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2) 2013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 기부금으로 씨앗.삽.낫 기증 '재기 불씨'

제주의소리는 지난해 9월 29일 열린 제6회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모은 기부금 1000만원을 뜻깊은 곳에 쓰기로 했다. 바로 지난 11월 초 태풍 하이엔 때문에 1만2000여명이 사망하고 430만명이 다치거나 집을 잃었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필리핀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로 한 것. 여기에는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와 제주도내 필리핀 공동체 FILCOM이 함께했다.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한용길 사무처장과 부설기관인 제주이주민센터의 이소영 센터장, FILCOM의 제니테들 대표가 직접 현지로 날아갔다. 이들은 제주의소리의 기부금과 자체적으로 모은 500만원으로 가장 피해가 심각한 곳 중 하나인 사말 지역 이날라드 오지 마을로 향했다. <편집자 주>

 

▲ 사말지역의 이날라드 모종 마을에서 씨앗과 농기구를 전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2월 2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한국은 아직도 한겨울이지만 이 곳은 한국의 여름 날씨와 같다. 하지만 일정은 이제야 시작이다. 차를 타고 꽤 오랜시간을 향해야 할 것은 알았지만 무려 19시간이나 승합차를 타니 일행들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도로는 울퉁불퉁했고, 장시간 차를 타고 도착한 항구에서도 배를 타려 하니 앞에는 무려 600척이 밀려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목적지. 사말지역의 이날라드 모종. 오지 마을이다. 사말 지역은 필리핀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면서 가장 가난한 동네다. 자급자족을 하며 농사말고 다른 산업은 발달돼 있지 않고 현대식 건물은 찾아볼 수도 없는 곳이다. 지난 11월 하이엔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지만 아직까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맨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 때 보인 것은 말그대로 가난한 농촌의 초라한 가옥들 뿐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한 사무처장에게 말을 건넸다. "집이 날아간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유일한 수입원이 농작물인데 모두 태풍에 유실돼 지금 당장 생계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기부금으로 현지 필리핀인 권익단체 MICGRANTE INTERNATIONAL을 통해 2000명에게 나눠줄 씨앗과 삽, 곡갱이, 작업용 낫 등 농사기구를 준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지역은 땅이 비옥해 벼나 쌀 등이 한 달 반 정도면 내다 팔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고 했다.

마을 대표인 크레스디타라는 여성은 방문한 일행들에게 "자신들을 도와준 것은 대한민국 제주사람들이 처음"이라며 "행복하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며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들뜬 표정이었다. 이제야 살았다며 한국 일행들에게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 사무처장은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와서는 '이제 수리하는 과정 중에 있어서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많이 좌절해 있었는데 와서 직접 도와주니까 힘이 나고 새롭게 용기가 났다"는 말을 전했다고 밝혔다.

공무원 발랑가이 씨는 "필리핀 정부 자체가 할 수 없는 일을 멀리 제주에서 멀리 와서 도와줘서 자국방문해서 도와줘서 너무 반갑고 고맙다"고 전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일정 탓에 바로 마을을 떠나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풍족하지는 못할지라도 당장 입에 풀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사무처장은 "가는 시간은 힘들었지만 막상 가서 이들을 만나고 도와줄수 있다니 너무 뿌듯했다"며 소회를 전했다.

 

▲ 마을 주민들이 기쁜 표정으로 씨앗과 농기구를 받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 마을 주민들이 기쁜 표정으로 씨앗과 농기구를 받아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태풍 피해 후 2달, 여기는 아직도...

가벼운 마음으로 사말을 떠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마을에서 2시간 가량 이동해 태풍 최대 피해 지역인 타클로반 지역으로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것은 '참담함'이었다.

도시 곳곳이 초토화된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건축자재 물가 폭등으로 집을 개인적으로 수리할 엄두는 전혀 내지 못했고, 국가의 복구사업도 지지부진했다.

한 사무처장은 당시의 절망적인 마을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아이들은 더러운 물웅덩이에서 매트리스를 타고 놀고 있었고, 사람들은 지붕이 날아간 열악한 의료환경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학교도 지붕이 다 날아간 채 방치돼있었다. 성당 앞마당에는 350구 정도의 시신이 묻혀있었다. 관도 아니고 비닐에 싸서 가족들을 묻었다. 이름모를 시체도 많아 땅에 묻고 십자가만 꽂아둔 것이 많았다"

제주의소리와 외국인평화공동체가 지원대상으로 정했던 사말 지역이 오지인데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지원이 없어서 힘든 곳이었다면, 여기 타클로반은 비교적 많은 국가에서 지원이 왔으나 그 규모가 너무 커서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 타클로반의 2월초 풍경. 이제서야 찾은 시체를 방수포에 대충 싸서 땅에 묻는 모습도 보였다. ⓒ제주의소리

더 큰 문제는 이제는 슬슬 각 나라의 NGO와 지원단체들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

한 현지 선교사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사람들이 많아 정신과 진룡 대한 의료봉사가 필요하고 또 병원도 수술장비와 용품이 모자라서 애를 먹고 있다"며 "정부의 부정부패 등 여러가지 상황으로 복구가 더디게 진행돼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정말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미리 준비한 금액은 작은 돈이 아니었지만, 이 거대한 피해를 돕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한 사무처장은 '제주의소리와 2차 모금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라고 전했다.

"여기는 복구가 장기화될 거 같다. 2월말이면 NGO 단체들도 다 나가버린다. 지원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정말 힘든 상황"이라며 "단편적인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고 한다. 필리핀의 정부는 부정부패가 심해 지원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현지인들의 설명도 가슴이 아팠다. 다만 그래도 미소지을 수 있다는 건 '마싸야(행복하다), 살라맛보(너무 감사하다)'는 모종 마을주민들의 인사 때문. 얼마 뒤면 곧 식량을 생산해낼 수 있어 큰 위기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의 크기는 뿌듯함 보다 더 넓고 크다. 세 명의 방문자들은 언제쯤이면 이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 타클로반의 2월초 풍경. 나무 십자가만 달랑 꽂은 희생자들의 무덤이 즐비해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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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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