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 칼럼> 일흔을 넘겨서야 겨우 알게된 진리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감사와 은혜 속에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은혜를 들라하면 첫째는 부모님의 은혜, 둘째는 고향에 대한 은혜, 셋째는 인연에 대한 은혜이다. 이 세 가지 감사와 은혜의 새싹은 어머니의 젖 속에서 어렸을 적 뛰놀던 고향의 뒷동산에서 그리고 초등학교 스승님의 가르침 속에서 움튼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 있다. “신세 잘 갚으라, 절대 배반하지 말고 누구와도 원수 지지 말라”이다. 결초보은(結草報恩)과 배은망덕(背恩忘德)을 강조한 훈계이다. 전자는 죽은 뒤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으라는 뜻이고 후자는 남에게 입은 은덕은 절대로 배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것을 잘 지키지 못하고 어느새 70을 넘겼다. 세 가지 후회로 남는다.

첫 번째 후회는 부모은혜에 대한 후회이다. 부모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넓다는 사실을 이르고 보은(報恩)을 권장한 경전이 있다. 바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다. 중국 당나라 초기에 간행된 것으로서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 3말 8되의 응혈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를 먹인다. 쓰면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먹이신다. 자식을 위해 나쁜 일이라도  마다 안하신다. 잘나거나 못나거나 이 세상 어머니들은 버선발로 뛰어나와 날 맞아 준다. 이러한 은혜를 갚으려니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지 38년이고 어머니는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두 번째는 고향에 대한 은혜와 후회이다. 언제나 고향의 품속은 따뜻함, 포근함 그리움, 설렘, 그리고 기다림 그 자체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고향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젊었을 때는 미래로 세계로 떠돌게 된다. 삶이 녹록치 않아 술잔의 절반은 눈물이고 절반은 한숨이라 고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낙엽이 다 떨어진 후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잎새가 다 떨어진 나무더러 헛살았다고 하겠는가, 뿌리가 썩은 고목더러 잘못 살았다고 하겠는가, 고향 뒷동산을 누가 지키며 살았는가? 이 물음에는 솔직히 자신 없다. 그래도 고향은 우리들을 버리지 않는다. 여우도 죽을 때는 제 살던 구멍을 향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죽어 뼈 한 줌이라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 아니겠는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중략-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노래처럼  내가 태어났고, 초등학교 소꿉친구들과 뛰 놀던 뒷동산, 부모님 묘가 있으며 흙냄새 그리운 고향 땅이다 어릴 때 멱감던  엉물, 고드물, 생이물 -- 더러는 매립되어 없어 졌지만 아직도 졸졸 흐른다. 역사가 서린  만세동산이며 연북정, 그리고 개낭개 바근머르, 대추낭골 봉숭아꽃 살구꽃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세 번째는 인연에 대한 은혜와 후회이다. 인연이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깝게는 학교동창, 직장동료, 친목회원들은 물론이거니와 잠깐 옷자락을 스쳐도 인연이라고 페이스북, 트위터 접속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이러한 수많은 인연의 끈을 감사한 마음으로 한올 한올 엮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 김호성 전 제주도 행정부지사·수필가

이러한 크고 작은 인연들을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잘 관리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한 인연은 전생 현생 내생까지 연기(緣起)되고 윤회(輪廻)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짐승처럼 살면 그 업보로 내생에는 쥐나 개나 뱀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은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꿈꾸는 자의 것이다”라고 했다.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 부모님 은혜에 사무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인연들을 기억하면서 철드는 것이 아닌가. 70을 넘어서야 이러한 진리를 겨우 알게 된다. 젊었을 때는 이러한 것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한 가지를 더 남긴다. / 김호성 전 제주도 행정부지사·수필가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