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의 숨, 쉼] 인상(人相) 아닌 인상(印象) 이야기

새해를 맞아 거울을 보자.
참 낯선 얼굴이 건너편에 있을 것이다.
매일 내 몸의 가장 윗부분에 떡하니 걸쳐놓고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저 건너편의 나는 익숙하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날마다 씻고 단장하는 나의 얼굴을 차분히 바라본 적이 있었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인상(人相)만 보았지 인상(印象)을 보았던 적이 있었나?

지난해 가을 제주출신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이 전국을 점령했다. 그 여세를 몰아 영화는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관상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더불어 이익을 본 곳은 뜻밖에도 성형외과였다. 관상 성형의 열풍이 분 것이다. 성형 수술을 통해 얼굴이 바뀌면 자신의 운명이나 미래가 바뀐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신조어가 ‘관상 성형’이다.

사실 관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사실 꽤 오래되었다. 앞날을 미리 알고 싶은 것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인간이 늘 꾸는 꿈. 그래서 얼굴을 보고 길흉화복을 읽는 관상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관심선 안에 있다.

그런데 과연 관상이 사람의 삶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
관상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때론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양의 관상학은 기원전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친구를 사귀거나 제자를 뽑을 때 관상을 살폈다는 피타고라스가 창시자라는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서양의 관상학은 인상(人相)의 차이를 사람들의 지적 능력의 차이로 연결하며 ‘인종주의’의 근거로 삼는 경우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나라에도 관상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꼬집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관상을 잘 보는 어떤 사람이 한 선비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의 관상은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응당 황제가 될 것이오”라고 하였다. 선비는 이 말을 들은 뒤로부터 행실과 학업을 닦지 않고 빈둥빈둥 놀면서 절도 없이 생활하며 황제의 자리에 오래지 않아 이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은 곤궁하여 굶어 죽게 되었는데, 죽음에 임하여 그의 처에게 이르기를, “짐이 장차 붕어하게 되었으니 황후는 태자를 불러와서 유조를 듣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참으로 포복절도할 일이지만 또한 세상의 경계가 될 만하다.

안정복의〈호유잡록〉중에서 
김영봉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가 서울신문에 쓴 글 관상보다 심상에서 재인용

그렇다고 관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허영만씨의 인기 만화 <꼴>의 내용을 감수한 신수원씨(관상학자)는 그가 지은 책 <꼴 관상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고난 운명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50% 정도다. 나머지 50%의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며 삶의 묘미라고.’

여기서 타고난 운명이 인상(人相)이라면 나머지 50%의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 인상(印相)아닐까.
(국어사전에서는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뜻을 가진 인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人相 : 사람 얼굴의 생김새. 또는 그 얼굴의 근육이나 눈살 따위.
印象: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했을 때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느낌이나 그 작용)

나의 생각이므로 학문적 근거는 들 수 없지만 반백년 살아온 삶의 여정을 돌아볼 때 난 印象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印象은 지나온 삶의 모양새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래서 금은보석으로 치장하고 주름 없이 팽팽한 피부를 자랑하지만 가득한 욕심이 느껴지는 사람보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온화한 성품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이라고 얘기한다.
 
人相이야 타고난 것이므로 어찌할 수 없지만 행복으로 가는 길과 연결된 印象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난 청마의 해, 말의 해... 좋은 말을 하고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혹시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에서 요술 지팡이나 요술 봉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던 ‘수리 수리 마수리’라는 말을 기억하시는가. 그리고 그 수리 수리 마수리가 천수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에서 나온 것임을 아는가? (인터넷 유저 편집 백과사전 엔하위키 미러 참고)

입으로 만드는 업(業)을 깨끗하게 하는 진실한 말씀이란  뜻을 가진 정구업 진언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이다.

들어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말을 하며, 거절하는 말도 부드럽게 하며, 남의 상처를 쑤시는 말은 하지 않으며, 나 보다 잘난 사람은 진심으로 잘 났다고 칭찬하는 말을 하며 구업(口業)을 정(淨)한다면 혹시 정말 요술처럼 우리의 삶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거울을 보자.
그리고 눈을 감자.
조용히 그려보자.
지금 나의 인상은... 어떨지. 

▲ 바람섬(홍경희). ⓒ제주의소리

좋은 인상을 갖기 위해 해야 할 것은 그 선택의 종류와 방향은 각자의 몫이다.

덧붙임: 모쪼록 올 한해 모두 좋은 말을 하고 말조심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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