이라고 하면서도 뒤끝이 언제나 안좋았던 선례가 있어 하는 말이다.

▲ 고홍철 제주의소리 대표이사·발행인

이제 새로운 10년을 선도할 희망의 한해가 밝았다.

선거의 해, 술수의 정치보다는 정직한 정치가 새롭게 시작되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천간의 으뜸인 갑년인 만큼 지방자치의 으뜸가치인 주민주권이 회복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권재민에 터잡은 풀뿌리 민주의 정체성을 찾아 지방자치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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