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청구 증인 "아니라고 할 때마다 구타당했다"
경찰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쇠 일관

조작간첩 혐의로 무려 1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희철씨에 대한 3번째 심리가 열렸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조한창 수석부장판사)는 16일 201호 법정에서 조작간첩 강희철씨에 대한 '재심개시 결정을 위한 심리절차'를 개최했다.

3차 심리에는 강희철씨 주변 인물과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이 증인심문이 있었다.

# 당시 집주인, "강희철씨는 아내가 해산하기 전에 경찰에 끌려갔다"

첫 증언자는 강씨가 1986년 경찰에 의해 체포됐을 당시 세들어 살았던 집주인 고모씨.

교사였던 고씨는 "강씨가 1986년 신구간에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 우리 집으로 이사왔었다"며 "부인이 해산(5월11일)하기 며칠전부터 강씨가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 시어머니로부터 경찰에 의해 잡혀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고씨는 "한참 후 경찰과 함께 왔다 갔었다는 말을 들었고, 그 이후로는 강씨를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강희철씨는 대공분실 고문으로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무조건 구타"

밀항한 후 일본에서 같이 프레스공장에서 일했던 박모씨는 "일본에서는 7~8개월간 함께 일을 해 왔었기 때문에 강씨를 잘 알고 있다"며 "81년 7월 귀국 후 조천읍 북촌리에서 계속 살아오고 있고, 강씨가 경찰에 검거되기 전에 2~3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강씨가 구속된 후 86년 7~8월 사이에 제주시 광양로터리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2박3일간 경찰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며 "경찰에게 강씨와 관련해 '조총련계' 연루 등에 집중 조사를 받았고 '아니다'라고 답변할 때마다 폭력을 휘둘렀다"고 당시 살벌했던 상황을 토로했다.

이어 박씨는 "대공분실에서 강씨와 대질심문을 받았는데 고문 등으로 '사람 꼴이 아니'라고 느꼈다"며 "약자는 이렇게 죽는구나"라며 죽음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검찰은 "혐의가 없다면 왜 집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자 박씨는 "집에 보내달라고 할 정도의 분위기가 아니였고, 무조건 구타했었다"며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도 했다"고 밝혔다.

초등학교.중학교 동창인 송모씨는 "83년 군 제대후 강씨를 만났다"며 "강씨와 낚시도 함께 다니고 자주 어울렸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경찰 3명이 와서 강씨를 속칭 '하얀집'으로 불리는 대공분실로 끌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며 "다른 친구인 고모씨와 조사를 받았고, 그날 바로 나왔다"고 말했다.

송씨는 "당시 동네에서는 '간첩으로 잡혀갔다'는 말이 나돌았다"며 "경찰로부터도 '조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하지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작은 아버지인 강모씨는 "조카 며느리가 만삭이 됐을 4월 중순경에 조카가 체포됐다"며 "조카가 잡혀간 후에 나도 5~6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 작은 아버지, "똑바로 안하면 엮어버린다"…"변호사 선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작은 아버지는 경찰의 불법 구금 사실을 남김없이 밝히기도 했다.

강씨는 "조카가 잡힌 후 구속통보는 한참 후에 나왔다"며 "통지후 면회를 하러 교도소에 갔는데 간수가 이상한 곳에 전화를 했고, 나를 바꿔준 후 '뭐하러 면회갔느냐' '이쪽으로 와라'라고 말해 간 곳이 대공분실로 수의도 안입고 일반옷을 입고 있었다"고 밝혔다.

통상 구속되면 교도소 유치장에 있어야 되는 것이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강씨를 대공분실에서 불법감금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강씨는 "경찰에서 5~6차례 조사받는 동안 신체적인 고문이나 폭력은 없었지만 폭언과 욕설 등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며 "조카에 대해 얘기할 때에도 '똑바로 안하면 너까지 엮어 넣어버린다'고 위협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강씨는 "일본에 사는 사촌누나들이 선임료를 내겠다고 해 조카의 재판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했지만 경찰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마라' '변호사를 선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며 "당시 사촌누나들도 경찰의 위협에 겁나서 일본으로 돌아가버렸다"고 진술했다.

# 당시 경찰,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기억없다"…모르쇠 일관

이날 심리에서 당시 경찰이었던 좌모씨가 증언자로 나섰지만 '모르쇠'로 일관했다.

좌씨는 "강씨의 조사과정에서 글씨를 잘쓰기 때문에 주로 '진술서'나 '조서'를 썼다"며 "하지만 연행과정에서 내가 참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씨는 1986년 4월28일 연행당할 때 좌씨가 함께 했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판사 심문에서 좌씨는 "조사방법에서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할 수 있는 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조사가 며칠이나 됐느지도 뚜렷하고 확실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좌씨는 "당시 계급이 순경이었기 때문에 수사요원 중 막내였다"며 "구체적인 사실은 나까지 전달되지 않았다"고 회피했다.

하지만 좌씨는 당시 공안분실에서 근무하던 동료들은 또렷히 기억했으며, 내용도 대부분 상관에게 넘겼다.

좌씨는 현장조사도 "기억나지 않는다", 구속영장 청구도 "확실한 기억없다", 포상금 5000만원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변호인측이 당시 좌씨가 작성한 6회 진술조서를 내보이며 답변을 유도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 검찰, '재심청구권' 검토중…"검찰 수뇌부의 승인있어야", 전향적 모습

검찰은 이날 심리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재심청구권은 피해자와 검찰이 갖고 있는 권리다.

검찰은 "정확한 사건 파악을 위해서 검찰 자체의 재심청구권을 요청할 지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3월13일 4차 심리 기일을 정하고, 증인으로 당시 수사경찰관을 다수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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