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100일 넘어…노무현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

최근 오랜 단식에 탈진해서 사경을 헤매는 지율스님의 모습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님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스님의 자연과 생명을 향한 깊은 사랑에 숙연해질 뿐만 아니라, 100일을 넘는 단식을 가능케 하는 초인적인 능력에 경외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스님의 단식을 아주 불순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무리들도 적잖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님을 '국책사업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나 '타협을 모르는 근본주의자'로 매도하는 자들이 그들인데, 이들이 혹시라도 자신들의 시선이 국가나 정부의 영광에 기여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입니다.

인두겁을 쓰는 동안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존귀한 생명 앞에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충성이니 애국이니 하는 것들도 사람이고서야 가능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가지 더 실망스러운 일은 사경을 헤매는 스님에 대해 현 정부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도 스님이나 천성산 터널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던 그간은 '약 15년 전 노태우 정부 시절에 입안되어 추진된 정책을 현 정부가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초 고속전철 사업이 입안될 당시 노무현 대통령께서 속했던 민주당은 경부고속전철 사업을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 정부 책임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의 스님의 자취를 되짚어 볼 기회가 있어서 살펴보니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후보 시절에 이미 천성산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해 놓고, 당선되고 나니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득하게 멀기 만해서 영영 우리 곁에 다시는 서주지 않을 것 같은 당신이지만 이미 강을 건너버린 당신이지만 기다림은 우리 몫이기에,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놓고 간 당신은 "나는 부산 사람으로 내 고향의 정기를 끊는 일을 할 수 없다. 조상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 할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을 잊고 있는 당신은 부처님 앞에 발원하며 "자연환경 수호를 위해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노선을 전면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며 불교계의 자율성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공약하셨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몫이지만 기다림의 기억을 지워버린 당신은 지난 겨울 노상에서 단식중인 한 비구니의 손을 잡고 "대통령의 뜻을 믿어 달라, 백지화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 지율스님의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일부(2003. 11.12)

▲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불교 관련자들을 찾아가 의견을 듣는 모습입니다.

ⓒ 천성산을 지켜주세요 홈페이지

난 이 편지를 보면서 스님께서 느꼈을 그간의 섭섭함을 생각하노라니 내가 오히려 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참여정부에 속한 모든 분들께 초심을 확인하시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2002년 12월 19일의 승리가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이는 비단 노무현 후부 혼자의 승리가 아니라, 이념과 냉전의 시대에서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염원하는 평화세력의 승리였고, 효순이 미순이를 너무나도 억울하게 보낸데 대해 한이 맺힌 이 땅의 양심세력의 승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이제 와서 과거의 약속을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이것은 역사가 현 정부에 부여한 과제를 스스로 방기하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는 어떠한 평화애호세력도 대중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과오를 남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성산 터널에 대한 문제는 더 전문적인 식견과 예산들을 감안해야 한다 치더라도 노 대통령께서는 본인이 대통령 후보 시절 천성산을 직접 찾아가서 스님들에게 지지를 구했던 것처럼 지율스님을 직접 찾아가서 스님 앞에 용서와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천성산은 여전히 아프고 그를 바라보는 스님의 가슴은 갈수록 미어지는데 대통령께서는 당선되셨다고 혼자만 입장을 바꾸려고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후보 시절 보여주신 모습처럼 불의에 차갑고 사랑에 따뜻한 대통령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 기대합니다.

**** 기사는'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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